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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Apr 02. 2024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12

[타 나바락_이 순간 여기에]

길리 T에서 발리섬으로 나올 때는 인접한 섬들을 하나씩 들렸다가 사람들을 태우다 보니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들어올 때 작은 남자가 멀미로 고생했던 터라 더 많은 시간을 배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자리 잡자마자 잠을 자는 것을 권했다. 작은 남자도 그날의 불편함을 기억했는지 흔쾌히 자리 잡고 누워 눈을 감아본다. 다행히 긴 시간에도 가족 모두 무사히 배에서 내렸다.


뱃멀미를 예상하고 아침을 너무 간단히 먹은 탓에 어른도 배가 고픈데 아이는 오죽하랴. 발리 빠당바이 항구에서 우리의 마지막 숙소 누사두아까지는 차로 꽤 한참을 달려야 했다. 요기거리로 챙겨둔 초콜릿 몇 조각과 사이다로 배고픔을 달랬다. 방으로 들어오자 모두가 한마음같이 침대에 드러누워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꼬르륵"


배가 너무 고픈데 맛있게 잘 먹고 싶었다. 작은 남자의 한계도 극에 달아 웬만해서는 볼 수 없는 심통까지 내 보인다. 부랴부랴 검색해보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한국 식당이 있고 픽드롭까지 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몸을 이끌고 식당에 도착한 우리. 정말 말도 안 하고 먹었다. 아! 행복하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그제야 주변도 돌아봐지고 친근하게 인사 건네시는 한국 사장님도 보인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식을 먹어서인지 배가 든든하다.


그렇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길리 T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리움이나 그 밖에 에피소드등에 대한 나눔도 없이 이곳 누사두아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완벽한 클로징이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숙소 테라스에서 저 바다만 하염없이 보다가 어둠이 내려앉으면 별 보고 그리고 바스락 거리는 저 침대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할 것이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이라 조금 편하게 누사두아 주변을 돌아보며 관광하고 싶어졌다. 사실 환상적인 비치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여러 사원들, 인싸 맛집들이 아주 많을 테지만 아이 눈에는 이 비치가 그 비치고, 저 사원이 그 사원이고, 이 맛집이 그 맛집이다. 모두를 다 가보고 경험한다는 것은 커플이거나 혼자 오면 할 여행이란 걸 많은 엄마들은 이미 잘 아실 거다. 그래서 하루 반나절 코스로 프라이빗 관광 투어를 알아보고 한국어까지 장착한 친절한 가이드를 만났다.


슬로반비치의 싱글핀이라는 식당이 유명하다해서 들렸다. 왜 유명한지 알 것 같다. 바다 절벽뷰를 제대로 품었더라. 음료 한잔에 지치지 않고 부서지는 파도와 저 먼바다, 이어진 절벽 풍경까지 천천히 만끽했다. 정말 이제 끝나가는 구나라는 아쉬움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영화 엔딩크레디트가 곧 올라갈 것 같은 류라고 할까!


이렇게 끝나도 사실 괜찮은데, 우리에게는 쿠키영상이 더 남았다는 거!!


울루와투사원은 이곳에 와서 들리지 않으면 서운한 상징적 장소라 일부러 가봤다. 아주 풍경 좋은 절벽 사원이었는데, 솔직히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여러 사원들을 거쳐 본 탓에 큰 감흥을 받거나 흥분되게 좋거나 등의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원숭이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가이드가 너무 착붙으로 우산까지 무기로 들고 우리를 호위해 준 덕에 원숭이와의 대치는 피했다. 다른 관광객이 가방을 사이에 두고 원숭이와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도 보고, 손에 쥐고 걷던 물통을 날치기 해가는 원숭이도 목격하다 보니 무엇보다 다이내믹한 관광코스가 되어버렸다. 작은 남자도 우산 하나 차고 호위병을 자처해서  '심심해, 재미없어.'라는 말은 안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선물 같은 여행 사진을 안겨준 곳. '타 나바락' 인공적으로 만든 절벽으로 양쪽 절벽 사이 도로를 내고 비치까지 연결되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바다, 하늘, 절벽이 신비한 조합의 배경으로 탄생한다. 우리가 도착할 무렵에는 비가 내리는 아침이어서인지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비 맞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가자는 마음으로 차를 내렸는데, 신기하게도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고 맑은 파란 하늘이 내비쳤다. 가이드는 휴대폰을 달라며 비치 쪽으로 걸어가 보라며 사인을 준다. 시키는 대로 걸어갔다 걸어오고, 하늘 봤다가, 서로 장난도 치며 자연스럽게 그곳을 즐겼다. 어느덧 관광객들이 하나둘 몰려오고 금세 주차된 차며, 사람을 가득 찼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말한다.


" 참 운이 좋은 가족이네요!"


그 당시는 인사치레로 답변만 했는데, 하루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사진들을 보는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발리 여행 통틀어서 가장 멋진 가족사진들이 오늘 다 찍혔다. 그러고 보니 서로를 찍어주기만 해서 이렇다 할 가족사진은 남긴 게 없었는데, 인화해서 벽에 걸어도 될 만큼 멋진 사진들이 가득이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서툴지만 그래도 BGM까지 깐 동영상 파일도 만들어 보내주며 여행 잘하라고 전하던 가이드의 친절에 너무 행복해졌다.


다시 타 나바락에서 돌아오던 차 안의 시간으로 간다면 나는 다시 말해주고 싶다.

" 당신 같은 친절한 사람을 만났으니 우리는 운이 좋은 가족이 맞네요!"


주변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마음을 많이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아끼고, 배려하고, 생각하는지를 할 수 있는 많은 방법으로 알려줘야 한다. 말, 몸, 선물, 편지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 하는 아부도 아첨도 아니다. 정말 그를 떠올렸을 때 내가 해주고픈 것들을 주저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표현이 너무 낯설고 부끄러웠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이 행복해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상호 교감 시간이 좋아졌다. 물론 그런 나의 사람들은 무한정 많지는 않다. 멀리, 많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잼뱅이라 오래, 깊이, 가까이 맺어온 나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감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오늘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미처 표현하지 않은 것에 후회가 없도록 살자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고맙다고 말할걸, 사랑한다고 말할걸, 미안하다고 말할걸......'


여행을 끝나는 길에 또 하나 든 생각은 가끔은 내 사람들에게 하던 것과 같이 따스한 베풂을 뜬금없이 해봐야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건이 또 누군가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나처럼. 내가 거창하게 인류애적 선봉에 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웃음 짓는 순간 하나씩은 만들어 줄 능력이 있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서 좋은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서 지금보다 조금은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다면 오늘의 이 다짐 속 '가끔'이 '자주'가 되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발리 시간은 분명 나의 멈춰진 시간을 다시 돌리기 위한 '무'의 시간이었다.


이 '무'의 시간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찾고 또 찾았다. 지금의 나란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 이유도 스스로 되짚어가면서 이유 없는 내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무도 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나의 선택들로 이루어진 모습이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되었다. 원망도 칭찬도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이라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반복되는 힘든 이유를 외부 상황과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왔다. 그러면서 답이 없다고 자책하는 어리석은 나였다는 것도 인정하기 싫지만, 아프지만 알았다. 내가 또 논리적으로 인정된 사실에 대해서는 잘 수긍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난 회복 탄력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잠시 멈추어둔 나의 시간을 이제는 다시 돌려보려고 한다. 물론 사람인지라 난 또 좌절하고 슬퍼하겠지만, 다시 뛰어오를 줄 아는 사람인 걸 아는 이상 그게 뭐 큰 대수일까! 이 순간 무엇보다 나를 믿고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나의 상황에 빗대기는 좀 우습지만, 그만큼 우울한 사람 곁에서는 주변 사람도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 내 곁에 남아서 날 위로하고 응원해 준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손가락 접어가며 생각하니 생각 밖으로 너무 많다. 손가락, 발가락을 다 써도 모자라다.


"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고 있어서.


이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의 그들에게 더 열심히 표현하고 싶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덕분에 내가 다시 돌아왔다고.


누군가 나에게 발리 시간은 어땠냐고 묻는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 누구나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그 '무'의 시간에서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여유를 스스로에게 주세요. 나는 그것이 발리 시간이었지만 사람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겠죠? 그 무의 시간 안에서 새롭게 찾아내는 많은 나 자신의 이야기가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다가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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