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원 Apr 02. 2024

안 하던 짓하면 즐겁다!(1/4)

안 하던 짓하면 즐겁다! #11 (1편)

[ 길리 T 서쪽  해변 흔한 선셋 풍경]

1. 거북이랑 수영하기(화상보다 기미가 더 무섭다)

2. 스노클링(파도 멀미)

3. 자전거 타기(굴러 굴러_상처)

4. 다이빙(스포_죽어도 못하겠다)

5. 버블 파티(거품은 거품이다.)

6. 비 맞고 뛰어다니기(이 동네 미친 X은 나)

7. 패들보드(겸손해지는 두 무릎)

8. 글쓰기(좀 쓰자!)

......






길리 T는 이상한 곳이다. 꿈속 같기도 하고, 촬영장 속 같기도 하고, 책 속 상상 장면 같기도 한 뭔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나 소설 걸리버 여행기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 사실에 당황스럽다곤 할까!

 - 여담으로 여기 길리 T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다 보면 진짜 윌슨도 만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안의 새로운 인격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 한다.

' 여기서 너는 무적이야. 네가 상상하면 다 이루어져! 해봐! 하나도 무서워할 것은 없어!'


하룻밤 사이 나타난 나의 변화는 우리 집 남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1.  거북이랑 수영하기(화상보다 기미가 더 무섭다)


한국에서도 내 유년기는 경상도 어느 섬이 지분이 제일 크다. 섬에서 살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생각한다.(묻지도 않는다. 절대 법칙 같다.)

" 수영 진짜 잘하겠네요! 바다에서 물고기도 손으로 잡고, 전복이나 성게 이 이런 것도 잡아요?"


섬이라고 해서 정글의 법칙도 아니고, 물고기는 고깃배 그물이 잡고 전복 성게는 양식하거나 해녀분이 잡으시겠죠!!


이렇게 웃으며 답할 때도 있지만 이것도 무지 격식 차린 경우에나 하고 보통은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마음으로는 계속 썩소 날리지만.)


결론적으로 난 수영을 못한다. 선천적으로 겁이 많은 아이기도 했지만 또래 친구들이 여름이면 바다에서 생존 수영을 배워낼 때 나는 집 안에서 책 읽거나 혼자 노는 게 좋았다. 오해 사전 차단을 위해 미리 말하자면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그런 과도 아니다. 나는 단지 햇볕에 살이타서 벗겨지는 것이 아프고 싫었다. 애들이랑 몰려다니며 소란스럽게 노는 것도 흥미가 없었다. 할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좀 많이 보게 되었고, 라디오를 같이 켜 두는 게 좋아져 점점 더 밖보다는 집에 머무르던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섬이나 바닷가에서 자란 나와 동년배의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나 여름 방학이면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선생님들의 진두지휘하에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1박 2일을 보내는 그런 행사도 있었다. (정말 싫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바다 모래사장에서 한참 떨어진 해수욕장 초입 시멘트 바닥을 찾아 시간을 보냈다. 해가 떠 있는 시간 굳이 움직여야 한다면 우산을 펴 들고 이동하곤 했다.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이 찝찝하고, 발에 달라붙는 모래가 너무나 싫고, 내리쬐는 햇볕아래 시뻘겋게 타들어가는 내 살들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 모양이다. 물론 난 금쪽이는 아니다. 이 모든 나의 행동에도 다 이유는 있다.


아주 어릴 때 물에 빠진 적이 있다. 일반 해수욕장 말고 갯벌 같은 곳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썰물에는 조개씨를 뿌려 키우고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으로 바다 방향으로 한참을 나가다 보면 성인 무릎높이로 담을 쌓아두고 경계를 치는 곳들이 종종 있었다. 그곳은 먼 친척집이었고, 방학이라 잠시 놀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 아이들은 밀물에는 그 담 안쪽으로 해서 수영을 하고 노는 게 일상이었을 것이다. 물 깊이도 변화가 많지 않고 바닷가 마을이라 파도가 그리 있지도 않은 곳이어서 어른들도 별 걱정 없이 놀게 내버려 두곤 하셨다. 그리고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툇마루에 동네분들 모여 앉아서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키며 잡아온 물고기 손질해서 안주 삼아 드시는 평화로운 어촌 풍경이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두 분류밖에 선택지가 없어서 아이 쪽에 붙어서 튜브를 끼고 물에 들어갔다. 별 재미가 없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튜브는 흘러 흘러 물속 담벼락까지 다다랐다. 담 위에 올라서니 키가 훌쩍 큰 거 같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담 너머를 내딛는 순간 갑자기 발끝에 종전과 다른 수온이 느껴졌다. '왜 여기는 차갑지?'라고 느껴지는 순간 몸이 아래로 쑥 빠졌다. 뭔가 깊이깊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이 춥고 어둡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고 눈을 뜨니 어른들께서 둘러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시골분들 답게 놀랐을 아이에게 왜 거길 갔냐고 다그치시기가 한참 이어졌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벌어진 일이라 그분들도 심히 놀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중에 들어보니 나룻배를 타고 낚시 나갔던 동네 어른분이 바로 발견해서 구해주셨고, 내가 그렇게 물에 빠졌던 사건은 우리 부모님께 심각하게 전달은 안된 듯하다. 어쩌면 애도 괜찮으니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신 듯한데, 나는 그 기억에 여전히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태양을 유독 피하고 싶은 이유도 분명 있다. 역시 어린 시절, 오빠와 같이 항상 놀아도 나만 아픈 거다. 오빠는 시뻘겋게 며칠 달아오르다가는 말더니, 나는 유난히 뻘겋게 달아올랐다가, 물집이 잡혔다가, 피부 껍질이 벗겨지는 처참한 탈피 과정을 거쳐야 끝이 났다. 그 기간 동안 피부에 닿는 모든 것 때문에 아파서 울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피부가 타는 것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고집을 입 밖으로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절대 햇볕에 맨몸으로 나서지 않았다. 꼭 가야 한다면 긴 옷 무장, 모자, 우산을 동반했더랬다.


과거사가 이렇다 보니 지금 우리 집은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한다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는 일이 되었다. 아이도 아직 바닷물의 짠맛을 꺼려하고, 모래사장의 모래가 발에 붙은 불편함을 썩 내켜하지 않았기에 굳이, 열심히 바닷가 해수욕을 하러 가진 않았다. 그러다가 가끔 남편 없이 친정에 놀러 갈 때면 오빠가 나를 대신해 아이를 맡아서 같이 바닷가에서 놀아 주곤 했다. 물에서는 무한히 자유로운 오빠였기에 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잘 맞는 짝꿍이었다. 그때만큼은 짠 바다라도 아이는 즐거워했다. 결국 바다에 대한 긍정적 경험이 부모와는 조금 모자랐던 게 아닌가라는 미안함도 들곤 했다.


이런 엄마가! 바다에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 바다를 보면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무섭지만 안이 훤히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에 수심도 멀리까지 낮고 무엇보다 거북이가 동네 마실 나오듯 여기저기 출몰해서 놀러 다닌다. 이게 말이 되냐고!


조식 먹는 우리에게 직원이 와서 바다를 가리키며 외친다.

 "터틀! 터틀!"


일찍이 바다에 나가 있는 스노클링족들이 거북이가 가는 길을 따라서 일제히 함께 움직이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건 여기 아니면, 지금 아니면 다시 경험해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트라우마 어쩌고는 날리고 일단 당당하게 나섰다.

[생애 처음 거북이와 대면한 아이]

뭐, 물론 거북이를 만나러 걸어 들어가기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선크림은 잘 발라진 거겠지?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썼는데 괜찮겠지? 갑자기 깊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거북이보다 더 거북이처럼 느려터진 나를 뒤로하고 아이와 아빠는 앞으로 앞으로 나가더니 이내 거북이를 발견했다며 나에게 신호한다. 부랴부랴 다가가면 거북이와 아이와 아빠는 또 저만치 가있었다.

미안해. 거북아. 너는 물에서는 겁나 빠르구나! 내가 느림보다!

내가 불쌍했는지 다른 거북이 한 마리가 내 주변에 등장했다. 그래서 스노클링 장비를 부랴부랴 장착하고 조심스럽게 물속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주 가까이에 다가온 커다랗고 시커먼 이 녀석!  이 기분 뭐지?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다. 약간 오버해서 심장 바운스에 파도가 일 정도랄까. (여기 이 아줌마는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참을 거북이 따라온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


" 엄마! 진짜 크지? 거북이! 엄청 빨라! 여기 진짜 신기하다!"


아이도 이 신기한 경험에 텐션이 하늘로 솟고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따로 없다. 거북이를 따라서 여기저기 흘러 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발리 태양 빛을 장애물 없이 그대로 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배가 고파져 숙소로 돌아온 우리. 익힌 새우처럼 반나절만에 시뻘겋게 타 올라있었다. 더군다나 아이와 아빠의 몸과 얼굴에서 선크림을 건성으로 바른 곳이 어디인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얼룩덜룩 핑크, 레드, 오렌지......... 나는 아무리 열심히 발랐어도 목이며, 얼굴이며, 수영복 틈틈 햇빛이 닿은 흔적이 남았다.

아~ 아프다.

내가 화상연고로 사후 처치를 해보지만 곧 이마저도 포기해 버리는 나다. 그런데 나이 들고 나니 더 슬픈 건,

이 기미는 어쩔 거냐고!!


2. 스노클링(파도 멀미)

어제 거북이와의 만남은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 우리 오늘은 스노클링 나갈까? 리조트에서 소개해준다네!"


큰 남자는 날 아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연신 괜찮겠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신혼여행 때도 큰 마음먹고 스노클링에 도전했는데, 잔뜩 긴장하고 겁을 먹은 탓에 시작하자마자 바다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미끄러져 손을 다쳤다. 그리고 배를 타고 나가서 고래도 보고 스노클링도 해보기로 한 것을 결국 밤새 근심 걱정에 잠 못 이루다가 출발 직전에 취소한 사례들이 있다. 이러니 걱정할 수밖에. 더군다나 이제는 보살필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서 나에게 일이 생겨도 아이 때문에 집중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근심 가득해 보인다.


" 나 여기서는 안 하던 짓, 안 해보던 일, 피하던 것들 도전해 볼래. 해보고 정 안될 것 같으면 배에 타고 있을게!"


큰 남자도 길리뿐 아니라 이 여행자체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기에 뭐든 네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줄게 모드 장착이다. 그렇게 걱정 어린 마음으로 배를 타고 나섰다. 작은 남자에게도 배를 타고 나와하는 이런 깊은 바다 스노클링은 처음이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로서의 마음도 걱정이 앞서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세 식구만 프라이빗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일정으로 예약했고, 가이드도 2명이나 붙였다. 다행히 길리에서의 스노클링은 배로 조금만 나가도 스노클링 포인트가 많고, 거북이도 많이 만날 수 있다. 배가 출발했고, 10여분 후 가이드는 우리는 아래로 내려갈 거라고 하며 장비 사용부터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가이드가 뛰어내리고 작은 남자가 배에서 바다로 뛰어든다.


작은 남자! 너 왜 이렇게 용감해! 이 깊은 바다를 겁 없이 뛰어내려 편안히 스노클링 한다. 멋진 녀석!


나 역시 힘들게 배에서 뛰어내리고는 열심히 가이드를 따라 바둥거린다. 스노클링 포인트들을 좀 돌다가 거북이가 나타난 곳으로 여기저기 헤엄쳐 다니다. 그런데 역시 난 반응이 슬슬 온다. 배가 하나 지나가면서 만들어내 큰 파도에 놀라고는 그다음부터는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바닷속 뭐가 보이지도 않고, 멀미 나듯 어지럽더니 불안 증세가 시작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큰 남자는 작은 남자 옆에 꼭 붙어서 잘 챙기고 있는 게 보인다. 점점 나는 가이드랑도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찰나 대기하던 배가 내 옆에 가까이 와줬다. 이러다 사고 나겠다 싶어서 배로 올라가고 싶다고 하니 웃으며 끌어올려 준다. 내가 더는 못 내려가고 그냥 배를 타고 있겠다고 하니 자주 있는 일이라며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안심시켜 준다.


배에서 정신을 붙잡는 사이 둘은 신나게 바다를 유영중이다.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큰 남자도 늘 나 때문에 제대로 물을 즐겨볼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아이가 너무 좋아하니 둘이 티키타카 해가며 노는 모습 보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밀려온다. 그러고 보면 큰 남자는 허들이 많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억지로 뛰라고 한 적이 없다. 안 해도 된다며 그냥 같이 주저앉아주던 사람이었지. 오늘 새삼 다시 그 마음이 보인다. 신나게 뛰어넘어 보고픈 적도 있었을 텐데. 이제 아이가 자라서 아빠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이 늘어나면 그 아쉬움 함께 풀면 좋겠다.


근데 스위스 패러글라이딩은 좀 무리일 것 같은데 어쩌지? 우리 집 작은 남자는 나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대!! 나중에 혼자 뛰자!! 우리가 밑에서 같이 기다릴게!


실컷 스노클링을 즐기고 온 아이는 나중에는 가이드처럼 라이프재킷 벗고 물아래로 헤엄쳐 내려가보고 싶단다. 아마 곧 그런 날이 올 것 같다. 오늘의 나는 안 하던 짓에 대한 도전으로 행복한 마음과 추억을 남겼다. 나의 도전과 아이의 새로운 경험과 아빠의 소원 성취가 이루어진 날. 가족이 함께 손 잡고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도 가이드가 고프로에 담아줘서 오래오래 소환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온 저녁은 멀미와 후유증으로 나는 밥도 못 먹고 침대에 드러누워 다음날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즐거움과 고통이 함께 왔지만 후회 없는 하루였다. 안 하던 짓 하면 아픈 법이다!


3. 자전거 타기(굴러 굴러_상처)

[자전거 초보자가 세우고 찍은 사진_멀어진다]

길리 T는 처음 설명한 것과 같이 차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자전거라서 어디서든 자전거를 쉽게 빌릴 수도 있다. 보통 1일권으로 빌리는데 아이가 아직 보조 바퀴가 없는 자전거를 탈 수 없어서 아이와 함께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알아봐야 했다. 다행히 뒷자리에 태울 수 있는 자전거를 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리조트별로 무료로 대여가 가능한 곳도 많다. 우리가 두 번째 묵은 리조트는 좋은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 줘서 좀 더 엉덩이 덜 아프게 섬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 해본 일 해보기 또 시작!


큰 남자는 아이를 뒤에 앉혀서 달렸고 나는 혼자 집중에 집중하며 페달을 돌렸다. 사실 난 자전거 타는 것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외항선 요리사 셔서 집을 자주 비우셨고, 그러다 보니 그 나이 때 아빠에게 배울 만한 것들을 못 배운 게 있는 듯하다. 자전거는 어릴 때 이종 사촌 동생이 이모부에게 배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다가 잠시 같이 가르쳐 주셨던 게 내 기억 전부이다. 커서는 꾸역꾸역 타기는 하는데, 그게 좀 많이 서툴러서 그 끝에 꼭 다치더란 말이지. 그래서 즐겨 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게 이동 수단이라고 하잖아! 자전거, 걷는 거 말고는 답이 없는 동네다.


매번 마차를 부르는 건 더 어이없지. 그럼 타야지! 생활이고 생존이다! 그러고 보면 대안이 없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답이 한 개라잖아!


섬 해안도로로는 대부분 포장이 되어서 자전거 타기가 수월하게 되어 있다. 차가 없고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만 마차들이 짐을 싣고 분주할 뿐 이외 시간에는 모두가 자전거들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자신감 솟지!


하루 타보니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외치던 나는 이제 멀리까지 맛집을 자전거 타고 가보자고 앞장선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맛집이 해안도로가 아니라는 거였다. 이제 골목으로 들어가서 내륙을 훑고 다녀야 한다. 비포장 도로에다가 곳곳에 돌도 많고 웅덩이도 많다. 최대한 조심하고 걱정되는 곳은 그냥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며 안정적인 라이딩을 했다. 저 멀리 또 웅덩이가 보인다. 큰 남자의 자전거는 먼저 앞서 갔고, 뒤 따르던 나는 마주 오는 자전거 때문에 길을 조금 틀어야 했다. 그런데 웅덩이 옆을 지나가던 내 자전거의 바퀴가 갑자기 회전력을 잃었다. 바닥이 생각보다 뻘이었다. 자전거 바퀴가 박혀서 굴러가지 못하는 찰나 오른쪽은 물이 찬 흙탕물 웅덩이, 왼쪽은 돌밭에 비포장 시멘트 턱이 보였다.


정말 신기한 게 나는 그 순간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선택하면 어느 방향으로도 넘어질 수가 있었다. 물론 더 노련한 라이더였다면 넘어지지 않을 방법을 찾았겠지만, 나에게는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전제고 다만 덜 다칠 방향으로의 선택만 있었다. 나는 흙탕물 웅덩이에 내 몸이 던져졌다. 아픈 줄은 모르겠고 물속에 뭐가 있을지도 모를 웅덩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벌떡 일어났다. 순간 주변에 현지인과 앞서 갔던 우리 남자 둘이 놀란 얼굴로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 괜찮아요, 나 괜찮아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둘러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자전거를 일으키는데 그 상황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 나만 괜찮고 모두가 안 괜찮은 상황!'


그런데 너무 웃긴 게 내가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더라는 거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딱히 부끄럽지도 않고, 그냥 ' 안 하던 짓 하다가 넘어졌네. 진짜 웃기네' 이런 마음의 소리가 내 안에서 울리며 계속 해맑게 웃었다는 거야. 시커먼 흙탕물 뒤집어쓴 여자가 히죽히죽 웃어대니 옆에 있던 현지인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셨을까?

걱정 어린 얼굴로 다가와서 샤워를 해야 한다며 몸으로 표현하더니 뭐라 뭐라 말을 건네다. 착한 현지인은 처음 근처 숙소를 살펴보다가 주인이 안 보이니 바로 옆 가게 앞 수도꼭지 물을 틀어주면서 씻으라고 손짓한다. 동네 골목 사거리에서 수도꼭지로 샤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큰 남자, 작은 남자는 놀란 얼굴로 계속 주위를 맴돌고 나는 또 역시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현지인에게 건네받은 호수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큰 남자는 내 몸에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 너 옷에서 시커먼 물이 계속 나와~"


큰 남자는 당황하며 나에게 계속 물을 뿌려준다. 나는 물도 귀한 섬에서 계속 이렇게 물을 얻어 쓰는 게 미안해서 적당히 하고 가자고 말했다. 선뜻 이방인을 도와준 현지인들이 너무나 감사해서 진심을 다해 인사를 꾸벅했다.


그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 내가 한 번쯤 언급은 되겠지??


그곳을 빠져나올 즈음 작은 남자가 미간에 주름을 잡고는 말한다.


" 엄마! 다리에 피나!! 안 아파?"


웅덩이에도 돌은 있었나 보다. 무릎이 깨지다니. 이게 얼마 만에 철퍼덕이냐!

그런데 그 쓰라림도 추억 같고, 아이가 된 것 같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면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하지!


리조트에 돌아와 씻고, 소독하고, 약 바르고, 처치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안 하던 짓해서 다치고 아프지만 덕분에 얼마나 많이 웃었던가! 그리고 걱정 어리게 도와주던 현지분들도 계속 생각났다. 인간 대 인간으로의 따스함 같은 거. 여기 머무는 동안 이곳 분들이 조금 더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 같다.


어쩌면 난 그동안 예상되는 아픔을 늘 미리 피해 다니느라 인생에서 누려볼 새롭고 신나는 즐거움을 놓친 게 많았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고민하며 안정적으로 살아오려 애쓰긴 했지만 그러나 보니 젊음 시절에 히스토리가 없다. 유년기의 히스토리를 떠 올리면 지금의 내가 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는데,  20,30을 지나오면서 뭔가 딱히 나를 만든 것에 대한 히스토리가 너무 가난하다. 그렇게 난 어제와 같은 오늘의 이야기만 만들며 살아왔나 보다. 정말 재미없는 인생이다!


무르팍에 상처는 곧 아물 테고, 우리 가족은 아마 오늘을 잊지 못하겠지?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날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가 이 날도 같이 떠올리면 너무 웃길 것 같다. 다치고 난 뒤 사진이라도 찍어 달라고 할걸. 안 하던 짓을 하면서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 저장!


이전 12화 길리 트라왕안을 아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