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과 사미르의 멈춘 손
2화.
거울의 운명적 구조
_ 빛, 금속, 빵, 손, 침묵, 하늘, 그리고 육감의 정렬
사람들은 늘 사건을 기억한다.
어느 날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누가 무엇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세상을 흔들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건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축소된다.
그것은 하나의 날짜가 되고,
하나의 기사 제목이 되며,
하나의 구호가 된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두고 누가 옳았는지, 누가 틀렸는지를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늘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사건은 시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라 온 어떤 선험적 구조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비극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작은 감각들 속에서 서서히 자라고 축적된다.
눈에 들어오는 빛의 방향,
손에 닿는 금속의 차가움,
입안에 남는 빵의 건조한 맛,
그리고 누군가의 손이 어깨 위에 얹히는 순간의 무게 같은 것들 속에서 조금씩 그 모양을 갖추어 나간다.
그 감각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시간은 바로 그런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 속에 깊이 있는 둥지를 튼다. 사람의 마음은 대개 생각보다 먼저 감각을 받아 적고, 감각은 생각보다 오래 삶의 방향을 지배해 나간다.
그 방향이 쌓이고 또 쌓여 마침내 어떤 선택을 낳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선택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두고 비로소 사건이라 부른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 구조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빛이 있다.
빛은 언제나 가장 먼저 세계를 가른다. 이스라엘 유대교 회당의 촛불은 공기 속 먼지를 금빛으로 띄우며 누군가에게는 평온을, 누군가에게는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팔레스타인에서도 같은 빛이 천막의 틈 사이로 들어오고, 그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 빛은 따뜻함이 아니라 현실을 드러내는 선이 된다. 그 빛 아래에는 빈 그릇이 있고, 빵의 부스러기가 있으며, 다음 식사가 언제 올지 모르는 기다림이 놓여 있다.
빛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내려오지만, 그것이 닿는 자리에서 전혀 다른 감정으로 변한다. 같은 빛이 어떤 얼굴에서는 기도가 되고, 어떤 얼굴에서는 결핍의 윤곽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처럼 내리고, 누군가에게는 비어 있는 식탁의 모서리를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세계는 종종 빛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받아들이는 몸의 기억으로 나뉜다.
그리고 금속이 있다.
금속은 인간의 체온을 가장 빠르게 빼앗는 물질이다. 이스라엘 어린 여군의 손에 들린 총열의 차가움,
펜스의 진동,
수갑의 단단함,
군복의 버클이 피부에 닿는 순간의 냉기.
금속은 사람에게 규정이라는 감각을 준다. 그것은 따뜻하지 않다. 대신 정확하다. 금속이 사람의 삶 가까이에 놓일수록 세계는 점점 단단해진다. 규칙이 생기고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의 안과 밖이 정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이름이 아니라 위치로 부르기 시작한다.
인간은 아직 같은 숨을 쉬고 같은 하늘 아래 서 있는데, 금속은 먼저 그들 사이에 차가운 문장을 세운다. 이쪽과 저쪽. 안과 밖. 허락된 자와 금지된 자. 금속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은 종종 어떤 연설보다 더 완강하다. 사람은 그 차가움을 오래 만질수록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속에 같은 단단함을 길러 낸다. 따뜻함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냉기는 설명 없이도 몸을 바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빵은 그 반대편에 놓여 있다.
팔레스타인의 한 가정 안에서 빵은 언제나 가장 인간적인 물건이다. 누군가는 빵을 나누며 기도를 하고, 누군가는 빵을 쪼개며 하루를 버틴다. 갓 구운 빵의 온기는 잠시 사람을 사람 곁으로 데려가지만, 빵이 식고 말라 갈수록 마음도 조금씩 말라 간다.
배가 고프면 세상은 좁아진다. 선택의 폭은 줄어들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사람은 그때부터 옳고 그름보다 먼저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존이 오래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다는 감각으로 하루를 통과하게 된다. 빵은 그 차이를 너무도 조용하게 증언하는 물건이다. 식탁 위에 놓인 빵 한 조각은 때로 평화의 마지막 형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절박함으로 밀려가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작고 가장 정확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손이 있다.
손은 언제나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끌어안거나 누군가를 밀어낼 수 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될 수도 있고, 방아쇠 위에 얹힌 손가락이 될 수도 있다. 버튼 위에 멈춰 선 손일 수도 있고, 돌을 움켜쥔 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손이 언제, 어떤 순간에 멈추거나 움직이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손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손이 움직인 순간 세상은 바뀌었고, 누군가의 손이 멈춘 순간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사랑도 손으로 남고, 폭력도 손으로 시작된다. 입으로는 수없이 평화를 말하면서도 손으로는 같은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 인간에게 얼마나 흔했던가. 그래서 손은 늘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다. 인간은 입으로 세계를 설명하지만, 세계를 실제로 바꾸는 것은 대개 손끝에서 일어난다.
침묵......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소리가 사라진다.
큰 사건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종종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세상은 갑자기 하얗게 멀어지고, 귀 속에는 먼 바람 같은 것만 남는다. 대신 아주 작은 것들이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먼지가 혀에 붙는 감각,
천막이 바람에 흔들리는 마찰,
누군가의 숨이 잠깐 멈추는 그 짧은 공백,
말이 되기 전의 침묵이 목 안에서 굳어 가는 느낌.
인간의 기억은 그렇게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붙잡는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사건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그때 몸이 기억한 감각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서사를 기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촉감과 냄새와 빛의 각도를 더 오래 기억한다. 삶을 바꾸는 것은 대개 총성 그 자체가 아니라, 총성이 오기 직전 잠깐 세상이 숨을 멈추던 그 이상한 공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는 하늘이 있다.
하늘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펜스 위에도,
회당 위에도,
천막 위에도 같은 하늘이 놓여 있다.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누구의 적도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땅 위에서 선을 긋고, 이름을 나누고, 서로를 구분하지만, 하늘은 그 모든 구분을 알지 못한다. 어떤 날에는 하늘이 너무 멀어서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 어떤 날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깊은 증인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늘은 개입하지 않지만 외면하지도 않는다. 다만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 인간이 만든 모든 선이 얼마나 덧없고 얼마나 잔인한지를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조차 사람보다 먼저 하늘을 본다. 설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거기에는 아직 나뉘지 않은 무엇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육감이 있다.
육감은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몸이 먼저 아는 감각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느낌, 이유는 모르지만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드는 순간,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짧은 시간. 인간은 종종 그 감각을 무시한다.
너무 작고,
너무 애매하고,
너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바로 그 작은 떨림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 떨림은 겁내는 것과도 다르고, 망설임과도 다르다. 오히려 인간 안에서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어떤 것이 마지막으로 보내는 신호에 가깝다. 이 길로 가면 또 하나의 거울이 시작된다고, 또 하나의 밤이 다음 아이에게 넘어간다고,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슬픈 직관. 사람은 생각으로 세계를 이해한다고 믿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몸이 먼저 진실을 알아본다.
이 손이 움직이면 너무 오래 반복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손이 멈추면 비로소 처음 보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감각들 사이에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다.
그것은 거울이다.
어떤 땅에서는 한 아이가 자기 기억을 들여다보고, 다른 땅에서는 또 다른 아이가 자기 기억을 바라본다. 두 아이는 서로를 보지 못하지만, 각자의 기억 속에는 이미 서로의 얼굴이 비쳐 있다. 하나의 거울이 다른 거울을 향해 놓이면 그 사이에는 끝없는 원망과 증오, 그리고 복수의 반사가 만들어진다.
같은 장면이 끝없이 이어지고, 같은 분노가 세대를 건너 반복된다.
한 번 던져진 돌은 또 다른 돌을 낳고,
한 번 당겨진 방아쇠는 또 다른 방아쇠를 준비한다.
한 사람의 두려움은 다른 사람의 복수가 되고,
그 복수는 다시 또 다른 아이의 공포가 된다.
그렇게 거울과 거울 사이에서 증오는 끝없이 되돌아온다. 사람들은 그 반복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역사라는 말은 너무 자주, 그 반복이 마치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거울의 구조에는 언제나 하나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거울 앞에 선 사람이 잠시 시선을 바꾸는 순간이다. 자기 얼굴만 바라보던 눈이 아주 잠깐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는 순간, 그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던 반사는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흔들림은 아주 작지만 분명하다.
손가락이 잠깐 멈추고, 숨이 한 번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짧은 찰나가 생긴다.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그 한 사람 안에서만 먼저 작은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대부분의 큰 변화는 언제나 그런 보이지 않는 균열 하나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개 칼날의 크기가 아니라, 그 칼날을 쥔 손이 한순간 스스로를 의심해 보는 그 짧은 떨림이다.
그리고 때때로 바로 그 순간, 인간은 자신도 몰랐던 감각 하나를 느낀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직관.
이 손이 움직이면 또 다른 거울이 시작된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아는 감각.
그래서 이 이야기는 사건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빛에서 시작되고,
금속에서 시작되고,
빵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손에서 시작되고,
어떤 침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하늘 아래에서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인간의 육감에서 시작된다.
언젠가 한 사람이 그 떨림을 따라 손을 멈출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순간,
서로를 향해 놓여 있던 두 개의 거울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오래된 반사가
처음으로 멈추기 시작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