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미술 여행 (8) 동독을 보는 서독 아이들

독일이 두 개로 보였다

by 반하의 수필


호수에서 그림을 그리고 난 후 나와 은주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숙소로 가는 차에 탔다. Zeitz라는 도시에 며칠 있었지만 주로 숙소에만 있고 밖에 나가서도 우리 학생들끼리만 있는 곳에서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처음으로 Zeitz에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외출을 하는 거였다. 우리가 Zeitz에 간다고 했을 때 큐의 친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에게 용감하다고 놀라고 밖에 나갈 때는 큐를 데리고 나가라고 말했다. Zeitz는 옛 동독 지역인데, 그곳은 극우 성향과 인종차별주의가 강하고 심지어 나치 상징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는 거였다. 숙소에 머물던 날 중 하루는 밤에 혼자 산책을 하고 왔온 큐에게 새미가 무섭지 않았냐고 묻기도 했고, 그 말에 큐는 자기는 blue and white(파란 눈의 백인)라 쉽다고 답했다. 그런 말들 때문인지 슈퍼로 향하는 차아서 은주는 정말 겁을 먹고 있었고 나 역시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창밖에 보이는 건물들은 독일 서부에서 흔히 보이던 것과 달리 조금 더 동유럽의 건물 같았고 깨친 창문이나 텅 비어 있는 건물이 많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아이도 많이 없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도시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 흡사 죽어있는 도시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낯선 동양인인 나와 은주만 긴장을 한 것이 아닌 함께 있는 독일 학생들도 긴장한 채 창밖을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나치 문양이나 문장을 문신으로 세기고 있다거나 현수막 같은 것에 적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Zeitz와 같은 옛 동독 지역을 와본 적이 있냐고 묻자, 드레스덴 같은 크고 유명한 곳을 제외한 소도시에는 와본 적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 지역에 친적이 살고 있는 경우도 흔치 않고 여행지도 아니다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나라에서 마치 다른 나라를 온 것처럼 낯설어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들은 바깥 풍경을 재밌어하거나 흥미로워하는 것이 아닌 이질적으로 느끼며 무서워했다. 독일이 두 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독일은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인 독일 서부의 슈투트가르트였고 그것은 결코 독일 전체가 아니었다. 특히 옛 동독 지역은 너무나 다른 양상을 하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민자보다는 백인이 많았고 화려한 색으로 염색한 머리나 팔, 다리는 물론 얼굴 전체를 덮기도 한 문신 살이 늘어지도록 큰 피어싱을 한 사람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마트에서 우리는 한 여성이 가판대에서 콜라나 시리얼, 술 등을 후트티 안쪽으로 잔뜩 집어넣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은 불룩한 배 위에 조끼를 하나 더 입고 계산대에 갔다. 손에 든 물 한 병만 계산한 후 유유히 마트를 빠져나갔다. 분명 출구를 지나기 전 기계는 삐삐삐삐- 울렸지만 직원들은 그저 그녀를 보내주려는 듯 쳐다도 보지 않고 다음 손님의 계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우리는 이 모습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숙소로 돌아온 친구들은 마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기 바빴다.


다음날은 어반 스케칭을 하기 위해 좀 더 본격적으로 시내에 나갔다. 자유롭게 도시를 걸어 다니며 밖에서 그리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씨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걸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는 조용한 도시를 걸으며 닫혀 있는 상점들을 구경했다. 핸드폰 가게나 옷 가게, 식당, 작은 중국 마트가 있었고 DM이나 알디 등 익숙한 마트들도 보였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의 가격이 1유로 정도, 케밥이 5-7유로 정도인 것에 놀랐다. 슈투트가르트, 베를린, 뮌헨 등의 도시보다 눈에 띄게 싼 물가에 친구들은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가격이라며 신기해했다. 우리는 싼 가격에 맛있는 젤라토를 사 먹고 케밥집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시내에 다녀온 후 거실 같은 공간에서 한참 그림을 그리다 방에 잠시 가보았다. 은주는 침대 아래 구석에 앉아서 커다란 종이에 빨간 오일 파스텔로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곳에서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며 방에 콕 들어박혀 있던 은주는 저녁 피드백 시간에 커다란 예술작품 하나를 만들어 왔다. 사각형의 방에 구석구석 놓여있는 모든 그림들 중, 은주의 것만 글씨였다. 은주는 Zeitz 시내에서 비를 맞으며 2시간 정도를 걸었는데, 그때 받은 인상을 글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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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짜이츠(Zeitz)에는 누들 공장이 있었어요. 1888년, 오래전 사람들은 석탄, 빵, 그리고 국수만으로도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멋진 차와 화려한 물건들, 음악이 필요해졌어요. 그래서 그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젊은 세대가 이곳에 살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를 유령 도시 (Geisterstadt)라고 부르지 말아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우리는 햇빛과 설탕으로 살아왔고, 여기엔 커다란 설탕 공장이 있어요. 호수에는 큰 미끄럼틀도 있어서 수영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어요.’



이 글에 대해 친구들이 의견을 더하지는 않았지만, 은주는 마치 Zeitz의 변호사가 된 것처럼 그녀가 본 도시의 생기발랄함을 전했다. 은주 덕에 Zeitz는 그저 ‘유령의 도시’로 남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은주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함께 두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림뿐인 곳에서 당당하게 글씨를 전시한 것도, 독일 친구들도 표현하지 않는 생각을 글로 표현해 낸 것도 멋졌다. 이곳에서 우리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은주도 나도 따지자면 주종목은 글이었다. 유창한 한국어를 놔두고 독일어와 영어로 나를 표현하고 관계 맺느라 애쓰는 것처럼 그림이라는 것도 글쓰기와 비교하면 외국어였다. 글쓰기라는 익숙한 표현 방법을 놔두고 그림으로 서툴지만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우리가 애틋하고 재미있었다.






4c8772b1-9b86-495c-af58-027024b14640.JPG 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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