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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y 31. 2023

미완성으로 남은 그림


동생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우리 네 식구는 남편의 짐을  찾으러 쌍문동으로 향했다. 쌍문동은 남편이 전시회 준비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던 미술학원이 있는 곳이다. 학교 후배였지만 나이는 훨씬 은 형님이 운영하는 미술학원으로 만화를 가르치는 학원이다. 처음 시작은 만화학원을 하려는 후배형의 부족한 초기 투자 도와주는 형식으로 시작했. 

"자기가 수업을 해줄 시간이 있어?"

"가끔 가서 특강 정도는 해 줄 거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이너스 통장으로 천만 원을 송금해 줄 때만 해도 이자는 나올 줄 알았는데  몇 번 10만 원씩 보내주다가 끝이 났다. 아직까지도 적자인지 아니면 남편이  받아서 술을 사 먹었는지는 모른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고 후배형님께는 아직까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사실 언제부터인지 투자한 비용에 대한 돈을 받는 대신 서울에서 일을 보고 막차가 끊겨서 집으로 귀가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학원에서 잠을 자고 오는 곳으로 이용을 했다. 소송문제로 본인의 캐릭터로 만화를 그리는 일이 여의치 않자 만화 그리는 일에 대한 후회도 많았고 전처럼 열정도 없어 보였다. 교수로 임용이 되기 전까지는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부분 때문에 자신의 캐릭터를 사용하지 않는 공모전 그림이나 여기저기 쉬지 않고 특강을 하러 다녔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출강하게 되면서 같은 학과 동료교수님의 제안으로 그림  전시회가 계획이 되고 일정이 잡힌 후로 학원을 본인의 그림 작업실로 이용하게 되었다. 종이에만 그리던 그림을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은 남편에게도 낯선 도전이었다.

"그림이 생각처럼 안돼."

"처음인데 그 정도면 훌륭한데."

"캔버스가 거칠어서 매끈하게 선이 안 그려져."

처음 그림을 배우는 학생처럼 진지하게 공부하고 방바닥에 받침대를 만들어서 캔버스를 눕혀놓고 젯소를 칠하고 사포질을 하며 작업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후배형님 즉 학원 원장님은 만화과에 입학하기 전에 예술대 회화과를 졸업한 분이셨다. 서울에 일을 보러 나가거나 대학강의가 끝나고  학원에 들러서 그림을 배우면서 그리기 시작했다. 전시회가 올해 인사동에서 8월에 계획되어 있었다. 남편과 전시회가 열릴 장소에 미리 다녀왔었고 그림크기와 숫자를 정하고 틈나는 대로 수첩에 스케치를 해서 보여주었다. 작년 겨울에 처음으로 동료교수님들과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남편 그림이 한 점 팔렸다고 의아해다.  

"제대로 그리지도 못 한걸 누가 샀지?  자기가 산거 아니야?"

"아니거든. 자기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샀겠지."

내 눈에 남편의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퍼 보였어도 만화가로서는 최고였다. 런 마음을 남편에게 진심으로 표현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는다.


아이들과 함께 남편의 흔적을 찾아 그동안 아빠가 그림을 그렸던 학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져다 놓은 남편의 물건을 가져와야 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보니 학원 원장님이 아직 도착 전 이셨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도서관에 들어갔다. 그곳에도 남편의 흔적이 있었다. 학원에  돌아오니 원장이 와계셨다. 쇼핑백 하나를 건네주셨다. 작업복으로 입었던 옷이 들어 있었다.  아크릴 물감이 묻고 무릎이 튀어나온  익숙한 체육복 바지와 목 주변이 낡아서 해진 티셔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침낭하나와 물컵을 받아 들고 크게 정리할 필요도 없는 물건을 만작거리면 다시 정리를 했다.


이곳은  지인들과 모여서 술 한잔 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고 그림을 그리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아래층 편의점 보다 가격이 저렴한 하나로마트를 산책 삼아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좁은 소파에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즐겼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원장님이 남편이 전시회 준비로 그리던 그림 4점우리 앞에 꺼내 놓으셨다.

"이렇게 잘 그려놓고..."

자신 없다고 그림이 맘에 안 든다고 얘기했던 그림 보고 나는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와, 아빠 대박 잘 그렸다."

아빠가 만화 그리는 모습만 보다가  새로운 스타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아이들도 놀라워했다.

"아직 완성작은 아닙니다. 여기 보시면 눈썹이랑 맘에 안 들어서 다시 그린다고 지워놓고 못 그렸네요." 


남편의 인생은 온통 미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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