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를 못 하는 데 왜 왔니?
교실에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볼이 빨개지고 숨이 달뜬다. 긴장되는 마음에 지나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다. 독일의 1층은 1층이 아닌 2층. 2층은 2층이 아닌 3층. 강의실 번호의 맨 앞자리가 층수를 뜻하는 것은 한국과 같다. 사람들이 걷는 대로 걸었더니 대충 맞는듯한 길로 갔고, 3층 구석에 내가 찾던 교실이 있었다. 화장실 찾기에 실패한 까닭에 교실로 바로 왔더니 오전 8시 15분에 시작하는 수업에 7시 55분에 도착했다.
이 수업은 독일어로 진행되는 체육 수업이었다. ‘균형’이라는 강의명 하나만 보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신청했다. 텅 빈 교실에 학생 한 명만 앉아 있다.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독일의 어느 대학교, 그곳의 한 강의실에 금발 머리를 한 백인 학생을 앞에 두고 앉아 있어 본 적은 여태껏 없었다. 대학에 선배보다 후배가 많은 4학년이었지만 이곳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독일어를 모르는 데 독일어로 진행되는 수업 강의실에 앉아 있는 내 머릿속에는 “네가 독일어를 못 하면, Warum bist du hier? (왜 여기 있니?)”라는 질문과 그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했다.
긴장과 불안으로 이리저리 삑삑거리는 내 머릿속과 달리 교실은 적막뿐이었다. 두 줄 앞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안녕..? 나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왔어.. 이름은 하리라고 해.. 지금이 첫 번째 수업이라 되게 떨린다.. 너는 이름이 뭐니..?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만한 여러 가지 말을 머릿속에서 돌려 보았지만 끝끝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에 들어온 예쁜 귀걸이를 한 내 앞줄 아이나 다른 학생들도 뒤를 돌아 내게 인사를 하는 일은 없었다. 말을 걸만 한 것 같은데 조용히 있는 시간이 어색하여, 이런 상황에서 내가 독일어를 잘하면 말을 잘 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나보다 독일어를 못 하는 나는 내가 독일어를 아주 조금만 할 수 있어도 독일어로 말을 걸고 영어로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영어를 못 하는 나는 영어만 할 수 있어도 말을 쉽게 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걸. 대화를 시작하는 힘은 언어 실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결국 말을 걸지 못하고, 부끄러워서 인사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일기장에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또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완전 소심이에 의지부족이라고 말할 필요 없다고. 그게 더 편하기 때문에 편한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 뒤에서 관찰하며 조용히 머무는 이 순간이 편안하지 않았다면 말을 거는 것에 성공했을 것이다. 안 떨어지는 입을 떼고 눈을 꼭 감는 심정으로 알을 깨고 나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런 긴장과 흥분의 순간을 만들지 못했을 때 조용하게 편안한 나의 자리에 머무는 것도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자신감 있고 먼저 말을 잘 걸고 잘 웃는, 그런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시기라고 여겨지지만 꼭 내내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분명 결국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게 될 거야.’ 주문 같은 믿음으로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너무 무거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신을 소개하고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각자 다르고 방법과 모습도 제각각이다. 자신의 결대로 그 시간을 가졌을 때 급하게 만들어서 엉뚱한 친구가 아니라 잘 맞는 친구를 사귈 확률도 올라간다. 따라서 생각했던 만큼 적극적이지 못하고 내성적인 나의 모습을 꼭 극복해야 하는 답답한 것으로 볼 필요 없다. 이런 내가 이곳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내게는 의미가 있다. 조용하게 머무는 순간도, 나에게 방해받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혼자 머무는 시간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교실에 있던 네 명의 학생들은 핸드폰을 확인한 한 여학생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르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다른 강의실로 옮겨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공책을 가방에 넣고 쭈뼛쭈뼛 그들을 뒤따라 갔다. 그들은 아예 건물 밖으로 나가고 내가 올라왔던 큰 계단을 내려가고 야외 축구장을 지나 체육관 쪽으로 갔다. 그들은 둘씩 짝지어 서로 대화하며 가는데 나는 인사도 하지 못한 상태로 그저 뒤따라 갔다. 조용하고 낯선 동양인 학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학생들이 야속했다. 온통 흰색으로 페인트칠해진 체육관에 들어가니 커다란 방으로 된 공간이 3개 있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숱이 많은 단발머리에 체육복을 위아래로 입고 있는 마른 몸의 중년의 여자 선생님을 중심으로 일곱 명 정도의 학생이 이미 그곳에 있었다. 여학생들은 높이 하나로 묶은 머리에 검은색 레깅스와 딱 붙는 반팔티, 흰 양말을 레깅스 위로 올려 신은 경우가 많았다. 남학생들은 통이 큰 반바지나 바지에 평범한 운동복 상의였다. 나를 포함해 교실에서 온 학생들만 운동복이 아니었다. 실내용 운동화도 없어서 양말만 신은 채 균형대 같은 곳에 앉았다. 선생님은 이동식 책상에 올려진 노트북과 빔 프로젝터로 피피티를 띄워 이 수업과 균형의 교육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마치 다 알아듣고 있는 냥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못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한참 뒤 교수님은 피피티 화면에 띄워진 기구를 가리키며 내게 이것을 아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그제야 입을 뗐다. “(독일어로) 아…. 사실 나 독일어 못해요. 못 알아 들었어요. 영어로 말해도 될까요? (영어로) 저는 교환학생이고 원래 학교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해요. 제 학교에는 체육 수업이 없어서 이 수업이 너무 궁금했어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독일어를 하지 못한다는 말에 선생님의 눈이 잠시 동그래지더니 “어…엇.. Welcome!”이라고 웃으며 말하셨다. 이후 그는 영어로 무언가를 설명해 주려고 하셨지만 영어를 잘 못하셨다. 난 거의 95%를 알아듣지 못한 채 열심히 들었다. 독일어로 된 체육 학부의 균형 수업 오티를 말이다. 설명 이후에는 균형 감각이 중점이 되도록 하는 여러 가지 기구를 짝꿍과 함께 다 시도해 보는 활동을 했다. 내 짝은 루카라는 남자아이였는데 그도 영어를 아주 잘하지는 않았지만 귀여운 느낌의 순한 아이였다. 잘 웃어줘서 다행이었다. 난 기구를 시도하는 것보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번쩍번쩍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롤링판 위에서 능숙하게 균형을 잡는 멋진 여자들이 있었다. 팔, 어깨, 배, 엉덩이, 허벅지 등 근육이 곳곳에 자리 잡혀 몸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탄탄하고 건강하고 강한 느낌이었다. 그것과 비교했을 때 나의 몸은 백지와 같았다. 물렁 물렁한 몸으로 짐볼 위를 열심히 구르며 내 몸이 10개라면 그중에 하나는 체육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지도.
수업이 끝난 후에는 모두가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에 갔고 나는 교수님과 따로 인사를 하며 나는 학점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어떤 여자애가 문 근처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체육관에서 나오자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 교환학생이야?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나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갖고 말을 걸어주는 건 빛 같은 존재였다. 이렇게 서툴고 이렇게 다른데도 누군가 내게 이름이나 국적을 묻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막 도착한 나는 누구라도 내게 갑자기 인사를 하고 나에 대해 묻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거나 산책을 하자고 말한다면 기뻐하기만 할 거였다. 하지만 쓸데없는 예의를 차리는 건지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건지 아무도 내 앞에서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게 말을 건 그 아이의 이름은 앨런이었다. 앨런은 체육이 아닌 미술 학부이며 지난 학기에 일본에 교환학생을 다녀왔다고 했다. 아하, 그것이 그녀가 내게 말을 걸 수 있었던 이유였나 보다. 교환학생을 해보면 말을 걸어주는 게 반갑기만 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독일에서 참 먼 나라인 일본에서 백인 여자애는 또 어떤 경험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기숙사까지 함께 걸어왔다.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한 채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다시 한번 8시 15분에 체육관에서 수업이 있었다. 이번 수업도 독일어로 진행되는 체육학부의 수업이었으며 강의명은 바로 ‘춤’이었다. 어제보다 체육관에 모여 있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학생들은 구석 벽에 등을 기대어 한 줄로 주르륵 앉아 있었다. 다들 체육복을 입은 곳에서 나만 보라색 진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체육관용 운동화가 없어서 신발을 벗은 채 해야 했는데 나는 줄무늬 수면양말을 신고 있었다. 나만 백인이 아니었고 나만 독일 수업에서 독일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이 수업의 경우 난 교수님에게 미리 메일로 여쭤보았었다. ‘제가 독일어를 못하는 교환학생인데 이 수업에 참여해도 될까요?’ 하고 말이다. 교수님은 강의보다 활동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니 괜찮으며 환영한다는 답장을 주셨다. 그래서인지 내 존재에 놀라지 않고 내 이름은 영어로 출석을 부르셨다. 처음에는 교수님이 독일어로 설명한 후 끝에 잠깐 영어로 요약을 해주셨다. 그러다 영어를 전공한다는 레베카라는 한 친구가 내 통역으로 나섰다. 그 친구는 내 옆으로 와서 활동을 하는 동안도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그 친구가 영어로 하는 말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고마운 마음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러한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여기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상태로 존재하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과제를 수행하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몇 번의 수업을 더 들으며 나는 점차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존재가 되는 것에 익숙해졌다.
메모
날씨가 엄청나게 화창했다. 새 학기 같았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니,라는 노래를 들으며 햇빛이 쨍하게 비치는 거리를 걸었다. 다 모르는 사람이고 그들의 눈에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겠지만, 새로운 교실에 앉아 있는데 독일어가 촵촵촵촵 들린다. 어떤 말들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냥 공항에서 모르는 언어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르는 말들이 귓가에 웅웅 울린다. 여름 매미가 찌르찌르 우는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