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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May 05. 2023

남편을 사랑한 사람들



"제수씨, 어찌 된 일이에요?"

내가 보낸 부고 문자를 보고 달려온 남편 친구들의 첫마디였다.

"나도 몰라요."

친구들을 보는 순간 감정을 추스르고 조문을 하던 나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하룻밤을 자고 산책을 하고 사는 얘기를 새벽까지 나눴던 친구들은 남편의  소식이  가짜뉴스 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남편과의 마지막이 된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에게 아픈 아버지께 드릴 떡과 김치를 싸주는 나보던 친구가  남편에게 한 마디 했었다. 

"제수씨한테 잘해라. 음식 떨어지면 또 올 거야." "어. 지금도 잘해."

"김치 없어요. 오지 마요."

이렇게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헤어졌는데 이런 모습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 친구들도 나도 꿈 같았다. 밤새 얘기를 나눴어도 오랜만에 쉬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에게 본인이 처한 복잡한 상황에 대한 말보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 집중했었다. 나 역시 그날 새벽까지 몸이 아픈 친구가 더 아픈  아버지를 혼자 돌보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이 사실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사고가 나고 생각해 보니 남편은 '나보다 몇 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내가 남편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주고 공감했다면'이라는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부터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확인하면서 들어오는 젊은 청년들이 보였다. 조문순서를 핸드폰으로 보면서 어색한 몸짓으로 꽃을 올리고 향을 피우며 절을 하는 모습이 우리 아들 또래의 학생들이었다. 조문 절차를 맞추고 나서 궁금해하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있던 학생이 먼저 말했다.

"교수님 제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의 첫 번째 제자들이 찾아온 것이다. 평소대로 라면 남편은 한 참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그 수업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교수는 학교가 아닌 장례식장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고 제자들은 교수를 보기 위해 강의실 대신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나는 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에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리에 욕심도 없고 권위적인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에게 대학교수는  현실과 타협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학생들에게 열심이었던 모습에  놀랬다. '나보다 더 잘하는 얘들한테 뭘 가르치지?'라고 항상 말했었다.  남편은 교수가  된 것을 주변에서 알게 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30년을 넘게 한 일이고 모두가 인정하는 전문가였지만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남편에게 아주 신중해야 하고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부모님들께도 한 참 뒤에 알렸고 친구들 중에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알게 된 경우도 많을 정도였다.   

"제가 교수님 때문에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지금 교수님은 떠나셨지만 교수님 제자로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겠습니다."

손을 잡고 울고만 있는 나에게 또박또박 말하는 학생을 보는 순간 남편이 더 원망스러웠다.

"교수님이 제자분들에게 가장 미안할 거예요. 어디에 있던지 응원할 거예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남편이 책임져야 했을 제자들에게 대신 사과하는 말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반가운 손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비밀이 없을 만큼 남편에게는 좋은 형님이었지만 나에게는 부부갈등인을 제공했고 나를 속이고 노는 방법 대한 가르침을 주고 노래방 여자들과 놀아야 한다는 철학을 심어준 분이다. 내가 싫어하는 만 찾아서 이끌어 주신 분이지만 남편에게 가끔은 필요한 일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분께도 고마웠다. '그동안 이 형님 때문에 조금이라도 즐겁지 않았을까? 다행이다.' 례기간 동안 서울에서 두 번이나 다녀가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사촌과 친구, 동료들에게 남편이 떠나기 전에 오랜만에 톡을 하고 안부를 묻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판이 있던 날도 오후에 협회 회의에도 참여하고 뒤풀이를 하고 오느라 늦게 집에 들어왔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복잡한 마음을 잠깐 잊을 수 있게 해 준  뒤풀이 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느낀 현실은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 남은 배우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다. 부고 문자를 보내지 못한 상황에서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위로를 받고 있었다. 모두가 방송을 보고 찾아온  남편을 사랑한 지인과 팬들이었다. 밖에 줄을 세운 화환 중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한이 아빠라고 쓰여있는 꽃을 보고 나 놀랐다. 팬으로서 유튜를 통해  소통하던 이한이 아빠는 아픈 딸을 위해서 그림을 부탁했었다. 남편은 기꺼이 그림을 그려서 보냈다. 제약회사에 다닌다는 소개의 편지와 함께 우리 가족과 남편의 건강을 위한 영양제와 비상약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오래 알고 지낸  지인 같아. 팬심이 이런 건가?"

크리스스에 이한이를 위한 인형과 그림선물을 포장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했었다.

30주년이라고  굿즈를 직접 제작해서 보내 준 기중이도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을 나갔던 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추모 만화책이 담임 선생님을 통해 도착했고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 놓였다.


남편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남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 주었다.


"언니 기자가 찾아오셨는데?"

동생이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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