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채화 수업 / 바보 됨을 즐기라는 뜻이다
수업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우산을 가지러 들어가는 대신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을 벗어 머리 위에 둘렀다. 개강 2주 차에 첫 수업을 하는 수채화 수업이었다. 하나 신청한 미술학부의 수업으로 가장 기대했던 수업이었다. 강의실 번호는 9로 시작하고 이것은 BTZ(Bild und teacher Zentrum)라는 별도의 큰 방 하나로 이루어진 하나의 건물이었다. 학생 식당인 멘자(Mensa) 아래에 있으며 투명한 벽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안을 볼 수 있다. 강의실이 이곳이 맞다는 확신도 없는 채로 BTZ에 입장했다. 다른 교실과는 확연히 다른 미술 공간이었다. 네모난 형태로 사방에 종이를 자르는 기계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 엄청나게 많은 서랍들이 놓여 있고 가장 가운데에 교실 같은 형태의 피피티를 띄우는 곳과 학생들이 앉는 긴 책상이 디귿자로 놓여 있었다. 벌써 학생들 대부분 앉아 있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자리에 앉았다. 디귿자의 오른쪽 부분이었다. 이곳이 맞는지 모르겠어서 옆에 앉은 친구에게 노트북으로 강의명을 보여주며 맞는지 물었다. 맞다고 했다. 나이가 적지 않은 남자 교수님이었다. 독일어로 수업이 진행됐다. 내 이름도 출석부에 있었다. 교수님은 내 이름을 부르면서도 영어로 한마디도 해주지 않고 넘어갔다. 교수님은 무엇을 설명하셨고 피피티에는 다양한 사진과 그림, 글씨들이 지나갔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내 책상에는 노트북과 일기장이 놓여 있었고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커다란 도화지와 물감과 붓, 물통이 있었다. 강의 계획서를 다시 들여다보았지만 어디에도 스케치북과 물감을 가져오라는 설명은 없었다.
학생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물감을 들고 교수님이 계신 앞으로 나가는데 나는 물감이 없어서 나가길 주저하고 있었다. 그대로 자리에 남아 있는 내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물감 색을 보러 나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냥 여러 겹의 학생들 뒤에 서 있기만 했다. 다리가 아팠다. 힐끔힐끔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채우고 있는 친구들을 보았다.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나는 완전히 구경꾼이자 이방인, 투명인간 같았다. 온몸이 긴장 상태였고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채, 누구와도 알지 못한 채 이곳에 있는 게 힘들었다. 내가 독일어를 못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독일어로만 진행되니 집에 가라는 건가 싶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불편한 공간에서는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큰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 말도 못 알아들으며 존재하는 것. 그 불편하고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태를 버티는 일이다.
교수님이 준비해 주신 흑백의 건축물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학생들은 사진을 한 장씩 골라서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남은 것 중에 한 장을 골랐다. 그 사진을 따라 그리라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물을 받고 팔레트를 펼치고 있을 때 나는 교실 뒤편에 계셨던 교수님께 갔다. 교수님께 다시 한번 물었다. 내가 지금 독일어를 못 하는데 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거냐고 말이다. 교수님은 그렇다고 했다. “네가 원한다면 여기에 있어도 된다 (If you want, you can stay here)."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하고 가시려는 교수님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감과 붓, 종이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큰 문제 아니라는 듯 척척 이곳저곳 서랍에서 그것들을 꺼내주셨다. 물 컵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교수님은 사라지셨다. 나는 싱크대로 근처에 쌓여 있는 얇은 플라스틱 컵들을 보았고 그 컵 하나를 꺼내 물을 받았다. 나중에는 교수님이 붓을 꺼낸 서랍 옆에 물 컵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첫날에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게 그 교실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누비는 동안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어떠한 설명도 알아듣지 못하고 종이 한 장과 물감, 붓, 종이컵에 담긴 물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다른 학생들을 힐끔힐끔 살펴보니 물감을 사용하기 전에 펜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펜이 없었다. 그때 왼쪽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자기가 쓰던 것과 같은 펜을 여러 개 내밀었다. 나는 고맙다고 하며 그중 하나를 받았다. 그 펜은 물에 닿아도 번지지 않는 펜이었고 많은 학생들이 같은 펜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 펜을 사진으로 찍으며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애는 ‘이데’라고 했다. 이데.. 이데가 어디일까? 나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부터 어려웠고 내가 그린 선은 확신도 없고 균형도 맞지 않았다. 건물 모양이 빼뚤빼뚤하기만 한 것 같았다. 이삼십 분이 지나자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책상들 뒤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교수님은 모두 그린 그림을 가지고 그곳으로 와 그림을 보여주라고 했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들이 바닥에 함께 깔렸다. 그 사이에 내 그림을 절대 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잘 그린 그림들이었다. 교수님은 한 장씩 코멘트를 하고 그린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학우 한 명에게 그 그림에 대한 코멘트를 말하도록 했다. 전부 독일어였기에 나는 그저 도망치지 않고 잘 서 있는 것에 집중했다. 많은 학생들이 닥터마틴 워커를 신고 있구나, 검은색 옷이 많구나, 얘네는 액세서리를 많이 하는구나, 옷이 깔끔하고도 센스 있네, 와 같은 생각을 했다.
내 그림은 너무 형편없어서 지나칠 줄 알았는데 한 개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내 그림을 집어드신 교수님은 내게 이름을 물으셨다. ‘하리’라고 말하자 독일어 발음의 혀로 목구멍이 살짝 막힌 r 소리로 ‘하기-’에 비슷한 ‘하리-’를 발음하셨다. 내 그림의 어느 한쪽 부분을 칭찬하시더니 분홍색 옷을 입고 있던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남학생에게 코멘트를 해보라고 했다. 그 애는 몇 초 망설이더니 교회를 잘 그렸다며 마음에 든다고 했다. 교수님은 느린 영어로 그림자를 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교육 대학교이긴 하지만 미술 과목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 내 그림을 두고 서 있는 것이 민망할 뿐이었다.
피드백 시간이 끝나고 다음 시간에 대한 몇 가지 안내를 하셨다. 내가 알아들은 것은 ‘다음 주 금요일’ ‘만나다’ ‘밖에서’. 학교 근처에 있는 호수에서 만난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무슨 대단한 화가가 온다고 모두 저녁 7시에 어디에서 하는 전시에 꼭 오라고 하는 것도 들었다. 몇 단어씩 알아 들었지만 모든 것이 모호했다. 먼저 다가와 영어로 말을 해주는 친절은 아무도 베풀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어딘가 밖에서 만난다는 그런 중요한 사실 정도는 영어로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쁜 것보다는 단지 지쳤다. 가방을 싸고 갈 준비를 하고 있던 옆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나 뭐 좀 물어봐도 될까..? 다음 주에 어디에서 만나는 거야? 그리고 그다음 주 화요일 그건 뭐야?” 그 친구는 무척 친절하게 알려줬다. 다음 주에 만나는 장소는 내가 생각했던 곳이 맞았다. 나는 내킨김에 그 친구의 전화번호까지 받아 두었다. “Can I have your number? Just in case.. 내가 길을 잃거나 하면..ㅎㅎ” 그 친절한 아이의 이름은 딜란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가 보낸 메시지는 다음 수업에 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위안이 되었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Hello. This is Dilan:) Nice to meet you! I’m happy to help whenever I can.’
딜란이 가고 다른 몇몇 친구들을 따라 들어올 때와 다른 편 문으로 나갔다. 내게 말은 걸지 않지만 뒤따라 오는 나를 위해 문은 살짝 잡아주는 친절에 힘입어 그들에게 한숨 섞인 혼잣말을 하듯 말을 꺼냈다. “나 이 수업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그림 배워본 적도 없고 그냥 해보고 싶어서 왔는데.. 독일어 하나도 못 알아 들었어. 내가 교수님께 독일어 못 하는데 들어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된다고 했거든? 근데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한마디도 안 하다가 긴 말을 쏟아낸 내게 다행히 답변이 돌아왔다. 같이 걸어가던 그 아이들이 “그럼~ 어차피 그냥 그림 그리는 건데 할 수 있어. 하면 되지.” 이런 말이었다. 동료 학생들의 동의를 얻었다는 면에서 다시금 다음 수업에 갈 위안을 얻었다. 그 아이들을 따라가니 학생식당이 나왔다. 모르는 길이었다. 밥을 같이 먹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거기까지 말해볼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았기에 여자 아이에게 펜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는 지만 물어보고 헤어지기로 했다. 내 물음에 그 아이도 ‘이데-’라고 했고 나는 타자를 쳐달라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구글 지도에서 이데를 찾은 후 인사를 했다. 너무 지쳐서 발걸음이 깊은 물속에서 걷는 것처럼 느렸다. 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걸었다. 아주 추웠다. 그래도 뿌듯했다. 물어볼 걸 다 물어보았으니 다음 수업에 갈 수 있고 준비물을 챙겨갈 수 있다.
학생식당까지 함께 걸었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아나벨과 큐였다. 이후 큐는 그날 내가 학생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가버렸다고 말했다. 아나벨은 그날 밥을 먹다가 다음 주 수업 장소를 내게 알려주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걱정했다고 했다.
Play the fool. 바보 됨을 즐기라는 뜻이다. 교실에서 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고 그림 실력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형편없었다.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느꼈다. 그럴 때 Play the fool이라는 말이 같이 떠오른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좋아하던 그 말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 같은 그 상태를 그냥 즐기라는 이 말에 따르면, 내가 하고 싶은 걸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못 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에는 못 하는 게 당연하니, 그냥 그 바보 같은 상태에 가볍게 뛰어들어 재밌게 즐겨라. 독일어와 미술이라는 이곳의 과제가 지금까지 해온 과제와 전혀 달라서 이제 처음 시작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교실에서 난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독일어도 알아듣고 그림도 놀랍게 잘 그리고 말이다. 어디에서나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쉽고 편하다. 서툴고 잘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게 더 어렵지만 그걸 잘 해낼 수 있을 때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놀랍도록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잘하냐 보다 하느냐 하지 않으냐가 중요한 일이 훨씬 많았다. 새로운 경험이 목적인 교환학생에서는 더욱더.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았고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알리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걸 덜 망설이고 못 하는 상태로 존재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내가 원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진짜 학생인 이 아이들과 구경꾼이자 체험학생인 나는 달랐고 성적이 필요하지 않은 나는 잘하는 것에 목숨을 걸 필요 없이 잘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이곳의 학생들은 내가 얼마나 귀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이곳이 얼마나 다르고 특별한지 모른다. 내게만 그렇다. 이런 일상의 상황들이 어떤 여행보다 여행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교환학생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