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조작된 과거, 준비된 승자

사람의 마음을 설계하겠습니다.

by Song 블루오리온

7장 1화 – 회신된 과거

[현재 시각 – 밤 11시 58분, STAR그룹 AI상담센터 서고 옆 소회의실]


하얀 형광등 아래, 노트북 화면이 뿜어내는 푸른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정하윤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시스템 화면을 바라봤다.
강시후는 손끝으로 마우스를 조심스레 움직이며 캡슐 수신 로그를 클릭했다.

화면 상단에 붉은 문장이 나타났다.


� [NEW] 타임캡슐 회신 응답 도착
수신 시각: 23:56
열람 가능 시간: 24:00부터



“…진짜 왔네.”
정하윤이 나직이 말했다.

“시스템은 거짓말을 안 해.”
강시후는 창을 하나 더 열며 답했다.

“이 회신… 이전에 우리가 열었던 세 번째 캡슐과 관련 있겠지?”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 버튼을 눌렀다.
디지털 잠금이 해제되며 부드러운 애니메이션 효과와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회신된 메시지: 제3타임캡슐 응답]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또 다른 선택 앞에 서 있다.

4년 전 그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한 가지 묻겠다.
당신은—정말 그 과거를 바꾸고 싶은가?”



“…이건—”
강시후가 입술을 다물었다.

정하윤은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했다.
첨부 파일 목록이 떠 있었다.

[1] 응답 메시지 음성 파일 (지윤 음성)

[2] 타임캡슐 송수신 경로 재구성도

[3] 최종 발신 위치 분석 보고서



“이게… 우리가 봤던 원본 메시지랑 다르잖아.”
정하윤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기억나? 지난번 메시지에는… 음성 파일 같은 거 없었어.”

“맞아. 있었던 건 시스템 로그랑 실종 수사자료뿐이었지.
그런데 이건…”


강시후는 조심스레 음성 파일을 클릭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분명히 그녀였다.

“하윤아… 만약 이 메시지를 본다면, 조심해.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살아 있어.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 시스템 안에 가뒀어.”

정하윤의 눈이 커졌다.

“…지윤 누나…”

목소리는 또렷하고 선명했다.


이건 단순한 로그 데이터가 아니었다. 누군가, 최근에 녹음된 듯한 깨끗한 음성이었다.

“…이건, 과거의 메시지가 아니야.”
강시후가 천천히 말했다.

“무슨 말이야?”
정하윤이 돌아봤다.

“하윤아, 이건… 누군가가 ‘회신 메시지’를 수정했어.
로그를 다시 쓴 거야.
우리가 며칠 전에 본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잖아.”

정하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근데… 이게 가능해?”

“루트 권한이면 가능하지. 그리고 그걸 가진 사람은—”

말이 끝나기 전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일치했다.


“…성찬.”

정하윤은 태블릿을 열어 회신 로그의 메타데이터를 확인했다.


마지막 수정자: s.chan
수정 시각: 23:41
인증키: Ω-3 서브루트



“미쳤어. 이건 증거야. 명백하게…”

“…이 메시지를 우리가 보게 만든 것도, 그의 의도란 말이야.”

정하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누나는 진짜 살아 있다는 건가?
아니면 이것도… 성찬이 꾸민 함정일까?”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윤 누나의 목소리가 맞긴 한데… 왜 지금에서야…”


강시후는 화면을 조용히 꺼버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초대장이야.”

“초대장?”

“판에 올라오라는 거야. 이젠 눈치만 보지 말고, 직접 움직이라는 신호지.”

정하윤은 혼란스러운 눈빛을 겨우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었다.

“…우릴 시험하겠다는 거네.”

“응. 그런데 이번엔 우리도… 응해야지.”

두 사람은 조용히 맞은편에 앉은 채, 아무 말도 없이 캔커피를 집어 들었다.

밖에선 봄비가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비를 맞으며, 그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7장 2화 – 그림자 속의 설계자

[다음 날 – 오후 4시, 사내 아카이브 서버룸]


강시후는 오래된 서고처럼 어두운 서버실 내부에서, 비인가 실험실의 구조도를 열람 중이었다.
문서명은 모호하게 가려져 있었다.


[SC-F3_Restricted_Design_map.pdf]



도면 위에 손가락을 따라가던 그는, 익숙한 표식을 발견했다.

“여기다… 캡슐 주입구.”

정하윤이 조용히 물었다.

“이게 성찬이 메시지를 보냈던 기계 위치야?”

“응. 근데 이상하지 않아? 내부 설계자 이름이 사라졌어.
이태석의 이름 대신—이 코드가 있어.”

시후는 화면을 확대했다.
도면 하단, 주석으로 숨겨져 있던 문자열 하나.


#Patch_by_S.C. Ω_key_TL_auth



“…S.C. 성찬. 그리고 TL, 이태석.”

“삼촌의 인증을 빌려 자기 코드를 넣은 거네.”

강시후는 화면을 닫고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누가 시스템에 올라탄 게 아니라,
그 시스템을 만든 자가 누구냐는 거야.”


정하윤이 묻는다.

“그리고 그건—성찬이란 말이지?”

강시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무대 위에 섰는지를 봐야 해.
설계자는 무대에 오르지 않아.”




7장 3화. 조작된 영상

“이건 덫이야. 상무를 무너뜨리기 위해, 성찬이 쓴 고전적인 수.”


[이사회 사무국 내부 – 오전 10시]


이사회 회의록 보관 서버 앞, 강시후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정하윤은 그의 옆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다, 낮게 속삭였다.


“여기야. 이 영상, 이사회에 배포된 정지윤 누나 실종 당시 영상.”

영상은 흐릿했다.
비인가 실험실의 보안 CCTV.
정지윤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이태석 상무의 모습.

그 장면은, 이미 회장단 일부에게 전달되었다.
이태석을 회의장에 세우기 위한 강력한 ‘불신임 자료’였다.



하지만—

“정지윤 누나의 그림자가… 이상해.”
강시후가 화면을 멈췄다.
“이건 영상 왜곡이야. 밝기 조절로 덧입혀진 그림자. 원본에는 이 부분이 없어.”

정하윤도 눈을 좁혔다.
“…정지윤 누나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0.3초간 프레임이 바뀐다. 컷 편집 흔적.”

잠시 침묵.


정하윤이 낮게 말했다.
“이건 덫이야. 상무를 무너뜨리기 위해, 누군가가 만든 조작 영상이야.”


강시후는 모니터 옆쪽의 메타데이터 항목을 열었다.
로그 파일이 떴고, 그 안에 숨겨진 디지털 서명이 하나 떠올랐다.


[수정자: S.CHAN / 최종 편집 시각: 3일 전 / 경로: TEST_VID_FAKE]


“…성찬.”

그 이름이 공간을 찢듯이 흘렀다.
정하윤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상무는, 조작의 얼굴로 쓰인 거야.”
“진짜 조작자는—무대 뒤에서 판을 짜고 있었고.”

강시후는 이 파일을 복사하며, 조용히 말했다.
“성찬은 지금, 이태석을 쓰러뜨릴 타이밍을 보고 있는 거야.”





7장 4화. 승자가 되고 싶은 자

“사람의 마음을 설계하겠습니다.”


[4년 전 – STAR그룹 본사 회장실, 늦은 오후]


성찬은 긴장한 듯, 회장실 안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회장은 넓은 창가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실루엣, 뒤편엔 노을이 진다.


“왔는가, 성찬.”

“네, 회장님.”

짧은 대답, 낮은 고개.
그 순간만큼은 ‘상무의 조카’가 아닌, 그냥 어린 조카였다.


회장은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 회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아는가?”

“창업 당시…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메시징 플랫폼이었죠.”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이 회사는, '사람의 마음을 시간 속에 보관하자'는 생각 하나에서 출발했다.”

성찬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캡슐 시스템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야. 그것은… 사람의 감정과 바람, 두려움까지 담아 보내는 그릇이지.”

회장은 잠시 침묵하다가 눈을 마주쳤다.


“진짜 회장은, 시스템 위에 서는 자가 아니라—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다.”

성찬은 말없이 그 문장을 새겼다.
그 문장 속에서, 자기 자신은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얻는다?
감정은 언제나 약점이었다.
그건 삼촌에게 배운 방식과도 달랐다.



[현재 – STAR그룹 타워, 옥상 / 해질 무렵]

성찬은 탁자 위에 놓인 찬 커피를 들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 그는 고민했고… 결심했다.


“그렇다면—전 사람의 마음을 ‘설계’하겠습니다.”


시후 형처럼 순수하지 않더라도,
하윤 선배처럼 정의롭지 않더라도,
그들보다 먼저 움직이면,
내가 이 판을 지배할 수 있다.


캡슐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지만, 성찬에게는 설계의 도구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시스템도, 사람도, 감정도—무대로 만들고 있었다.









7장 5화. 진짜 회신을 열 시간

“우리가 되돌릴 수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거야.”


[STAR그룹 AI상담센터 – 심야, 분석실]


컴퓨터 두 대가 동시에 돌아가는 조용한 밤.
강시후는 두 눈에 다크서클을 달고, 스크립트 코드를 뜯어보고 있었다.
정하윤은 맞은편, 정지윤의 캡슐 로그를 복제한 파일을 열고 있었다.


“시후야, 여기에 성찬 이름은 없어. 근데 파일 해시값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어.”

“그게 성찬의 수법이야.”
강시후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자기 이름을 로그에 남기지 않고, 루트에서 파생된 비인가 인증 값을 남겨. 이게 정식 로그랑 다르게 16비트가 아니라 14비트야.”

“…계산된 흔적이네.”

“그래서 보통 로그 검사 시스템에선 오류로 인식하지 못하지.
‘약간의 서버 노이즈’로만 처리돼.”


정하윤은 혀를 찼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도 그 조작본을 진실인 줄 알았던 거잖아.”

강시후는 커피를 벌컥 마셨다.
“하지만 오늘부턴 아니야. 성찬의 조작 패턴을 역추적했어.
그걸 통해… 조작 전 상태의 로그를 복원할 수 있어.”

“…방법이 있어?”

시후는 모니터 옆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이건 내가 몇 달 전 백업해둔 비인가 테스트 서버 이미지야.
지금 우리가 본 건 ‘현재의 기록’이고,
여기엔 ‘당시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어.”


정하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정지윤 누나의 진짜 메시지도 포함해서?”

“그걸 확인하려는 거야.”

그들은 숨을 고르며 동시에 타이핑을 시작했다.


[복원 시퀀스 시작 – 시스템 내부 로그 복구]

Step 1: 로그 비교 알고리즘 적용

Step 2: 시간 역전환 복원 스크립트 실행

Step 3: 비인가 조작 키 패턴 탐지 및 제거

Step 4: 데이터 재결합


화면에는 마치 DNA 가닥처럼 얽혀 있던 로그가
점차 선명한 라인으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강시후는 속삭였다.
“10%, 20%… 68%… 거의 다 왔어.”

정하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그리고 마침내, 화면에 ‘복원 완료’라는 문구가 떴다.

[복원된 캡슐 로그 – JIYOON.J / 발신일: 4년 전 5월 18일]


파일 하나가 열렸다.
그것은 그동안 감춰져 있던, 진짜 회신이었다.



[타임캡슐 – 정지윤의 메시지 영상]


화면 속, 정지윤은 STAR그룹 실험복을 입은 채 어두운 회의실 안에 앉아 있었다.

“이 메시지를 보는 사람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참여한 실험은, 단순한 ‘시간 저장’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사람의 기억과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정하윤의 눈동자가 떨렸다.

“만약 내가 이 메시지를 보낸 뒤 사라졌다면…
그건 누군가가 이 기술을 이용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정하윤. 네가 이걸 보고 있다면, 부탁이야.
강시후라는 친구와 함께, 이 시스템의 진실을 밝혀줘.”

“이건 단지 타임캡슐이 아니야.
이건—누군가의 욕망이 만든, 조작된 미래의 시나리오야.”

영상이 종료되었다.



[정적 속에 흐르는 감정]


정하윤은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숨을 들이마셨다.
“시후야… 누나가, 우리 이름을 알고 있었어.”


강시후는 가만히 그의 어깨를 잡았다.

“하윤아. 우린 이제, 진짜 걸음을 뗀 거야.”

“이건 시작일 뿐이야. 성찬이 이걸 알게 되면…”

“그걸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

“…뭐?”


강시후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찬은 우리를 이 판으로 끌어들였고,
우린 조작된 과거를 바로잡고 있어.
그는 아마… 누군가가 이 메시지를 반드시 보기를 바랐던 거야.”


정하윤은 모니터를 응시한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응답해야지. 누나에게도, 성찬에게도.”



[두 사람의 선언]


강시후는 복원된 캡슐 데이터를 암호화해 외부 서버에 백업했다.

“누군가 또 이걸 지우려 할 수도 있어.
이번엔 우리 쪽이 먼저 수 싸움을 해야 해.”

정하윤은 파일의 제목을 바꾸며 말했다.



[캡슐명: 진실.001 – 지윤의 기록]


“…이제, 우리가 진실을 증명하는 쪽이 되자.”

강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자. 이 판 위에서.”







다음 장 예고 – 8장. 새로운 게임이 시작


조작된 과거가 복원되면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성찬은 예상보다 빠른 반응을 보이며 이사회 안에 ‘두 번째 조작’을 투하하고,

시후와 하윤은 이제 공격자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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