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베를린 (2), 남자 집에서 카우치 서핑

여행이 초라해질 때

by 반하의 수필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베를린 시내로 왔다. 시내에서 이리저리 걸었지만 재미있는 일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의 일정은 나를 재워줄 두 번째 집에 가는 것뿐이었다. 잘 곳에 전전긍긍하며 여행을 즐기지 못하다니. 초짜다웠다. 카우치 서핑 2회 차가 되었지만 첫 번째처럼 떨렸다. 이번에는 혼자 사는 남성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집은 두 밤이었다. 집이 베를린 외곽에 있었기에 우반을 타고 시내와 멀어졌다. 카우치 서핑이 아니었으면 가볼 일 없을 동네였다. 역 근처에 케밥이나 랩 같은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다이소처럼 생긴 마트가 있었다. 역에서 조금 더 벗어나면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들만 있는 평범하고 낡은 주거단지였다. 횡단보도를 건너 들어선 큰 터널의 벽은 그라피티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나는 사람이 많이 없어 살짝만 어두워져도 겁이 났다. 호스트가 보내준 문 사진을 보며 비슷한 문을 여러 개 지나쳤다. 마침내 내가 찾던 집이 나왔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1층에 호텔 같은 로비가 있는, 커다란 오피스텔이었다. 그에게 연락을 하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 내 옆에는 누군가의 음식을 지닌 배달 기사도 있었다.


곧 나의 호스트가 나왔다. (그의 이름은 Fuad Mwalad인데 여전히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겠다.)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첫인상이 나쁘지는 않았다. 키가 작지만 덩치가 적당히 있고, 짧은 머리에 수염도 있는 중동의 아저씨였다. 오피스텔의 큰 로비를 지나 짙은 회색의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들은 바로, 그는 예멘 출신이며 최근 베를린에서 영상작업을 하는 온라인 기반 회사에 취업했다. 영어는 잘 하지만 독일어는 잘하지 못하며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 친구도 많이 없었다. 그의 층에 내리자 집이 아주 많은 복도가 나왔고 한번 오른쪽으로 꺾자 그의 집이 나왔다. 화장실과 내부 사이에 작은 부엌이 있었다. 딱 한 사람이 살 작은 공간에 아랍풍 남성의 진한 향수 냄새가 가득했다. 붙박이 옷장과 창문 쪽으로 붙은 작은 책상 사이에 침대가 있었다. 그 침대 아랫부분을 당겨 나오는 간이침대가 내가 잘 곳이었다. 그는 배게 하나와 큰 회색 담요를 주었고 내 짐을 위해 서랍 하나를 비워줬다. 그는 집에 있는 아무거나 건드려도 되고 써도 된다며 편하게 자기 집처럼 사용하라고 말했다. 우선은 배낭을 두고 집에서 나왔다. 마땅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춥고 스산한 길거리나 그밖에 없는 그의 집이나 불안하고 재미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래도 그의 집이 조금 더 불편했기 때문에 우선 시내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사이 그는 베를린에서 유명한 카페 목록이 담긴 릴스를 여러 개 보냈다. 마음이 가는 곳은 없었지만 대충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 유명한 박물관답게 단체로 가는 사람이 아주 많아서 몸이 꽉 꼈다. 박물관에 도착해 무료 티켓을 받아 들어갔다. 무거운 돌로 만들어진 사람들 얼굴이 잔뜩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을 보기도 전에 그 박물관에서 나오고 말았다. 박물관의 사진이나 글씨에 하나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호스트가 있는 그 작은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떠올리면 온몸이 불편했다. 불안과 걱정이 서서히 차오르다 내 주변 모든 공기를 차갑게 만들고 목 끝까지 올라와 어지러웠다. 방뿐만이 카우치서핑에 있는 행아웃 기능도 켜놓았기 때문에 자꾸만 휴대폰이 알람으로 징징 울렸다. 함께 만나서 시간을 보내자는 모르는 사람의 행아웃 신청은 대체로 남성이었다. 심심했고 외로웠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안전하고 따뜻하고 재밌는 거였다. 그러기엔 또래 여자인 편이 좋을 텐텐 연락이 오는 건 전부 나이 많은 남자였다. 그들이 써놓은 프로필을 읽어보고 사진도 들여다봤다. 어렵게 고르고 수락할 마음을 내도 결국 정말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참 어려운 일이었다.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보았지만 모두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존재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편안하고 안전한 돌아갈 공간이 없는 것과 모르는 사람의 손이 가까이 닥치는 것 같은 느낌, 그러다 영영 혼자인 느낌은 불행했다. 처음 하는 혼자 하는 여행이 내게 깨달으라 외치던 것은, 책이나 영화에 나오던 멋진 우연 같은 일은 없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것인 듯했다.



나는 결국 호스트의 집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불편했지만 나쁜 일은 아무것도 없이 이틀을 지냈다. 하루는 그 남자와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가고 카페에 가기도 했다. 카우치 서핑을 왜 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도 여행할 때 카우치 서핑을 이용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나누는 것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그의 가치관은 참으로 칭찬할만한 것이지만 나는 왠지 그가 외롭고 허전해서 낯선 이를 재워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독일인들은 곁을 내어주지 않으며 길에 사람이 죽어 있어도 쳐다보지 않을 거라며 치를 떨던 그는 우연한 사람에게 기대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는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시끄러운 본인 취향의 음악을 틀었고 편한 자세로 컴퓨터를 했다. 내게도 집처럼 행동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서로가 없다는 듯 행동하는 건 배려와 초대가 아니었다. 그는 나의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았고, 나는 그의 공간에 그저 숨죽여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카우치 서핑을 하며, 독일에 친구와 가족이 많은 사람들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호스트로 활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느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외로워본 사람이 다른 외로운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그들의 품보다 외롭지 않은 이들의 품이 더 따뜻하다는 건 슬픈 진실이다. 이런 방식으로 돈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식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어하는 여행에서 나는 자유롭지 않으며 초라하다고 느꼈다. 선택지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었다.





IMG_2747.JPG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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