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책은 배수아의 <작별들 순간들>
밖으로 나서는 게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추운 겨울에는 추워서, 더운 여름에는 더워서. 햇살 좋고 창밖으로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완벽한 봄날에 조차 몸뚱이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도시의 21층 아파트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고 코앞에 멋진 공원, 심지어 성 앞에 있는 호수를 둔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만 보며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여기에선 훨씬 더 강하게 산책하고 싶었다.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있었고 멀리 나가서 모르는 곳에 도달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만일 친구에게 함께 산책하자는 연락이 온다면 단숨에 하던 것들을 내팽개치고 얼마나 재빠르게 튀어갈까? 낮은 차원의 내가 (귀찮음에 충실한 몸뚱어리 나) 그럴 의지가 없다면 조금 더 높은 차원의 내가 그것을 제치고 나를 일으켜줘야 했다. 발랄한 친구의 목소리처럼.
이곳 독일의 일상에서 산책은 그저 움직이고 숨쉬기가 아닌 바깥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 도로와 차, 가게의 간판들이 보이던 한국의 내 동네가 아니라 드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산책하러 나가는 길은 그 사이에 작은 비어가든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가게도 없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한국에서 산책길을 떠올리면 21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걷고 차들이 쌩쌩 다니는 4차선 이상의 도로를 끼고 수많은 카페와 식당, 병원과 미용실을 구경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 독일의 내 방에서는 달랐다.
내 방은 한국식으로 2층에 있었기에 계단을 한 번만 내려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땅을 밟으면 곧 작은 기숙사 야외 주차장을 지나게 되고 잠깐 S반 철도와 평행으로 걷다 보면 왼쪽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들꽃과 풀들이 뒤엉켜있는 밭을 지나쳐 양옆으로 나무들이 빽빽한 길을 걷는다. 그 길은 시멘트처리가 된 도로이고 도로와 나무 사이에는 사람이 쉽게 앉을 수 있는 크기의 큰 돌들이 놓여 있다. 이곳은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밤에 걸으면 퍽 무섭지만 낮에는 밝기만 하다.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씽씽 지나는 독일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혼자 걷는 사람이나 뛰는 사람도 많고 둘 셋 모여 대화를 하며 걷는 사람들도 많다.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고 지나가는 개들도 서로를 반가워하는 듯했다. 산책하다 만나는 이방인이 눈치챌 정도의 삶의 복잡성은, 모두 집에 두고 왔다. 나는 커다란 상자 같은 유아용 웨건을 자전거 앞에 매달고 두 다리로 힘주어 제 길을 가는 엄마들을 존경했다. 아파트 놀이터에 서서 휴대폰을 힐끔 이거나 마땅히 갈 곳이 쇼핑몰밖에 없는 것보다는 번쩍번쩍 아이를 들어 올려 자전거로 실어 나르는 편이 멋져 보여서, 많은 순간 이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어른의 자전거 뒤에 연결된 끈에 의지해 본인의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주 입는 초록색 야상 점퍼에는 양 옆에 책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주머니가 있었다. 주머니에 책과 연필 한 자루가 들어있을 때는 길가의 아무 벤치에나 앉아 책의 아무 곳이나 펴서 읽는다. 거의 항상 그 책은 배수아의 <작별들 순간들>이었다. 그 책은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서서히 주변의 공기가 가라앉고 책에서 불어오는 어떤 바람냄새, 풀냄새를 맡는 것 같았기에 산책길과 아주 잘 어울렸다. 이런 문장도 있었다. "책이 없는 산책이란 신발이 없는 산책보다도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늘 같은 책을 골랐고 이런 읽기에서 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책의 배경이 독일이었기에 그 책은 마치 이 영화의 주제가처럼 일 년 내내 곁에 있었다. 걸으며, 멈춰 서서, 아침에나 밤에. 아무 때나 아무 데나 별 쳐 읽으며 베를린 인근의 정원이 딸린 오두막에서 오트밀을 먹으며 보내는 겨울과 뒤영벌의 웅웅 거림이 있는 여름을 묘사하는 그녀의 문장을 즐겼다.
그 책으로 말미암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기댈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을 만든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가 자리한 작은 오두막에 깊이 머무는 사람이었고 뇌우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느 날 비로소 고요해진 사람이었다. 산책길 어딘가에 앉아 그녀의 책을 펼치고 연필로 밑줄을 긋는다. 고독하고 평화롭고 자연의 속삭임까지 듣는,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보고 죽어있는 벌도 징그럽지 않은 그 순간에. 펜이 아니라 적당히 가는 연필이어야 한다. 연필과 종이가 만나 나는 조금 사각 한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미소를 머금는다. 그렇게 산책 속에서 나는 책으로 다시 산책을 떠났고 그 책은 정말이지 문장 사이를 이리저리 거니는 느낌이었다. 문장들을 거닐다 내가 쳐둔 밑줄을 인사처럼 발견했고 그저 반가워하며 다시 지나쳤다. 막 읽은 내용이나 문장을 기억하지 않아도 될 때 책은 그저 여러 향을 내는 하나의 산책길이 된다. 언젠가 작별들 순간들 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며 배수아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았다. 언뜻 보면 모노톤이지만 그 안에 빨간 불을 머금고 있는 양 단단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해보았을 때 내 목소리도 그녀의 것과 같았다. 다시 혼자 걷고 혼자 잠드는 것에 용기를 얻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두운 저녁이었다. 우산도 없이 호숫가로 걸었다. 긴 안개 끝에 뭉게뭉게 신비로움이 올라오는 호수와 연노랑빛으로 은은하게 불 켜진 작은 성이 있었다. 회색의 하늘 저 위에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갔다. 젖은 나뭇잎 들은 내 발 밑에서 수군거렸고 물방울이 잔뜩 뭍은 내 안경 유리에 휴대폰 라이트를 갖다 대니 수십 개의 유리조각처럼 빛났다. 사람은 없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오직 자연과 나를 두는 것. 그 순간은 미술관에 가서 훌륭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재미있다. 그렇게 산책길에서 훌륭한 시간을 보냈다.
방에서 산책길까지는 단순히 5분 거리라고 할 수 없었다. 그 길이 어찌나 먼지 줄곧 도달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바로 집 앞인 것처럼 쉽게 드나들던 때도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다면 매번 놀라워했다. 그곳이 내 방에서 아주 가깝다는 사실에. 그런데 이토록 내가 보는 세상과 기분을 단숨에 바꾼다는 것에.
방에 있으며 산책을 머리로만 떠올릴 때 그 5분 거리가 아주 멀게 느껴질 때. 열차를 타고 새로운 공원이나 강가에 가볼까 고민만 하며 손과 눈은 휴대폰의 작은 세상에 고정되어 있을 때 생각했다. 내 다이어리 앞 페이지는 멋진 말들로 아름답게 채워가면서 정작 내 일상은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지 않다고. 꾸준히 내가 좋아하고 바라는 것들을 가득 담아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닮아가려면 낮은 차원의 자아를 끊임없이 넘어서야 한다. 그 순간순간 게으름을 이겨 각성해야 한다. 편한 상태에서는 시간이 너무 잘 가버리니까. 멀리 가지 않아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널려있다. 장을 보러 가기, 요리를 하기. 방 정리를 하기. 무엇보다 문을 열고 나가 산책을 하기. 언제나 집 앞에 있는 S반 역을 보며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같은 공원과 산책길을 찾은 이유는 결국에는 더 다양한 곳을 가보지 못했다는 것보다 좋아하는 곳을 더 여러 번 가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책길은 내게 좋은 것만 주는 곳이었고 나는 오직 그곳에 더 많이 가지 못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