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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그림자

빛 아래 홀로 남은 여인의 이야기

by 영업의신조이

8화.

혼자의 몸 _ 살과 숨이 변하는 시간



밤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몸의 모든 신체 리듬은 점점 더 짧아졌다. 잠은 한 번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얕은 물결처럼 왔다가 어김없이 밀려나갔다. 누워 있으면 등줄기가 저릿했고, 옆으로 돌아누워도 골반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배는 아직 작게 불거져 있었지만, 그 작은 부풀림 하나로 온 세상의 균형이 달라지는 듯했다. 마치 우주의 중심축이 배 안의 아이를 중심으로 다시 잡혀가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아래가 좁아졌고, 내쉴 때마다 심장은 두 번 더 빨리 뛰었다. 피의 양이 늘어난 탓인지 맥박은 가늘게 뛰었다가도 어느 순간 귀 안쪽 고막에서 북소리가 울리듯 쿵쿵 크게 울렸다.


아침이면 속이 텅 빈 항아리처럼 요동쳤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파도처럼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물 한 모금 없이 하루를 살았다가도, 물 한 모금에 다시 가라앉은 하루를 버텼다.


냄새는 마리아의 후각의 적이 되었다. 올리브기름의 달큼함, 양모의 젖은 냄새, 막 구운 빵의 껍질 향까지 사랑스러웠던 그 모든 향들은 그녀를 배신했다. 어제까지 위로였던 것들이 오늘은 모두 공격적이었다.


혀 밑에 신물이 고였고, 위는 쉽게 뜨겁게 타올랐다. 그럴 때마다 마리아는 흰 점토 잔에 따뜻한 물을 담아 조금씩 마시며 달래야 했다. 물이 목을 지나갈 때마다 온기는 또렷했지만, 위는 금세 차갑게 웅크려 들었다.


오후가 오면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잠은 얕았다. 눈을 감으면 배 안쪽에서 힘줄 하나가 길게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고, 사타구니와 허벅지 안쪽으로 알 수 없는 통증이 번져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골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했고, 허리 아래는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두 다리의 장딴지는 밤이면 쥐가 났다. 발바닥은 끓는 듯 화끈거렸고, 종아리 뒤쪽 혈관들은 불규칙하게 근육을 당겼다.


어느 날은 갑자기 코피가 흘렀고, 또 어느 날은 하품만 백 번 넘게 나오기도 했다. 가슴은 이전보다 무겁고 예민해졌고, 젖꼭지 둘레의 색은 짙어졌다. 어깨끈이 스치기만 해도 전기가 지나가는 듯 찌릿했다.


배가 팽창하면서 피부에는 살짝 가려움이 올라왔고, 손톱으로 긁으면 얇은 껍질 뒤로 뜨끈하게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배꼽 아래로 생겨난 가느다란 선이 천천히 짙어지고 있다는 것을.


밤이 깊으면 마음에는 더 큰 불안이 몰려왔다. 눈을 감는 순간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 추락하지 않으려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아야 했다. 그 자세로 오래 있으면 손끝이 먼저 젖었다. 두려움이 물처럼 차오르다 어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미세하게 스며들었다.


몸의 물결이 가라앉을 때마다 그 평안은 아주 얇고도 확실하게 남았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쉼인지, 아이가 보내는 위안의 신호인지 그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굳이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구분은 때로 사랑을 가난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녀는 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배 밖의 언어로 다 말할 수 없었다. 위는 느슨해지고, 창자는 더디게 움직이고, 밤에는 다리가 무거워지고, 낮에는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머리는 맑고 둔해서 같은 생각을 열 번도 더 더듬었다.


기도 중에 졸다가도, 졸음 끝에서 문득 가장 또렷해졌다. 그때마다 배 속에서 작은 물결이 일었다. 아주 가볍지만 확실한 흔들림이었다. 몸은 새로운 질서로 재배치되고 있었다. 심장은 더 많은 혈류를 펌프질 했고, 폐는 더 자주 얕게 오르락내리락했고, 위장은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크게 요동쳤다.


그녀의 살과 뼈와 혈과 숨은…

모두가 길을 비켜서며 한 존재를 위해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녀는 묻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여인들에게,

아이를 먼저 품어본 누군가에게.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말은 비난으로 돌아왔다.


가르침이 필요한 때 교훈은 없었고,

위로가 필요한 때 규칙만이 강요되었다.


그녀는 조용히 등을 돌렸다. 기댈 곳이 없다고 해서 믿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믿음은 기대지 못하는 어깨에서 더 또렷해졌다.


해가 기울면 회당으로 향했다.

돌바닥의 냉기가 계절보다 앞섰다. 문지방을 넘을 때마다 무릎이 먼저 알아서 굽혀졌다. 바닥은 차갑고 단단했다. 차갑기 때문에 정직했고, 단단하기 때문에 잊지 않았다. 그녀는 이마를 대고 숨을 낮췄다. 숨을 낮출수록 생각은 덜 흔들렸다.


“야훼 하나님, 제 몸이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위가 타오르고, 다리가 저리고, 피가 빠르게 돌고, 잠이 얕고, 마음이 쉽게 올라갔다가도 다시 평안히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제 안에서 당신이 주신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제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이 길을 내주고 있습니다. 제가 강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두려움보다 큰 사랑을 제 안에 남겨주소서.”


기도는 길고 느렸다. 느릴수록 깊어졌다. 그녀는 몸의 사실을 하나님께 숨기지 않았다. 배가 땅기고, 허리가 묵직하고, 속이 울렁거리고, 땀이 식으면 한기가 올라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모두 기도로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실도 불경이 아니었다. 사실을 감추는 입술이야말로 신성한 것을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말을 사실로 바쳐 기도로 올려 드렸다.


그러자 기도의 끝에서 마리아의 감정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가벼워졌다는 말은 슬픔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슬픔이 제 자리를 찾아 마음의 사랑의 성전을 단단히 쌓아 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배가 뭉근하게 돌처럼 굳었다 풀렸고, 때로는 아랫배가 콕콕 쑤셨다. 그녀는 겁이 났다. 잔뜩 겁을 먹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아이를 지켜주소서.”


말끝은 떨렸지만, 그 떨림이 기도를 더 살아 있게 했다. 떨림은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깊이 엎드린 이마 아래 회당 바깥의 돌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 차가움 위로 이마의 열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차가움과 열이 만나 미지근해지는 그 지점에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아주 짧고 깊은 숨을 이어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별빛은 모래처럼 흩어져 있었다. 발바닥이 아프고 허리가 무거워도 그녀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집 문턱을 넘기기 전, 그녀는 한 번 더 배 위에 손을 올렸다.


그때 가볍게, 안쪽에서 새가 날개를 접는 듯한 작은 움직임이 스쳐갔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소리 없는 미소,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과의 하나 됨이었다.


밤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등잔불이 낮게 떨렸다.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베개는 딱딱했고, 담요는 얇았고, 창틈에서는 바람이 아주 조금씩 흘러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까보다 포근했고 덜 흔들렸다. 마리아의 불안한 몸의 변화는 사실을 하나님께 모두 고백했기 때문이다. 말하고 나니 남은 것은 맡김뿐이었다. 맡김은 체념이 아니라 그녀의 의지적 선택이었다. 그녀는 굳게 선택했다. 두려움보다 사랑을, 침묵보다 기도를, 혼자보다 함께를.


“하나님, 제가 견디겠습니다.

제가 무지하여 불안해할 때에는 제 몸이 저를 가르치게 하시고,

제 몸이 무지하여 모를 때에는 당신의 숨이 제 몸을 평안케 하소서.


저는 여리고, 이 아이는 너무도 작지만, 당신의 사랑은 넘치도록 큽니다.

그 사랑 안에 우리가 감싸지게 하소서.”


그렇게 말로 기도하고 눈을 감았을 때, 잠이 어디선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깊지는 않았지만, 얕지도 않은 잠이었다.


몸이 잠들기 시작하면 마음이 깨어 있었고, 마음이 잠들기 시작하면 아이가 깨어 있었다.


교대로 깨어 있는 그 둘 사이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이 밤을 견딜 수 있겠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견디는 동안에도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자라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바로 그 사실을.


새벽 전에 잠깐 깨어났을 때 창밖이 아주 옅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배를 한 번 더 덮었다. 안쪽에서 아이로부터 미세한 대답이 왔다. 아주 작지만 또렷한 대답이었다. 그 대답 하나에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아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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