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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일 하는 남자 Sep 16. 2021

밥솥

나는 n연차 가정주부다 #5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이 말은 30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외국으로 떨어진 사람에게는 단순한 구호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좋았다. 피자나 햄버거, 햄과 소시지를 즐겨먹던 나였기에 스스로가 한식보다는 양식이 입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다. 전부 틀린 소리였다. 내가 맛있어한 햄과 소시지는 전부 한국식으로 개량된 것들이었다. 그나마 캐나다의 피자나 햄버거는 입에 잘 맞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역시 한국인에게 식사는 밥이다. 그것도 맛있는 쌀밥 이어야 한다. 적당한 찰기와 반짝거리는 윤기로 입안을 그 고소함과 담백함으로 채운 뒤에야 비로소 나머지 반찬들에 의미가 부여된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캐나다에 오고 3년이나 지난 뒤였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홈스테이를 하던 곳에 밥솥이 있었다. 일을 하던 식당도 한식을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영업용 밥솥을 쓰고 있었다. 밥은 당연히 전기 압력 밥솥으로 하는 것이고, 그곳에서 나온 밥은 언제나 먹어왔던 한국의 맛이었다. 그 당시 문제가 되는 것은 밥솥이 아닌 어떤 쌀을 고를 것인가였다.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다민족 국가인 캐나다이기에 마트에 가면 마주하게 되는 쌀의 품종도 굉장히 다양하다. 여기에서 어떤 쌀을 고르냐에 따라 밥의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홈스테이를 뒤로하고 아내와 따로 아파트를 얻어 나왔다. 가난하기 그지없었던 우리 부부에게 한국식 전기밥솥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당장 통장에 백만 원 이상이 있던 적이 있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집세와 전화비가 잔뜩 밀려있던 그 어려웠던 시기에 수백 불을 호가하던 가전제품이 어디 가당키나 하던가. 결국 우리 부부가 선택한 건 우리 이전에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두고 간 전기 20달러짜리 전기냄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냥 일반 냄비에 밥을 하는 게 더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는 그런 사고를 할만한 여유조차 없던 시기였다. 너무도 힘들었고, 그 이상으로 행복에 젖어있던 시기였다. 그랬기에 그저 타성적으로 그 싸구려 전기냄비에 밥을 지어먹었다. 밥은 윤기도 없고, 푸석했으며, 설익어있었다. 마치 어릴 적 학교 급식으로나 먹었을 법한 찐 밥의 맛. 그랬음에도 우리는 아무런 개선의 방법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밥이 맛이 없네. 할 수 없지. 그렇게 살았다. 지금이었다면 유튜브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어떻게든 맛있게 먹으려고 발악을 해 보았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쉽게 익숙해졌고, 익숙함은 당연함이 되었다. 


그렇게 맛없는 밥에 충분히 길들여졌을 무렵, 나와 아내는 결혼식을 핑계로 3년 만에 한국땅을 밟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고 다음날 아침, 부모님 집에서 한 술 뜬 밥의 맛은 그야말로 놀라움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편인 데다가 저혈압 기운도 살짝 있어, 보통 아침에 무엇인가를 씹어 삼키는 행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수년만에 먹는 집밥은 눈물이 날정도로 맛있었다. 이게 바로 어머니의 손 맛인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인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밥솥이었다. 압력의 문제였고, 그것은 결국 돈의 문제가 되었다. 좋은 밥솥은 비싸다. 어디 밥솥뿐이랴, 뭐가 되었든 좋은 건 비싸다. 비싸니 포기해야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드디어 찾아낸 맛있는 밥의 비밀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아쉬웠다. 아, 밥솥.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렇게 심중의 이야기를 아내와 나누다 보니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가기까지 며칠을 남겨두고, 장모님께서 쓰시던 밥솥을 가져가면 어떻냐 하셨다. 당신들께서 쓰기에는 너무 커서 잘 안 쓰게 된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어디 그게 전부일까. 아마 사정을 듣고 딱하게 여기시고 도와줘야겠다 여기신 것 같다. 새로운 물건을 사 드리지는 못하고, 그나마 있는 밥솥마저 들고 나오는 게 염치없었지만, 언젠가 꼭 갚으리라 감사한 마음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우리 집의 허접한 부엌에는 한국의 전기 압력밥솥이 생겼다. 그전까지 우리에게 맛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밥을 만들어주었던 전기냄비는 어두운 찬장 구석에 들어가 박혔다. 우리 밥상에는 윤기와 찰기가 적절하게 도는 맛있는 밥이 당연한 듯 올라왔고, 덕분에 살도 같이 올라왔다.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대신 내일 먹을 저녁 메뉴의 레시피를 걱정하게 되었다. 어떻게 돈을 구할까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우리 집에서 밥솥은 새로운 바람이었다. 당장 내일에 치여 개선의 여지마저 포기하고 있었다. 그 삶은 싸구려 전기냄비로부터 지어진 맛없는 밥이었다. 조금만 찾아보았더라면 얼마든지 맛있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던 삶이었다. 그 사실을 한국의 부모님들로부터 배웠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방법은 있었고, 바뀔 수 있었다.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삶은 그렇게 바뀔 수 있었다. 맛있는 밥은 중요하다. 밥이 맛있을 수 있도록 궁리하는 행위가 있어야 그제야 밥이 맛있어진다. 맛있는 밥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궁리하고, 의논해서, 해결책을 찾는 것으로 삶은 변한다. 그렇기에 지금도 항상 경계한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밥은 진정으로 맛이 있는가. 너무도 익숙한 맛에 그저 맛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금의 생활에 생각 없이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그렇기에 밥은 맛있어야만 한다. 만약 밥이 맛이 없다면, 밥솥을 바꿔보자. 당장 가까운 마트의 쌀 품종이 아닌, 조금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밥솥을 바꿈으로 맛없던 삶이 조금은 더 맛있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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