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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Apr 02. 2024

안 하던 짓하면 즐겁다!(4/4)

안 하던 짓하면 즐겁다! #11 (4편)

1. 거북이랑 수영하기(화상보다 기미가 더 무섭다)

2. 스노클링(파도 멀미)

3. 자전거 타기(굴러 굴러_상처)

4. 다이빙(스포_죽어도 못하겠다)

5. 버블 파티(거품은 거품이다.)

6. 비 맞고 뛰어다니기(이 동네 미친 X은 나)

7. 패들보드(겸손해지는 두 무릎)

8. 글쓰기(좀 쓰자!)

......


길리 T에 들어와서는 한 줄도 글을 쓰지 않았다. 안 하던 짓들을 하고 돌아다니더라 심신이 평소와 같지 않다 보니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어려웠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 정보를 주려는 알찬 목적도 아니고,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 친절하지 않은 이야기 흐름을 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여행 중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나 음식, 냄새, 사람, 상황 등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자꾸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보니 글을 쓰면 쓸수록 고민이 늘어난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관성 없는 불완전한 나란 인간의 감정을 쌓아둔 글을 다른 사람이 관심 있어할까?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까? 일기처럼 나 혼자 간직하고 보는 게 맞을까?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자판을 두드리기가 쉽지가 않다. 그동안 작성해 둔 이야기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본다. 아! 나는 그냥 글이 쓰고 싶어었구나! 내 마음속 머릿속에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나를 이해하고 싶었구나!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고 싶었구나! 나의 초심을 그랬구나!


8. 글쓰기(좀 쓰자!)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주변도 조용하고 새소리도 듣기 좋아서 커피 한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슬 먹은 눅눅한 공기지만 핫한 뜨거움이 아직은 닿지 않아서 한동안 앉아 있을 만할 것 같다. 에어컨 시원한 바람이 조금 아쉽지만 천정에서 선풍기도 돌고 초록초록함이 눈을 비집고 들어오는 탓에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안성맞춤일듯하다.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동안의 나의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정말 반가운 것은 여행을 시작할 때와 다르게 누군가의, 누구로서의 나가 아닌 오로지 나의 나로 먼저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밖에 어느 것들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서 나를 위한 선택과 결정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발전인가!


예전에는 이기적이라는 말이 마냥 나쁜 말인 줄 알았다. 보통 사람들도 이기적이라는 말을 타인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 많이 가져다 쓰지 않나! 그런데 이기심()은 생물의 본성으로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다. 물론 그 마음이 너무 과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 자체에 대한 마음에는 누구도 탓할 권리가 없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줄까! 


다시 내가 아닌 누군가들을 위하려면 내가 좀 더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그 관점에서 나는 지금 너무 괜찮아져 있다. 머릿속은 여느 때보다 단순해져 있고, 마음은 아주 단단하게 근력이 붙었다. 몸은 솔직히 아직 조금 더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건 시간과 꾸준함이 해결해 줄 명쾌한 문제라 걱정하지 않는다. 너무나 답이 없던 머리와 마음이 괜찮다고 하지 않나! 


이제 남은 나의 여행은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차근차근 정리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보내온 발리 시간 안에 너무나 많은 답들이 있었다. 잊어버리지 않게 잘 적어 남겨둬야 하는데, 하필 발리 시간은 나에게 부지런함은 답으로 던지지 않았다. 혹 내가 글로 남기는 것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그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충분조건 안에서 다 존재할 테니까. 


여러 이유로 정리를 많이 한 아침이다. 점점 햇살의 뜨거움이 이 그늘에도 드리운다. 이럴 때는 잠시 피해서 쉬어가야겠지! 이제 이 아름다운 섬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많은 경험과 행복을 안겨준 이곳에서의 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많이 버리고 많이 채워가는 곳이라 애착도 많이 느낀다. 그렇지만 아마, 다시 올 것 같진 않다. 우리는 여기서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이제 발리 누사두아 마지막 여행지로 간다. 그곳에서는 또 어떤 마지막을 보내게 될까? 나에게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어 줄까? 행복한 물음표만 남기고 길리 트라왕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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