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Y Apr 03. 2023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다.

전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자신들이 보였던 광기를 너무나 빨리 잊 듯한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잠재적 살인자로 간주하던 그 시절이 불과 1-3년 전이건만,

그때의 그 살벌함은 어디로 갔는지,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아직도 국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

일상의 완전한 회복이란, 결국 국가의 방침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의 삶을 나의 주도로 영위할 권리,

당연한 개념인 것 같지만,

사실은 늘 권위체에 쉽게 휘둘리는 것임을 왜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

유감스럽게도,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국가의 방침'에 따라,

사태가 일단락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일까?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다.

누구 하나가 위험하다 하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다른 이가 합세하면, '뭐 하는 건가' 싶다.

세 사람이 함께 외치면, 사람들은 더는 이를 간과하지 못하게 된다.

무엇인가가 문제인지 아닌지는

결국 목소리의 크기와 규모,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에 좌우됨을

조상들은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평온함은 침묵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가 소리를 내는 순간, 침묵은 깨지며, 평온함은 더는 누릴 수 없다.

어쩌면,

이 나라의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있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리도 조용히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 다시 이 사회에 전과 같은 폭풍이 휘몰아칠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른 이를 그 폭풍 속으로 끌어들일지,

심히 염려되고, 몹시 우려된다.


나는 얼마간 이어져 온 이 침묵이 싫다.

또한 무섭다.

이것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얄팍하고 연약한 적막이기에.

이전 26화 뭐가 문젠지도 모르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