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00
미안하지만 나의 '발리 시간'은 여행안내나 정보를 담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발리라는 지명을 쓰면서 혹여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염려는 되었으나, 이보다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해 이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나오겠지만 '발리시간 = 무(無)'의 시간입니다.
쉼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가던 나의 인생에서 많은 장애물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순간이 한동안 지속 되었습니다. 마음과 몸, 그리고 머리까지 피폐해지다 보니 나라는 사람을 나 자신이 괴롭히고, 나를 아끼던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던 시기였습니다. 자꾸 땅을 파고 혼자만의 구덩이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시간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내가 나의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처음 내뱉은 말은
"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
두 번째 말은
" 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어. "
그렇게 내 마음을 표현했고, 나의 가장 가까운 큰 남자는 응답해 주었습니다.
" 우리는 한동안 여행을 떠날 거야! 짐 싸자!"
나의 말도 안 되는 외침에 큰 남자는 긴 휴가를 냈고, 우리는 발리로 떠났습니다.
발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떠날 결심을 했어? 현실적인 문제가 많았잖아!"
그가 답합니다.
" 네가 살려달라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라서 극복하고 이겨 낼 것이라는 확신은 이미 이때 깨달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냥 살아내는 게 아닌 나답게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은 조금 더 고민해 볼 문제였습니다. 고민을 하고 뭐든 다시 시작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요구될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이곳 발리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뭐라도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는지 발리 시간이 알려 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