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n연차가정주부다 #4
에어 프라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모르는 척했다.
에어 프라이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를 부정했다.
에어 프라이어가 주방 필수품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고민했다.
살까?
4년가량의 대학생활로부터 배운 비판적 사고의 결과물인 건지, 아님 그냥 성격이 꽈배기마냥 꼬인 건지 나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우선 부정하고 보는 습관이 있다. 부정으로 시작하여 이를 하나하나 반박해가며 그것이 좋은지 아닌지에 대해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 탓인지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 코너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식당에서는 추천 메뉴를 일부러 피한다. 에어 프라이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새로운 가전제품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이 기계에 대한 온갖 흠을 찾기 시작했다.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름기가 적은 재료로 요리하면 맛이 없다, 괜히 자리만 차지한다 등 온갖 핑계를 대며 외면해왔다. 이따금 사고처럼 마주치는 에어 프라이어의 레시피 등을 애써 비웃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에어 프라이어를 찬양하는 광신도가 되었다.
나와 아내가 사는 아파트는 대략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오래된 아파트이다. 수년간의 노력으로 얼핏 보면 멀쩡해 보이게끔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면 참혹하기 그지없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코일 전기레인지이다. 하이라이트를 넘어 인덕션이 주방에 들어가 앉아있는 이 시대에 코일을 이용하여 냄비를 달구는 방식이 말이 되는가 싶지만, 우리 집이 그렇다. 이게 아파트의 옵션이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도 안된다. 결국 좋든 싫든 써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가열기구인 만큼 사용에 있어 가스레인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화력이었다. 가장 강불로 해도 온도 자체가 높지 않아 팬 온도가 금방 떨어져 음식 하는데 애로사항이 왕왕 있어왔다. 반대로 장점은 오븐이 포함되어있다는 점이었는데, 덕분에 한국에서는 하기 힘들었던 오븐요리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심지어 전기료는 렌트비에 포함이라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었다.)
낡은 전기레인지와 오븐이면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다. 조금 더럽고, 조금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함은 없었다. 그렇다 소비의 핵심은 부족함이 아니다.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으로 모든 소비는 시작한다. 나는 집의 낡은 두 취사기구들로부터 어딘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식은 피자를 데우고, 냉장고 속 남은 치킨을 살려내며, 만두가 육즙 가득하게 바삭해지고, 통닭이 뚝딱 만들어진다. 이건 우리 집에는 없는 마법의 도구다. 이거 하나면 요사이 부쩍 늘어난 배달음식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무수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물론 아내도 옆에서 같이 속삭였었다.
나는 온라인 쇼핑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단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그 간극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물건을 샀으면 그 즉시 내 손에 그것이 들려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코비드-19라고 하는 세계적인 비극 앞에서 모든 외부 활동이 정지하면서 나의 이런 취향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는 토론토는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곳이 아닌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고, 대부분의 쇼핑을 온라인으로 할 것을 권고했다. 그로 인해 우리 부부의 스마트폰에는 아마존 앱이 설치되고, 아마존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에어 프라이어를 사기 위해 가장 먼저 들여다본 곳은 아마존이었고, 제품의 추천을 위해 도움을 받은 곳은 유튜브였다. 여러 시간을 투자하여 고르고 고른 것은 통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다는 '오븐형' 에어 프라이어였다. 쇠막대를 꽃아 전기구이 통닭을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고민은 오래 걸렸지만, 결정하고 지르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새빨간 색의 에어 프라이어가 주방 한편에 자리하게 되었다.
마치 작은 오븐처럼 생긴......
작은 오븐처럼......
작은 오븐?
아아, 그랬다. 그것은 작은 오븐이었다. 우리 아파트에 옵션으로 들어있는, 종종 사용하던 바로 그 오븐의 작은 버전이었다.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여, 동일한 과정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예쁘다는 것 말고는 거의 동일한 취사기구를 고민 고민한 끝에 사버렸다.라고 말하면 굉장히 망한 것 같은 느낌인데,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뭐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오븐 안에 들어있는 게 좀 많은가. 빵을 굽는 집이라면, 각종 제빵도구에 안 쓰는 프라이팬에 냄비까지 온갖 것이 들어가는 만능 찬장이 바로 오븐이지 않던가. 때문에 오븐 한 번 쓰려면 안에 있는걸 다 빼서 어딘가에 일단 두어야 하는데 이게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에어 프라이어는 그럴 일이 없어 쉽게 쓸 수 있다. 오히려 오븐보다는 전자레인지를 쓰는 정도의 수고로움이랄까? 덕분에 이거로 피자도 데우고, 치킨도 살려내고 만두도 구워보고 통닭도 돌려보았는데,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아니, 찬양하게 되었다. 가볍게 작동하면서도 수십 분이란 시간을 주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배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의 삶이 이 물건으로 인해 진정으로 나아진 것인가. 혹시 나아졌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내가 만약 에어 프라이어가 없이 원래 집에 있던 오븐을 이용해 같은 음식을 해 왔다면 그건 많이 달랐을까? 너무도 작은 편안함에 대해 지나치게 큰 비용을 쓴 것은 아닐까? 혹시 나는 그저 만들어진 필요에 의해 혼자 만족하고 있다 자위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도 무척이나 혹사시키고 있는 에어 프라이어에게 미안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차갑게 식어 뜨거움을 잊어버린 오븐을 바라보며 입안이 씁쓸해진다. 다행히도 나와 아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둘이 살기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집안 가득 채워져 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떠오른 생각들이 가슴을 따끔하게 찔러온다. 저 가운데 얼마나 많은 에어프라이어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오븐들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