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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Apr 02. 2024

바투르산(Mount Batur)_Lucky family

바투르산(Mount Batur)_Lucky family #04

발리에는 섬이지만 높은 산들이 꽤 많다.  아궁산(Mount Agung/3142m), 바뚜까루산(Mount Batukaru/ 2276m), 바투르 산(Mount Batur/1717m) 등 여전히 활화산인 상태도 있고, 휴화산인 산들도 있다.  기사들을 보다 보면 최근에도 화산 폭발이 이루어지고 있던데, 운이 안 좋으면 여행하다 화산 폭발이라는 사고를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사고란 게 세상 어디에 있는지가 뭐가 중요할까 싶어 진다. 현명한 어른들의 말처럼 다 저마다의 제 몫의 시간이 있는 것인데.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든 것은 발리에서 화산으로 유명한 바투르 산 투어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여러 산중에서도 바투르 산 투어를 가려는 것은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 투어 상품이 많아서이다. 다른 산들은 트레킹 등 가능하지만 일반 관광객이 접근하기는 정보가 한정적이다. 나에게는 정확하고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고민한 일정이기도 하다. 해뜨기 전 3시간을 트레킹 해서 일출 보는 건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산 정상 가까이 오프로드로 지프투어는 해볼 만하다고 싶었다. 여기서 가장 변수는 우리 집 작은 남자가 되겠습니다. 큰 남자분이야 늘 제말을 내비게이션만큼 믿고 따라주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당연히 오케이 하고 일정 예약을 진행할 것임을 안다. 여러 블로그와 카페 후기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고 9살 아이에게 고난이 되는 게 아닌지 한줄한줄 정독했다.

(어쩌면 "괜찮았어요"라는 말을 찾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뒤져본 것도 같다. 이미 마음은 기울었으나 나의 계획에 긍정해 줄 사람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또래 애들도 다녀오고 훨씬 연세가 많은 부모님들도 다녀왔다는 후기를 보고서야 일단 가보자는 쪽에 마음의 무게를 실었다.


발리 우붓에 지낸 지 4일쯤 지났을 때, 이제는 뭔가 외부 투어 활동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4일 내내 리조트에서 자고,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 게임하고를 지칠 만큼 한 우리 집 남자들에게 뭔가 새로운 게 있다고 미끼를 던졌다. 예상대로 작은 남자의 호응을 얻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서 차를 한 시간 타고 또 내려서 지프차로 갈아타고 산을 올라서 깜깜하고 추운 산에서 해가 뜰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이상한 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가 뜨면 그 해는 뭔가 다른 것인가? 아이를 이해시킬 한방이 필요했다. 한참을 머리를 굴리는 찰나, 아이가 먼저 묻는다.


" 엄마! 근데 지프차 그거 비싼 거 그거 아냐? 뚜껑도 없는 거 아냐?"


아이가 어떤 경로로 어떤 모습의 지프차를 접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건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적인 리액션이 필요한 순간이다.


" 아마 맞을 거야. 바퀴도 크고 울퉁불퉁 산도 마구 달릴 수 있는데 그걸 타고 있으면 방방이 타는 느낌이라던데!"


아이의 얼굴을 세심히 살폈다. 생각을 좀 하더니,

"재미있긴 하겠는데 수영은 언제 해?

 (작은 남자는 물에서는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다!)

너무 피곤하겠는데."


아이답지 않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 일출 보고 내려와서 주변 구경 조금 하고 리조트 다시 오면 10시 정도밖에 안 된데. 그럼 밥 먹고 또 수영할 수 있어!. 아! 그리고 아빠가 그다음 날은 마사지도 예약할 거래(아직 협의된 사실은 아니다)"


아이는 마사지에 아주 크게 동요함을 엄마는 알 수 있었다.

(발리 이전에 다녀온 베트남 푸꾸옥에서 키즈 마사지의 신세계를 접하고는 여행 가면 늘 마사지받고 싶다고 말하던 아이다.)


이렇게 우리의 협상은 성사되었고 이제는 언제 예약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포인트가 남았다. 그냥 예약하면 되지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계속 이야기해 왔지만,

 - 여기는 어디? 발리.

 - 여기는 몇 월? 1월

 - 여기 날씨는? 우기!!!!!

 

그렇다. 우기. 하루종일 (먹)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비가 태풍처럼 휘몰아 쏟아졌다가, 또 해가 쨍 나서 온몸을  순식간에 시뻘겋게 태우는 날씨!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다. 날씨 자체가 습하고 더워서 뭘 하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는  날씨라곤 할까!!


이 시기에 바투르 산 지프투어를 예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행운이 필요하다.


1. 예약한 시간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
 -   날(day)은 너무 방대하다. 시간 단위로 날씨가 바뀌어서 그렇게 기대했다가는 낭패다. 딱 우리가 바투르에 오를 예정인 시간~ 일출까지 (4시~6시 반 정도) 대략 2시간여의 시간 동안 비는 오면 안 된다. 이건 최악이다. 이도저도 다 망한다.
2. 구름도 잠시 비켜줘야겠어.
 - 주변이 칼데라 지형이라 호수도 많아서 산을 둘러싸고 물안개가 기본적으로 어마어마하게 깔린다. 이와 더불어 구름 덩어리들도 그 두께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두터운 터라 이를 뚫고 해를 보기란 불가능하다. 세상이 다 밝아져서 한참 하늘로 떠버린 해라도 본다면 그거라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다. 구름 속에서 영영 보지 못하는 게 부지기수라 하니 말이다.
3. 동그란(달걀노른자 같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은 기대 마라. 본다면 당신은 정말 럭키 가이다!
 - 이 부분은 한국에서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성격 탓인지 큰 남자와 나 역시 새해 일출을 보고자 채비해서 꾸역꾸역 나가는 성향은 못된 터라 경험이 없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여러 의미를 가지기에 안 하던 짓 해보자며 이것저것 도전해 보고 있다. 그래서 인생 처음의 일출샷을 기대하며 우리는 럭키 가이여야 한다.

발리 우붓의 날씨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실 관계 근거 정보 분석하는 것은 직업적 특성상 좀 잘하는 편이다. )


가장 유력한 후보일이 목, 금 새벽이다. 그 이후는 예정된 시간 사이 비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목요일은 밤에 비가 좀 왔다가 새벽에는 흐리고 아침 10시경에 비가 예정이고, 금요일은 새벽까지 괜찮으나 8시에 비가 예정이라고 한다.

  

해뜰시간과 최대한 멀어야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나름의 방향이 서고 결단을 내렸다.

(어디 기상청 직원이라도 아는 사람 있으면 싶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우리는 목요일 새벽 바투르로 간다!!!"


(그런데) 오늘은 수요일 오전. 나의 외침에 큰 남자는 아무 말 없이 트레킹 예약 사이트를 뒤져 보기 시작한다. 요구한 예상 일정에 협의가 완료되었다고 최종 컨펌을 해달라고 한다. 아주 적절한 가격과 조건으로 잘 협의된 것으로 보인다. 너무 잘했다며 칭찬과 함께 맥주 사러 나가자고 하니 찐 웃음을 짓는다. (참 착한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목요일 새벽 2시 20분경 일어나서 픽업 약속된 리조트 로비로 나갔다.

혹 덜컹거리는 지프차로 인해 멀미를 할 수도 있다 해서 미리 멀미약도 챙겨 먹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부터  바투르를 염두에 둔 터라 긴 옷들도 껴입을 수 있게 여러 벌 챙겨 왔다. 바투르 산 근처까지 가는 한 시간여 동안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난 예상된 리스크를 살피느라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열심히 두리번 거린다.


바투르 산 입구에 도착하니 동네 젊은이들이 입장료를 받기 위해 모여있었다. 이렇게 입장료 받으며 동네 살림에 보탬을 하나보다. 그렇게 좀 더 달려서 도착한 곳은 불빛도 거의 없는 공터다.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하는데 도통 뭐가 보이는 게 없어서 선뜻 내리기가 무섭다. 잠이 덜 깬 작은 남자는 약간의 투덜을 장착하고 차에서 내렸다. 서늘한 기운이 돌자 춥다고 추가 투덜. (엄마는 못 들은 척한다.)


재빠르게 아이에게 옷을 껴입혔다. 빨간색 지프차가 도착했고, 타자마자 낯선 승차감에 한번 놀랐다. 이윽고  얼굴을 정면으로 때려대는 차가운 새벽바람에 두 번 놀라고, 덜컹거리는 지프차에서 잠이든 작은 남자를 바라보며 세 번 놀랐다. (아이는 그때부터 쭉 꿈인 줄 알더라)


[바투르산에 도착 후 산 아래 풍경]

20여분 가까이 달려서 산중턱 넘어 지프차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100대는 되어 보이는데, 다들 가파른 산길에 나름의 룰이 있는지 큰 혼선 없이 주차가 이루어졌다. 우리가 주차한 곳은 적당한 위치에 안전이 확보되는 자리로 보여 이때부터는 안심을 하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새벽 5시가 못된 시간이고 여전히 깊은 어둠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프차는 5시 40분까지는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 사이 지프차 가이드는 아침 식사라며 바구니 하나를 어디선가 가져와서 건넨다. 바나나 샌드위치, 초코바, 핫초코, 커피, 삶은 계란으로 이루어진 조식 세트였다. 아이는 기대에 차서 핫초코를 한입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한국에서 먹던 대기업의 맛이 아닌가 보다. 삶은 계란과 초코바는 맛있게 먹고는 이내 피곤하다며 드러 눕니다. 가이드가 별과 함께 사진을 찍어 준다 해도 모두가 귀찮은 듯 눈을 감아 버린다.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하다가도 두꺼운 구름이 지나가며 덮어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늘만 바라보는데 지프 가이드가 사진 몇 컷을 찍어준다. 아이가 마음에 쓰여 포즈 잡고 사진 찍을 여유가 나지 않았다. 앞, 뒤, 옆 모든 지프차에서는 인생샷을 남기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보인다. 우리 가이드는 소극적인 우리를 뒤로하고 다른 관광객들 사진 찍어주며 바쁘게 돌아다닌다.(이곳 인싸인가 보다!)


여전히 어두웠고, 그래도 비는 오지 않았다. 예상 리스크 1번은 다행히 잘 해결된 듯하다.(제일 큰 이 리스크가 해결되면 그래도 반 이상은 성공한 거지.)


6시가 다되어가니 빠른 속도로 주변이 밝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 말이 딱 여기에 쓰이면 맞겠다. 눈을 깜빡했는데 어둠이 밝음이 되는 경험이랄까!

오늘 일출 예정 시간은 6시 12분이라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니 그 많은 지프차들이 흰색,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등등 색색깔을 띄고 있어서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산 위에서 바라본 산아래 마을과 호수 풍경도 너무 예뻐서 사실 글로 설명한다는 게 어렵고 또 어렵다. 여기저기 셔터가 눌러지고 여기 산 위에 사람들이 정말 모델들 같았다. 다들 포즈를 연습하고 오는 걸까? 어쩜 저렇게 자연스럽게 다들 잘 찍는지.


여전히 난 긴장하며 해가 떠오를 곳을 뚫어져라 본다. 2, 3번의 리스크는 여전히 가시질 않고 있어서 1분, 2분, 3분 일출 시간이 가까워져 올 동안 바짝 몸을 웅크리고 있다. 6시 10분이 되었다. 그즈음 물안개인지 구름인지 뭐든 간에 두텁게 쌓여있던 장막이 쪼개지듯 양쪽으로 조금씩 낮아졌다. 그러더니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 럭키!!! 럭키!!!"

여기저기에서 환성이 터지고 손뼉을 친다. 그 불가능에 가깝다는 우기 일출보기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빨간 달걀노른자 같은 해가 점점 더 많은 면적을 보여주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정말 누군가 아래에서 열심히 밀어 올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고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의 첫 일출.


아이를 깨워보았지만 별로 반응이 없다. 큰 남자는 이런 자연경관을 존경하는 사람이라 나와 같이 놀랍게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어렵게 발리까지 왔고 또 여기 바투르까지 와서 이 경이로운 경관을 볼 수 있다니. 정말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은 순간이다.


이것저것 수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이 생경한 아름다움을 경험한 럭키 패밀리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 어려운 걸 해냅니다. 우리가!!!! 왠지 모를 자신감과 에너지가 넘친다곤 할까! 지구가, 하늘이, 온 세상이 이렇게 우리를 밀어주는데 뭔들 안 되겠어! 다 잘될 거야!!!


돌아오는 길 블랙라바라는 화산돌덩이 지점도 갔으나 여전히 작은 남자는 꿈을 꾸는 중이다. 아이가 피곤해한다고 일정을 빨리 끝내고 가고 싶다고 하니 지프차 가이드가 리조트로 데려다줄 일반 차량 가이드에게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그제야 잠이 깬 듯 일어난 아이. 그래도 자기는 다 봤단다.

꿈에서!! (뭐가 꿈인지 사실인지 설명해 주기 어려운데 나쁘지 않은 꿈이었다니 그걸로 됐다)


리조트에 돌아와서는 늦은 조식을 먹고 그대로 모두가 쓰러져 또 진짜 잠이 들었다. 낮잠이 없는 내가 해가 뜨고 난 뒤 그렇게 숙면할 수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다. 아주 중요한 발표를 마친 느낌인데, 조금 또 다른 건 끝난 뒤 밀려오는 것들이 또 다른 걱정이 아닌 온전한 만족감이라는 부분이다. 나 자신만을 위해 잘 마무리해서 고이고이 접어서 소중한 서랍장에 조심스레 잘 넣어둔 느낌. 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서랍을 열어보는 느낌이겠지? 따뜻한 기억이라 너무 기쁘게 열어 볼 것 같다.


아!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마사지를 다녀옵니다.!

(우리는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고 가르친 부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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