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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pd 알멋 정기조 Nov 21. 2024

인생은 추입(追入)이다!,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

경주마들의 역동적인 질주와 나는 듯한 추입은 올림픽보다 재미있다

 *추입(追入) : 경마 등에서 처음에는 후미에서 힘을 아껴 따라가다가 경기 후반부나 직선 주로에서 강하게 앞으로 나가 추월하는 것.


#과천여행 #렛츠런파크 #경마공원 #승마체험


시대와 여건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기억과 편견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당구입니다. 현재는 프로 리그와 당구 전문 TV 채널까지 생길 정도로 엄연히 하나의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처럼 담배 연기가 자욱한 불건전한 곳이라는 편견도 일부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경마는 분명 어느 스포츠보다도 사행성이 강한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하이원에 가면 강원랜드 구경을 해보는 게 결코 부적절한 일이 아니듯이, 경마도 일확천금과 상관없이 재미로 체험하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게 아닙니다. 렛츠런파크(구 경마공원)는 과거 경마꾼들의 아지트 이미지를 벗어나 가족과 연인들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는 중입니다. 말들의 역동적인 경주를 직접 보며 응원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며, 막판 직선주로에서의 나는 듯한 추입은 어른들에게도 엄청난 짜릿함을 선사합니다.



'렛츠런파크? 그게 뭐 하는 데예요?'


항상 아빠의 내비게이션을 해독했던 나현이도 이번에는 전혀 짐작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운전석 뒤에서 두 남매가 공원은 공원인데 무슨 공원인지 토론(?)하고 있습니다.


'누나, 렛? 저게 뭐야?'

'뭔가 달리는 것 같은데... 뛰어노는 덴가? 한강 공원인가?'


오늘만큼은 아빠의 신비주의 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와, 이거 사람 많네. 여기 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


입구 신호등에서부터 차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근처 서울대공원 쪽으로 갈 때면 항상 어마무시한 정체가 있었기에 여기를 등한시했었는데, 막상 와 보니 여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습니다.


입장하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경마꾼들은 진작에 입장해서 레이쓰(?)를 하고 있고 이 시간에 오는 사람들은 저 같은 평범한 장삼이사, 아니면 갑남을녀입니다. 보현이 같은 아이들도 꽤 보입니다.


그런데 그 장삼이사와 갑남을녀가 엄청 많네요. 입구에서부터 주차하는 데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주차장에서 경마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목마르트'라는 이름이 붙은 야외 휴게 관람 공간이 있습니다. 이렇게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저쪽 경마장 본관으로 가면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잠깐 '여기에서 한가롭게 구경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기에 터 잡고 주저앉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냥 경마를 보면 아무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너튜브 보는 것만도 못합니다. 마권을 손에 들고, 선택한 말을 응원하면서, 달리는 말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아드레날린을 좀 뿜어줘야 그게 경마의 '찐 재미'입니다.


약간의 사행성은 분명히 훌륭한 오락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네요.





서문(序文)에서 렛츠런파크가 가족과 연인들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는데, '놀라운지'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곳은 토·일요일에 한해 20~40대 전용 공간으로 운영합니다. 그래서 소위 '꾼'들이 가득한 저 안쪽에 비해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저같이 가족 또는 연인으로 보이는 경마 초보들이 여기저기 물어보며 경마에 도전하는 광경이 많이 눈에 띕니다.


나현이·보현이 같은 아이들 및 할아버지·할머니도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보여주기만 하면 2040 부모와 함께 입장할 수 있습니다.





'어, 이게 마권이 아닌가 본데?'


정말 아무 준비 없이 갔더니 경마의 기본 프로세스도 몰라서 처음에는 좀 헤매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경마꾼도 아니고 그냥 즐기러 간 건데요.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그런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뭐 알고 가면 시간 절약이 될 테니 간단히 절차를 알고 가면 도움이 됩니다.


일단 ①창구에서 구매권을 삽니다. 구매권은 현금으로만 살 수 있고, 1회 최대 10만 원까지만 살 수 있으며 미성년자는 살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 ②구매표를 작성하는데 학창 시절 시험 때에나 보던 OMR 카드가 등판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용 사인펜이 필요합니다. 경마장 내 편의점에서 사인펜을 쌓아놓고 팔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③구매표와 구매권을 가지고 자율발매기에서 마권을 발급받으면 됩니다.


구매표에 보면 7가지 베팅 방법 중에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아래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꾼들이 아니시라면 그냥 단승식을 추천드립니다. 응원하려면 금메달을 응원해야지요. 연승·쌍승을 선택하면 응원하는 것도 복잡합니다.


- 단승식 : 1등 말 1두를 맞추는 방식

- 연승식 : 1~3등 안에 들어올 말 1두를 맞추는 방식

- 복연승식 : 1~3등 안에 들어올 말 2두를 맞추는 방식 (순위 상관없음)

- 복승식 : 1, 2등 말 2두를 맞추는 방식 (순위 상관없음)

- 쌍승식 : 1, 2등 말 2두를 등수대로 맞추는 방식

- 삼복승식 : 1~3등 안에 들어올 말 3두를 맞추는 방식 (순위 상관없음)

- 삼쌍승식 : 1~3등 말 3두를 등수대로 맞추는 방식





'얘들아, 우리 1등 말 맞춰 보자. 보현이는 몇번 말이 1등 할 것 같아?'

'7번이요, 7번.'

'음, 저는 그럼 2번 할래요.'


원래는 돈 많이 따려면 경마 정보지도 정독해서 정보도 얻고, 눈치 게임을 좀 하다가 경기 시작 3~5분 전쯤에 배당률 보면서 베팅해야 합니다만, 저희는 경마꾼이 아니라 관광객이니까 그냥 아이들의 직관에 따라 미리미리 마권을 뽑았습니다. 보현이는 7번 말에 걸었고 나현이는 2번 말에 걸었습니다. 7번 말 이름은 '엘도라도강남', 2번 말 이름은 '럭키프랭크' 입니다.


겨우 2게임에 2만 원만 썼을 뿐인데, 역시 판돈이 걸려야 두근두근합니다.





실내에는 자리가 없어 실외 응원 존으로 나왔습니다. 여기도 주말에는 2040 전용입니다. 꾼들은 저기 위층 좌석 쪽에 있는 것 같네요.


바깥쪽에 나오니 경마장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야구장 갔을 때 못지않게 사람들도 정말 많습니다. 지상 6층에 3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데, 그 옆에 또 6층짜리 42,000명 규모 건물이 있습니다. 잠실야구장이 25,000명 규모라는데 그보다 훨씬 큽니다.


또 눈에 띄는 건 '비전127'이라고 하는 거대한 전광판입니다. 길이 127m짜리 초대형 전광판인데 심지어 화질까지 좋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광판이라고 하네요. 때에 따라서는 저 전광판으로 영화도 상영하고 축제도 하고 그런다고 합니다.





경기 시작했습니다! 나현이가 걸은 2번 말이 초반부터 앞으로 치고 나옵니다. 코너를 돌 때까지 계속 1등입니다. 아이들도 목청껏 자기가 걸은 말을 응원합니다. 올림픽 육상 200m 못지않은 긴장감입니다.


'2번 말 파이팅, 힘내라!!'

'7번 말 이겨라!! 7번 말 이겨라!!'


'3코너 도는 시점, 2번 말 럭키프랭크가 안쪽을 차지하고 선두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바깥쪽에서는 4번 문학홀리데이가 2위로 추격하고 있으며...'


경기 중반 4번 말이 바싹 따라붙습니다. 바깥쪽에서 보현이가 걸은 7번 말도 뒤에서 치고 나옵니다. 오, 우리 말들이 다 상위권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4코너 돌아 직선 주로 진입했습니다! 2번 럭키프랭크 여전히 앞서 있습니다. 2번, 4번 두 말의 선두 싸움입니다. 바깥쪽에서 7번 엘도라도강남이 막판 탄력을 붙이고 있습니다. 7번 엘도라도강남이 역주를 하며 막판 선두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싸, 7번 말 1등!! 아빠, 우리 말이 1등이에요!!'

'히잉, 내 말이 졌어ㅠ.'

'괜찮아, 보현이 말이 1등 했잖아. 우리 모두 다 이긴 거야.'


뒤에서 무슨 적토마처럼 막판에 치고 나온 보현이 말이 1등을 했습니다. 나현이 말은 내내 1등 하다가 막판에 추월 당해 순위가 밀렸네요. 울상이 된 나현이를 아빠가 위로해 줍니다. 파리 올림픽 육상도 이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인생은 추입(追入)입니다.





'자, 좀만 쉬었다가 한판 더 가보자.'


잠깐 숨 좀 돌렸다가 30분 후에 2번째 경기를 시작합니다. 한 판만 하고 가기에는 아쉽잖아요. 이번에는 보현이는 8번 말 '뉴질랜드삭스', 나현이는 5번 말 '이스트웨스트'를 골랐습니다.


'에이, 이번엔 꽝이네. 괜찮아. 아까 1등 했으니 이번엔 져도 돼.'


둘째 판은 영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4번 베팅 중에 1번이 1등 적중했는데요. 아이들도 승부에 상관없이 응원을 즐겼습니다. 야구장 갔을 때에는 애들이 규칙을 잘 몰라 아빠가 많이 설명해줬어야 했는데 경마는 단순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앞에 있는 말이 1등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애들이 더 몰입해서 응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엥? 얼마 안 되네?'


7번 말이 1등 하는 바람에 돈을 환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11,000원 돌려줍니다. 5,000원 걸어서 배당률 2.2배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눈치게임하면서 늦게 베팅하고 그러나 봅니다.


그래도 뭐 어차피 돈 따려고 온 게 아니니 꽁돈이 들어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나갈 때 애들한테 음료수라도 하나 사줄 수 있겠습니다.





입장부터 오래 걸리는 바람에 시간이 늦어 포니랜드에는 입장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이 승마와 말먹이 주기 체험이 가능한 곳이라고 하는데 안타깝네요.


대신 옆에 있는 말박물관에 잠깐 들러 구경했습니다. 원래 일제강점기 때부터 경마장이 서울 신설동에 있었고(경성경마장), 해방 후에 서울숲 자리로 이전했다가(서울경마장),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현 위치인 과천에 승마 경기장을 신축하고 올림픽 이후 경마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적 규모의 경마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역시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 곳곳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말박물관은 규모가 작아 많이 볼 것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마사회에서 여기에 많이 투자해서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계 여행 정보]

- 최적 시즌 : 9월 초(코리아컵/코리아스프린트, 야간 경마축제), 11월 말(경마 그랑프리), 5월 초(어린이날 이벤트), 4월 초(벚꽃축제)

- 연계 여행지 :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국립과천과학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교통 : 서울역에서 16km, 고속터미널에서 8.7km, 동서울터미널에서 16km

           (대중교통) 서울 4호선 경마공원역 바로 앞


- 먹거리 : 렛츠런파크 안팎 식당, 푸드트럭, 포장마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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