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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Apr 02. 2024

안 하던 짓하면 즐겁다! (3/4)

안 하던 짓하면 즐겁다! #11 (3편)

[춤추는 거 맞습니다.]

1. 거북이랑 수영하기(화상보다 기미가 더 무섭다)

2. 스노클링(파도 멀미)

3. 자전거 타기(굴러 굴러_상처)

4. 다이빙(스포_죽어도 못하겠다)

5. 버블 파티(거품은 거품이다.)

6. 비 맞고 뛰어다니기(이 동네 미친 X은 나)

7. 패들보드(겸손해지는 두 무릎)

8. 글쓰기(좀 쓰자!)

......


살아오면서 가끔 다른 사람 눈치 하나도 안 보고 울거나, 웃거나, 뛰거나, 춤추거나, 드러눕거나 등의 일들은 해본 적 있나요?


뭐, 기억은 정확히 잘 안 나지만 학창 시절 친구랑 했을 것도 같고, 그래도 몇 번은 나를 그렇게 내려놓은 시간이 있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언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분명 혼자서는 못했을 일이다.(내 성격상) 함께 동조하는 사람이 있었기에(믿는 구석) 했겠지. 그런데 아쉽게도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없다. 아쉽네.  있더라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정신줄을 놓았기에 기억 저편이 있는지도.(아니면, 너무 부끄러웠나!)


나는 개그, 예능 프로를 그리 즐겨보지 않는다. 봐도 그리 재미를 못 찾아서 인 것 같다. 우리 집 큰 남자나 작은 남자는 그렇게 개그 프로보며 까르르 넘어간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왜 웃지?


그러고 보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목젖을 드러내고 자지러지게 웃어 보인적이 있던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뒤센 미소는 잃어버리고 팬암 미소만 열심히 지어댄 것 같다. 가만히 거울을 보고 입꼬리 올리고 눈꼬리 내리고 광대 근육을 당겨 미소 지어 보인다. 이게 나라고? 참 싫다.


6. 비 맞고 뛰어다니기(이 동네 미친 X은 나)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중이다. 작은 섬이라도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온다고 한다. 섬 곳곳에 한국 식당을 찾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김치찌개, 라면, 김밥, 떡볶이, 닭볶음탕, 순두부찌개까지도 먹을 수 있다. 언젠가 방영된 '윤식당' 영향이 제일 큰 듯한데, 일단 방송 타면 한국인들은 어디든 잘 찾아가고 또 붐을 만들어 낸다. 각종 사이트에서 한국인들 간에 소통 카페가 생겨나고 거기서 많은 정보들을 공유한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 가더라도 의식주에 대한 기본 정보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은 듯하다. 나 역시도 이러한 친절한 한국인들 덕분에 조금 더 편하고, 빠르고, 안전한 방법들을 찾아 이곳을 여행하고 있으니 얼굴도 모르나 정보를 나눠주신 많은 분들에게 마음에 감사를 전한다.


오늘도 그 정보들 중 하나를 픽하여 길리 T 내에서도 가격이 제일 싼 마트를 찾아 나섰다. 이곳은 소형 편의점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편의점마다 물품 가격은 천차만별. 맥주는 최대 3배까지 차이나는 곳을 봤다. 한국처럼 바코드로 찍어서 계산하지 않고 일일이 수기로 체크를 하고 있었다. 혹시 외국인이라 더 비싸게 받나 싶어서 계산창을 보면 제품당 매겨진 가격을 사람에 따라 바꾸는 것 같진 않았다.(의심해서 미안하다.) 단지 편의점 브랜드 차이거나, 지점 차이로 자체적 가격 측정 판매를 하는 듯했다. 며칠 지낸 덕에 그래도 가격이 조금 저렴한 편의점을 알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사 오곤 했다.(물과 맥주를 제일 많이 샀다. 여기는 술값이 많이 비싸다.)


그러던 중에 섬 내륙 쪽에 마트가 있는데 그곳이 가격이 아주 합리적이라기에 열심히 달렸다. 어렵게 찾아간 곳은 마을 중심쯤에 있는 듯했고 편의점과는 사뭇 다른 동네 마트 느낌이었지만 필요한 물건들은 충분히 있었다. 물은 여태 들른 가게 어디보다 가격이 쌌다. 그런데 애타게 찾는 맥주는 어디에도 안보였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술은 안 판단다. 이슬람교인 이신 듯하다. 안타까운 탄성이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아이스크림, 아니 정확히는 빙과류 쭈쭈바를 하나씩 물고 다시 달린다.


이번에 구글맵이 안내하는 길은 섬을 가로지르는 내륙길이다. 도로 곳곳에 블록을 까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 구간을 지나니 이미 새 길을 깐 아주 반듯한 길이 나온다. 내륙이라 약간의 언덕, 내리막길도 만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해안도로를 이용해서인지 이 길은 한적하기까지 하다. 잘 정리된 길을 바람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즐겁다. (1단계 텐션 예열)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비가 내린다. 지금 이 날씨에 너무 터무니없는 비 소식이긴 했으나 우리가 잠시 간과했던 부분이 있다. 발리는 우기다. 우기임에도 너무 좋은 날씨 속에 잠시 잊었었다. 아직 숙소까지는 한참이 남았는데 이런 빗줄기라니!!!


" 신난다!"


그런데 신난 게 나뿐만이 아니더라. 우리 집 작은 남자는 큰 남자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서 팔다리 휘저으며 난리도 아니다. 보통 우리는 이런 모습을 '오두방정'이라고 하지. 그런데 그걸 나도 같이 떠는 중이다. 어차피 비치웨어 입고 있고, 이 비에 젖은 들 걱정될 일이 일도 없다. 언제 이렇게 비님 비님 외치며 놀아볼 수 있겠어.  자전거도 두고 빗속에서 만든 우리만의 세상에서 아이와 한참을 놀았다.


Mom : 나는 비 사이를 통과 중이다! 얍!

Son : 나는 비를 밟고 날아다닌다! 얍

Dad : (부끄러움과 자전거를 담당)


해안도로로 다시 나왔을 무렵 비가 거짓말 같이 그쳤다. 쫄딱 젖은 모습이 서로들 너무 웃기지만 바다/수영장에서 물놀이하고 나온 거랑 뭐가 다르겠어. 주변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우리를 보고 지나친다. 그 일상스러움이 너무 기분이 좋다.


얼마나 웃고 떠들며 놀았던 건지 잔 웃음이 한참을 가시질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바로 리조트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비치 쪽을 바라보니 해가 지고 있다. 내 가슴속에 응어리 같은 것이 톡 튀어나와 저기 저 바다 위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치로 더 가까이 가서 그것이 타들어가는 것을 한참을 바라봤다. 이내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바닷물이 드는 해변까지 걸어갔고, 흐느적흐느적 온몸을 휘저으며 모래 위를 배회했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한참을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큰 남자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나를 부르지 않고, 비치체어에서 깊숙이 몸을 눌러 접고 조심스레 사진만 남겼다고 한다.


이제 그 타오르던 해는 어디 가고 하늘에는 별만 가득하다. 이렇게 많은 별도 얼마 만에 보는지. 가슴속에 있던 것을 다 토해내고 나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저 예쁜 별들도 별사탕 같아 보일 정도로. 뭔가 삶의 애착이 마구 달려든다. 이런 허기짐도 참 오랜만인 것 같은데, 뭐든 맛있게 먹을 준비되었습니다.!


7. 패들보드(겸손해지는 두 무릎)


[정말 소중한 증거 사진]

조금씩 더 나이를 먹어가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나는 한없이, 아주, 완전히, 꽉 끼인 세대가 되어 있었다. 위로는 상사라고 지칭되던 사람들에게 이미 충분히 학습되어 사회적 관습과 통념을 크게 반항하지 않고 받아들일 줄 아는 미덕을 부여받았다. 아래로는 아날로그 잔여물의 흔적도 묻을 사이 없이 바로 디지털로 입성하여 자란 세대인들의 자아존립 가치관과 세계관을 창문 너머 어설프게 배우기를 하면서 '왜요?'라는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답은 해줄 줄 아는 이해력도 장착했다.


그런데 자꾸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들에 맞춰 살다 보니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적이 되거나 아첨하거나 정복하거나 그 무엇 하나도 할 생각이 없는 성향상 나는 그냥 무미무취의 인간이 되어버린 듯하다. 때로는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또 어떨 때는 함부로 쳐낼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어느 때는 일 부리기 좋은 사람으로, 잘 참는 사람으로, 화낼 줄 모르는 사람으로, 이용하기 편한 사람으로......

여러 목적과 이유로 나는 쓰이고, 평가되고,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던 순간이 있었다.


한동안은 그렇게 생각되는 사실들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나는 항상 그랬듯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인정하는 것에서 오는 혼돈이 많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반항도 해보고 맞서보기도 했는데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드러내며 오가는 뼈 아픈 말들에 생채기가 나서 사람 자체가 싫어지고 피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더라. 이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며 여러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고 달랬던 시간이 있었다.


그 생각들의 발단이 특정 사건인지 상황인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그 언저리 시점에서 나는 조금 다른 내가 되기로 생각을 바꾼 적이 있다. '뭐가 되겠다'라는 마음을 접은 것이다.


상황별 이유는 다 달랐겠지만, 결국 내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이 되지 않아서 생기는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안 바뀌지만 내 마음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누구인지도 모를 대상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고 기대를 품지 않는 것. 대신 나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의 인생 가치관이다. 20살 생일이 지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고, 사회로 나가서 돈을 벌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는 어렵지 않은 게 어른이라 생각했는데 난 그 모든 것을 다 했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어른이던가? 누구를 위한?


그래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때론 나의 작은 손 내밈이 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변화시킬 일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거대한 꿈을 가져보기로 했다. 위로 아래로 가 아닌 옆으로 살피다 보니 가끔씩 마음 따뜻해지는 인사들을 전해 듣게 되더라. 그럴 때면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아져서 행복했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더 해 나가야 할지 정해진 답은 없으나 나는 나를 믿는다.


우습게도 나는 이런 생각을 지금 패들보드 위에서 하고 있다, 생뚱맞게 무슨 짓이냐고 누군가는 묻겠지. 그런데 여기 이 자리,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도통 무릎 꿇은 상태로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길리 T 섬은 언젠가 우리가 봤을 영화 캐스트어웨이를 생각하게 한다. 해변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면  아주 멀리까지 얕고 잔잔한 바다가 보이다가 그 너머에서 거센 파도가 부서진다. 한국의 바다는 파도가 해변까지 연속성이 있는데 여기는 바다 뒤에 다른 바다가 있는 형상이라 너무 신기한 풍경이다. 얕은 해변에서 스노클링 하고 바다 경계선에서 높은 파도로 서핑하기에는 매우 좋은 조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나무 뗏목 하나로 저 큰 파도를 뛰어넘어 먼바다로 나가려던 주인공의 눈물 나는 노력이 떠오른다.


지금 나는 저기 높은 파도 가까이는 가볼 엄두도 못 내고 패들보드 위에 두 무릎을 꿇고 30분째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다. 큰 남자, 작은 남자는 패들보드가 안방인 마냥 일어났다 앉았다를 아주 쉽게 반복하는데 나는 뭐가 문제일까!

그렇게 멀리도 보고, 옆도 보고, 내 발아래도 보고, 바다 아래도 보다가 하염없이 흘러가지 않게 노를 젓다 보니 위와 같은 생각에 다다랐던 것 같다. 정말 인간의 뇌라는 것이 기억의 널뛰기를 엄청나게 하는구나 싶다. 이 연결고리 어쩔 거냐고!


나는 이곳에서 뭐든 해 내고 싶었다. 안 하던 거.


현지인들이 내가 참 안쓰러웠나 보다. 한참을 노 젓는 내 근처로 패들보드를 빌려줬던 직원이 오더니 내가 일어설 수 있게 설명도하고 보여주기까지 한다. 나는 과연 몇 번을 빠졌을까! 생각도 안 난다. 다행히 얕고 잔잔한 물이기에 덜 겁먹고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체력도 바닥나고 더 이상 안될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고 성격 좋아 보이는  현지인도 웃음을 잃어가려는 찰나다.


지금 잠깐만 건방져 보이더라도 나 좀 일어설게!!


잠시 겸손은 내려두고 온 힘을 다해 일어서본다.!


꺄아~~ 나 일어났어!!!


현지인, 해변가 관광객들 할 것 없이 모두 박수 쳐주셨다.

(그만하면 됐어!!)


길지 않았던 직립의 순간이 지나고 다시 물속으로 떨어졌지만 이 순간 나는 조금 전 내가 아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작은 남자가 손을 꼭 잡아주며 말한다.


엄마! 잘했어


세상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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