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베를린 (1), 첫 카우치 서핑

쓸쓸하고 심심했던 혼자 여행기

by 반하의 수필

베를린에 대한 찬양을 그토록 많이 들었는데 내가 도착한 그곳은 심심하고 차갑기만 했다. 우반을 타든 버스를 타든 많이 걷든 도착할 곳이 없고 길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우연도 없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빈티지샵 쇼핑에도, 식사에도 흥미를 잃었다. 벽에 즐비한 그래피티들은 베를린의 상징이라지만 나는 그것들이 낯설어 내내 도망치고 싶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3월 말은 여전히 겨울 같았다. 반짝이는 햇빛이나 푸릇한 공원,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없었다. 여름이 아닐 때의 유럽 여행은 혼자 즐기기 난이도가 상당하다. 그제서야 내가 본 유럽 여행기는 다 여름에 씌여진 거라는 것을 눈치챘다. 초가 켜 있는 멋진 식당이나 바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혼자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에서 혼자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혼자였던 수많은 여행작가들은 대체 어떻게 즐거움을 찾고 혼자 돌아 다닌 건지 답 없는 물음만 가득해졌다.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줄 알았으며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낭만이 가득했던 난 좌절했다. 잎사귀도 없고 사람도 뜨문 뜨문 지나가는 공원에 앉아 색색깔의 돗자리와 사람으로 가득찬 여름 풍경을 상상했다. 그때는 혼자 책을 읽고 따사로운 햇살에 잠시 눈을 감을 수도 있을텐데. 배가 고픈 채로 슈퍼에서 산 청포도를 한알씩 뜯어 먹고 있었다. 하루 종일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입이 말랐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손을 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심지어 너무나 추웠다. 생김새가 무척 다른 작은 아시아인 여자라는 정체성도 너무 크게 느껴져서 자꾸만 움추러 들었다.


베를린 여행의 큰 퀘스트는 카우치서핑이었다. 카우치서핑은 소파를 뜻하는 카우치(소파 Couch)와 파도를 탄다는 서핑(Surfing)의 합성어이다. 여행자 커뮤니티로, 간단하게 말하면 남의 집에서 돈을 내지 않고 자는 것이다. 어플 소개글에는 ‘현지 사람들과 머물고 여행자들을 만나요. 진정한 여행 경험을 나눠요. Stay with Locals and Meet Travelers. Share Authentic Travel Experiences’ 라고 적혀 있다. 이 말대로 여행자와 여행자, 여행자와 현지 사람을 연결해 주는 어플이다. 여행하는 사람은 비용 부담 없이 잠 잘 곳을 마련할 수 있고 현지인을 만날 기회를 얻는다. 호스트는 자기 집 한편을 제공해주며 세계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다. 호스트는 자신이 여행할 때 카우치 서핑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여행 관련 유튜브 영상이나 여행 에세이를 많이 보았던 나는 카우치 서핑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카우치 서핑을 이용해 세계 여행의 경비를 많이 줄였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 지 의심도 되고 무섭기도 했다만 돈을 내지 않고 잠을 자며 현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니, 대단히 좋은 일이 아닌가 싶었다. 어플에 있는 호스트의 자기소개나 이미 그 집을 거쳐간 많은 여행자들이 적어 놓은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좋은 호스트이다.’ 따위의 리뷰를 보면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위험 부담이 없는 선택지는 너무 좁고 비싸니까,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많은 프로필을 읽고 긴 메세지를 보냈다. 대부분은 답장조차 없었다. 처음이라 받은 리뷰도 없어서 인지 예상보다 호스트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자세한 자기소개나 방 사진도 보지 못 한채 나를 수락해준 어떤 이의 집에 가는 날이 왔다.


한 집에서 오래 머물러도 되지만 너무 길면 수락을 해주지 않을까봐 나누어서 구했기에 베를린에서 두 명의 호스트를 만났다. 첫번째는 안나(Anna)라는 중년의 여성분이셨다. 그분의 집은 베를린 시내에서 30분 정도 S반을 타고 가야 하는 교외에 위치해 있었다. 배낭 한 개만 옆에 둔 채 S반을 타고 그 사람의 집으로 달렸다. 창 밖으로는 붉은 해가 지고 있었고 스쳐 지나는 나뭇가지들은 앙상했다. 모르는 곳에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데 그 사람과는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왓츠앱으로 연락을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역으로 데리러 온다고 했었는데 과연 데리러 올지 미지수였다. 역에 도착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아래로는 주차장, 뒤로는 어둠이 내린 들판만 보였다. 돌아갈 곳도 없이 낯선 곳에 혼자 있었다. 다행히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주차장의 한 빨갛고 작은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종일 근처에 있는 베를린 공항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퇴근길을 함께 달렸다. 낯선 이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가는 것은 신나기보다는 불안한 일이었다. 그녀의 짧은 영어와 나의 짧은 독일어로 대화가 이어졌다. 슈퍼에 들러 채식을 하냐는 질문을 던진 후, 그녀는 척척 파스타 재료와 값싼 와인을 샀다. 곧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짐이 무척이나 많고 아주 큰 장식자에 그릇이 채워져 있는, 작은 액자들이 가득한 집이었다. 건너편 건물이 보이는 곳에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아직 새 잎이 돋지 않은 갈색 화분들과 여름에 앉기 좋은 커다란 의자가 보였다.


그녀가 만들어준 구운 연어를 넣은 파스타와 라즈베리를 넣은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했다. 그녀는 폴란드에서 왔고 남편과 아들이 있지만 혼자 살고 있었다. 내가 베를린의 사우나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이 회원권을 끊고 다니는 사우나에 원한다면 함께 갈 수 있다고 했다. 달에 한 번은 손님을 무료로 함께 입장시킬 수 있다며 말이다. 솔깃 했지만 다음 날에 다른 호스트의 집으로 가는 일정이었기에 아쉬움만 남겼다. 한 시간 넘게 독일어로 대화를 한 것에 놀라워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 커다랗고 무거운 흰색 털 담요 아래에서 눈을 떴다. 호스트는 방에서 나와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 듯 했다. 샤워를 하는 물소리와 아침을 챙겨먹는 부엌의 식기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집에 나 밖에 없게 되자, 인사의 어색함을 피하려 꼼짝않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남의 집 소파에서 잔 하룻밤이 나쁘지 않았다고 느끼며 그녀가 없는 빈 집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욕실에 들어가 그녀의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물건이 무척 많은 화장실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어제 그녀가 나를 위해 샀던 치즈를 꺼내 빵에 끼워 먹었다. 혹시 잼이 있나 찾아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남의 집에서 살금 살금 보낸 하룻밤. 이런게 카우치 서핑일까?



(2탄으로 이어집니다)




IMG_7065 2.jpg Waßmannsd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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