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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Apr 02. 2024

시간의 경계, 그 자의적 해석

시간의 경계, 그 자의적 해석 #01

" 바스락, 바스락 "


정말 소리가 난 것인지, 꿈속에서 나를 느끼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이 소리에 잠이 깨었다.


아직 눈은 떠지기 전이고 침대와 나,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이불 사이에 공기가 낯설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간다. 이 시대 국민 체형 어깨말림 현상에 나는 똑바로 다시 눕는 것도 불편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보며 의식을 불러오는 중이다.


' 내가 지금 어디였더라. 집은 아닌데...... '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난 집이 아니야.


' 여긴 발리야! 발리였어! '


벌떡 일어나 앉아본다.

(몇 달째 실패의 연속 롤업이 이렇게 단번에 성공된다고!!! )

암막커튼 사이로 빛줄기가 비집고 기어 나오고 있어도 엑스트라베드에 우리 집 남자 둘은 꼭 껴안고 하늘을 떠다니는 중이다.

(이 커다란 베드를 두고 굳이 굳이 둘이서 저 좁은 곳에서 자는 걸까? 하긴, 덕분에 나는 편안한 잠을 잤구나)


아직까지 인지 부조화 상태로 나의 뇌는 과거를 거슬러 지금부터 24시간 전,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시간부터 쭉 혼자만의 스페셜 방송(예전에는 재방송이라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지칭되더라)을 시작했다.


[스페셜(재) 방송 on]


 우리는 발리 한 달 살기를 계획했고,

(정확히 말하면 한 달 놀기? 여행하기? 널브러지기? )


그렇게 저녁 비행기를 탔고,

(오후 5시 20분 비행기였으나 6시 반이 넘어야 출발했으니 저녁 비행기로 해두자)


7시간 가까운 비행을 하고 발리 덴파사르 웅우라이 공항에 도착했다.

(결혼 후 10년간 차곡차곡 모아 온 마일리지 덕분에 세 가족 모두 프레스티지석의 편안함을 만끽하고 날아온 터라 공항 새벽 도착에도 말끔하다!! 9살 아이는 너무 이른 나이에 자본주의의 맛을 본 것 같다! 누워서 오는 비행기가 너무 좋았단다.)


입국심사와 세관신고 준비는 사전에 다 준비했던 터라(우리 부부는 둘 다 ISF+J) 아주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어제일자부터 예약된 리조트에서 이 새벽에 우리를 프라이빗하게 픽업하러 왔다.

(12박. 이 정도 서비스는 받을만하다고 본다!! )


예약된 숙소는 공항에서 45분가량 떨어진 우붓에 있다. 새벽이라 그렇지 낮에는 1시간 반에서 2시간까지 걸린다니 가까운 곳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숲(논) 뷰를 고집했다.


그렇게 리조트에 새벽 2시 반에 도착해서 체크인 마치고 룸에 들어오니 3시다!!

(한국시간 4시인데, 아이는 팔팔하다!! 해 뜨는 거 보고 자겠다고 한다. 우리 집 큰 남자는 면세점에서 쇼핑해 온 위스키에 침을 흘리는 중이다. 2잔 정도 먹고 잠들면 아주 푹 잘 것 같다며 대화 같은 혼잣말 중.)


예상은 했지만 1월 한국 날씨와 다르게 고온다습한 발리의 날씨에 적지 않게 모두 지친 듯하다. 공항에서부터 리조트까지 오면서 땀 세례를 받은 상태라 빠른 정비를 마치고 각자의 취향껏 손에 하나씩 쥐고 침대에 올라앉았다.

 - 큰 남자_썩소를 머금고 위스키 한잔 흔드는 중

 - 작은 남자_노트북/마인크래프트+아이패드/유튜브

 - 그리고 나_휴대폰으로 중요 일정을 체크


그렇게 내가 먼저 잠들었고, 큰/작은 남자들은 아침해가 뜨는 것을 신기해하며 잠들었다고 한다.


[스페셜 방송 off]


[본 방송 on]

[조식당에서 바라본 리조트 전경]

이렇게 나는 지금 발리다. 이제야 나의 정신도 발리로 불러들였다.


여행, 특히 해외여행의 시작은 그 시간의 경계에서 잠깐 혼란스럽다. 다만 여행이기에 이 혼란을 걱정하지 않고 즐긴다는 것이 참 재밌는 일이다. 한국과 현지 시간을 앞뒤로 따져보기도 하고, 시간의 혼돈 속에서 이후부터는 어떤 시간으로 지낼 것인가를 결론 내린다. 자의적 해석이 100%인 시간 개념이다.


나의 오늘부터 시간은 '발리 시간'이다.

나에게 발리시간이란 최근 2년간 나에게 몰아닥친 일들로 인해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돌리기 위한 '무'의 시간 상태를 지칭한다.


*나 = 상실감, 호르몬 이상, 대인관계 회피, 과잉 책임감, 감정조절 실패, 죄책감, 분노, 외상, 내상......


나를 지금 어떻게 간단히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건으로 풀어놓자면 또 번외 편이 한 권 나올 테고, 감정 상태를 파고들자니 이건 전문가와 이야기 필요할 듯하다. 환경적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나를 다독이기가 어려워서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족은 늘 그랬듯 내가 다시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보듬어 안아주었다.


어쩌면 타인에게는 꾀병 같은 이 마음의 병이 정말 아픈 병이란 걸 이해해 준 큰 남자와 작은 남자. 내가 더 많이 웃기를 바란다며 큰 남자는 안식휴가를 냈고, 작은 남자는 겨울방학 학원들을 다 내려놓았다.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결정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결정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서사들은 뒤로하고 결론적으로 나에게 안정을 주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발리 시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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