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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Apr 02. 2024

누군가에게는 아픔, 누군가에게는 그리움

누군가에게는 아픔, 누군가에게는 그리움 #03

엄마! 외삼촌은......


" 엄마는 외삼촌이랑 많이 싸웠어? "
" 외삼촌은 수영을 잘하는데 엄마는 왜 못해? "
" 우리 가족은 외삼촌만 담배 피운다 그치? "
" 외삼촌은 마블 피규어를 좋아하나 봐. 방에 아이언맨 피규어가 많아. 그래도 전부 나 줬지!!"
" 외삼촌은 왜 결혼 안 해? "
" 외삼촌은 왜 다리가 아파? 걸을 때 아파 보여 "
" 외삼촌은 나한테 게임 설명도 잘해줘 그치? "
" 외삼촌이랑 줄자 가지고 놀 때 재미있었는데 "
" 그런데 엄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외삼촌에게 선물 못 받겠다 그치? "
" 엄마, 외삼촌은 외할아버지 만났겠지? 나한테 선물 못 줘서 걱정하는 거 아냐? "


2022년 8월 이후부터 아이는 외삼촌이 궁금해졌다. 너무나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버려서 가족 모두가 아주 깊이 그리고 아주 오래 아프고 있는 중이다. 비혼주의라 결혼도 하지 않았고, 조카라고는 손 아래 여동생의 남자아이 하나였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은 아버지와도 참 많이 닮았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말이 짧고, 자기표현도 서툴던 오빠였는데 참 신기하게도 조카가 태어나고 그 조카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말이 길었던 사람이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좀 더 쿨하고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던 아이가 일 년에 몇 번 만나지도 못하는 외삼촌과의 만남에서는 다른 아이가 되곤 했다. 외삼촌 방에서 딱히 둘이서 몸으로 신나게 놀거나 어떤 놀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고 그럼에도 간간히 대화 이어나가며 그냥 그렇게 서로의 관심을 인정해 주며 적당한 관심을 보여주는 관계?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늘 그 모습에 의문을 가졌지만, 아이와 오빠 간의 뭔가 또 다른 결의 유대관계가 형성되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 아이가 태어났을 때 따스한 온기의 작은 몸을 서툴게 안았었고, 
  - 배밀이를 하다가 곧 네발로 기어 다니던 시간에는 혹시 어딘가 부딪칠까, 가는 길마다 장애물을 치워주며 위험한 곳은 몸으로 막아섰다. 
 - 아장아장 걸으며 두 발로 걷는 재미를 붙인 시절에는 더 넓게 주변을 살펴 봐주며 흐뭇하게 웃었다. 혹시라도 주저앉으면 그냥 같이 그 앞에 주저앉아주었다.
 - 아이가 곧잘 걷고 뛰기를 할 수 있는 날들 동안에는 아주 불편한 자세로 한쪽 어깨를 늘어뜨려서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그리고 "외삼촌!"이라고 불러주던 순간부터는 평생 가져보지 않은, 아니 별로 관심이 없었던 책임감을 떠올렸다고 한다.(훗날 언젠가 오빠가 우리 집 큰 남자와 술잔을 기울이며 오갈 때 나온 이야기다)
-  멀어서 자주 볼 수 없어도 서로 오고 가며 만나게 될 때면 항상 아이가 요즘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고선 미리 선물을 사놓고 기다리곤 했다. (내가 오빠에게 선물이라고 받아본 건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가?) 
- 물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와 늘 수영장이며 바닷가에서 함께 놀아주었다. 


이렇게 떠올리다 보니 아이가 사랑했을만했구나 싶기도 하다. 겉으로 내뱉는 말이 투박하고 서툴 뿐 항상 몸으로 그렇게 조카를 아끼고 사랑했던 것 같다. 그걸 아이도 알았고. 정작 나만 몰랐나 보다.


그래서 난 더 슬펐고, 아팠고, 무거웠고, 후회했고, 원망했고, 절망했고, 상실감에 허무했다.

그리고  2022년 8월에는 코로나19로 세상은 여전히 빗장을 닫고 있었다. 오빠가 떠난 그때 하필, 제길, 나만 코로나19로 아팠다.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난 내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오빠가 떠나는 길도 못 지켜줬다. 우리 집 큰 남자가 나를 대신해 엄마를 지켰고, 오빠 가는 길도 지켜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부 관계를 떠나서 인간대 인간으로 평생 감사하겠다 다짐한 부분이다. )


그렇게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49제가 되어서야 안녕을 전할 수 있어서 그 기억이 죄책감처럼 오래 따라다녔다. 그 때문인지 한동안은 오빠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못했다. 다들 내 눈치를 보는 것인지, 위로가 서툰 탓인지 가족도 타인들도 애써 오빠를 지우고 일상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작은 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외삼촌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삼촌은......" 이란 시작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가 부지기수였다. 딱히 대답할 말은 못 찾고 눈시울 시뻘겋게 타올라서는 아무 말을 못 하니까 아이도 더는 묻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곤 했다. 


또 어느 날엔 아이가 물었다.


" 엄마! 이제 외삼촌 이야기 하면 안 돼? "  


아! 나는 나쁜 엄마였구나. 내 감정에 빠져서 아이에게서 외삼촌의 흔적을 지우기를 강요했었구나!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오빠를 잃었고, 너는 세상 하나뿐인 외삼촌을 잃어었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란 걸 처음으로 겪었겠구나! 헤아리지 못했다. 아이니까 뭘 알겠어라고 치부했나 보다. 아이는 엄마 눈치 보느라 외삼촌이 보고 싶어도 말도 못 꺼냈던 거였다. 


급하게 서재로 뛰어 들어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가슴에 뭉쳐있던 뭔가가 튀어나올듯하여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커튼을 부여잡고 입을 틀어막고는 한참을 더 울었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서 두 다리로 걸어 나오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제야 아이 걱정이 되었다. 이런 엄마 모습에 또 놀랐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최대한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서재 방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나의 집은 평온했다. 큰 남자가 벌써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레고를 같이 만들어 주고 있었다. 걱정 어리게 바라보는 나를 올려다며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그려 보인다.(우린 괜찮아.!)

그래, 늘 내가 짊어진 수많은 걱정들이 다 괜찮다 말하고 또 괜찮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지!  


" 고마워."


그 이후 아이는 외삼촌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나 역시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또 답도 해주곤 한다. 친정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너무 기특해하셨다. 자식도 없이 세상 떠나서 기억해 주는 사람이 적을까 봐 안쓰러웠는데 조카가 저렇게 기억해 주니 얼마나 좋으냐며. 나 역시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도 오빠 이야기 편하게 하자! 일부러 말들 삼키지 말고!"


그렇게 오빠는 추억이 아니고 현재에서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중이다.


발리에 오니 오빠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이 역시도 언젠가 오빠가 술에 약간 취해서야 한말인데

(도대체 술 안 마시면 마음의 이야기를 왜 그렇게 안 하는 남자인지.) 


나중에 친한 친구와 발리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을 짓고 여행 오는 사람들에 빌려주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땐 언제 철이 들려고 그러냐며 내가 핀잔을 주며 지나친 말이 왜 이렇게 생각이 날까? 왜 발리였을까? 한번 물어나 볼 것 그랬다. 그 발리에 내가 와 있으니 더더욱 오빠가 생각난다.


오늘은 우붓 리조트에서 차로 40여분 달려야 도착하는 몽키포레스트에 다녀왔다. 딱히 원숭이가 보고 싶진 않았는데

사실 무섭다. 매체들 통해 공격적인 원숭이 사건들만 대한 탓인지 아이도 나와 함께 한껏 겁을 먹고 움츠려 있다. 눈 깔아.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보고 가자고 해서 나서본 길이다. 한창 비가 쏟아지고 난 뒤여서인지 내리쬐는 해는 없어도 습한 공기에 더 덥게 느껴진다. 다행히 뺏긴 것도 없고 공격받지 않고 무사히 탈출했다. 들어올 때와 다른 출구로 나와져서 사뭇 당황했지만 우리에게 구글맵이 있지 않던가! 


이내 갈 방향을 찾아 걷기 시작한다. 

차도 양쪽으로 인도가 있고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다. 

순간 아이가 묻는다.


 " 아! 엄마! 이 냄새! 외삼촌 냄새 같지 않아? "


갑자기?

발리 우붓 이 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외삼촌이 떠올랐다고?


아이를 이해해 보려고 습한 공기 중에 냄새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삼촌, 오빠를 찾는 것이. 사실 그냥 담배 냄새였다. 한국에서는 건물 안, 길거리 아무 곳에서 흡연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가 담배 냄새를 맡아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댁 포함해서 온 가족 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오빠 한 사람이었다.

외삼촌 옆에 갈 때면 늘 풍기던 그 냄새가 담배 때문인지 뭔지는 몰랐을 것이나 그게 외삼촌 냄새였나보다. 

아이에게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다른 이유보다는 굳이 담배 냄새로 기억되냐고 오빠를 꾸짖고픈 마음?이랄까

그래도 발리 시간 안에서 잠시나마 떠올리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삶이 이어져 나가면 되는 거라 생각된다.

덕분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무기를 하나 또 장착했다. 

발리에서 그 아이템들을 더 많이 찾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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