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원 Apr 02. 2024

Agroforestry Tour

Agroforestry Tour #09

[유기농법으로 자라서 숙박객에게 제공되는 열매들]

이제 여기 우붓에서의 긴 일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우리 가족과 잘 맞는 좋은 숙소를 만난 덕분에 충분히 휴식하고 즐기며 편안히 머물 수 있었다. 직원들은 어쩜 이렇게 다들 친절하신지, 리조트 여기저기를 누비며 다니면서 눈 찌푸릴 일이 없었다. 너무나 지친 몸과 마음으로 도착했던 곳인데, 2주가량 여기서 쉬고 나니 뭘 더 고민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렸다. 이렇게만 지내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뭐든 시작할 생각이 들 것도 같은 시간이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이곳을 좋아하고 충분히 즐기고 있어서 그저 너무 잘한 일이란 생각만 든다.


그 사이 우붓 시내에도 몇 번 외출을 다녀오면서 필요한 먹거리, 놀거리도 경험하고 모든 생활이 익숙해져 가는 무렵이다. 이 익숙함을 뒤로하고 이제 길리 트라왕안(길리T)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 일정에 앞서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뭘 더 하고 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Agroforestry Tour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신청했다. 물론 숲과 정원을 헤매고 다닐 뻔한 일이라 큰 남자/작은 남자는 불만이 가득하다. 관심 없는 식물들을 보려고 모기와 개미와 햇살과 더위를 이겨내며 돌아다녀야 하다니! 그들에게는 마른하늘 날벼락같은 일이 틀림없다. 나 역시도 그 마음을 잘 알지만 사정사정해서 가족 모두 함께 투어에 나섰다.


Agroforestry는 혼합 농/임업의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여기 리조트 내에 자체적으로 허브, 채소, 화훼 식물과 대나무, 과일나무와 같은 나무 등을 유기농법으로 생산 재배한다. 아주 프라이드 가득하게 자랑하는 모습에서 순박함과 믿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워낙 내가 식물을 좋아해서 집안 곳곳에도 온통 초록초록 식물들이 들어차 있다. 큰 남자/작은 남자는 이 식물들의 집합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육감적으로 안다. 그래서 싫지만 별말 없이 따라나서줬다.


"감사합니다."


친절한 투어 가이드를 만나서 정원 곳곳을 돌며 식물들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시큰둥하더니 투어 중간중간 과일들 따보고 맛보기를 하면서 관심도가 급상승했다. 그래, 그렇지! 보는 것보다 만지는 거, 먹는 것이 더 큰 교육이지. 여러 종류의 베리류도 맛보고 모양은 다르지만 한국 오이맛 나는 채소도 맛보고, 너무나 잘 아는 파인애플도 바로 따서 먹어보는 체험이라니. 기대 이상으로 알찼다. 커다란 나무들에 두리안과 망고스틴, 오렌지, 그리고 이름 어려움 과일들이 매달려 있어서 정원은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이 저렇게 나무에 바짝 붙어서 익어가는지도 처음 알았다. 이 모든 새로운 경험에 내가 정신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이 그들은 한계에 부딪친 듯하다. 그 무렵 아이는 모기도 몇 방 물리고 시큰둥해져 있어서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가 좋다고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는 건데 같이 좋아해 달라고 때를 쓴 것이 괜한 짓 같아서 마음이 심란해졌다. 상황이 이러니 기분 좋던 이 투어도 그저 '좋아 좋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라는 사람은 원래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조르거나 때를 쓰거나 고집 피우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부모님, 형제, 친구 주변 기분이나 상황을 보고 알아서 포기하던 쪽에 가깝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타인이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에 맞춰 배려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늘 마음 한편에 응어리가 남았던 모양이다.


 포기란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게 된 아주 어릴 때 처음 기억이다. 때는 내가 5~7세 사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재래시장 어느 한 곳이었다. 내가 뭔가를 가리키며 사달라고 엄마를 쳐다봤는데 엄마는 아무 말 않고서 나랑 잡고 있던 손을 힘을 주어 꽉 잡으셨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비슷한 상황에서 엄마는 손을 꽉 잡았더랬다. 그렇게 난 훈련받은 동물 마냥 조르거나 매달리면 손을 꽉 잡히게 되는구나! 손을 꽉 잡히면 안 된다는 말이구나! 를 학습했던 것 같다.   


이거 나에게는 엄청 슬픈 이야기인데, 이렇게 글로 몇 줄에 담기니 뭔가 슬픔이 축약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또한 여러 기억 중 단편적인 한 사례를 든 부분이긴 한데, 이러한 방식의 교감이 나를 참 슬프고 외롭게 했던 것 같다. 워낙 감성적인 아이였는데 그것을 모르셨나 보다. 이성적인 부모와의 교감은 항상 모자란 사랑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좋은 사람들과 손을 잡고 걷다가 무심코 꽉 잡힐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트리거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아무 생각도 않고 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학습된 감정. 이렇게 튀어나오는 화는 늘 그랬듯 표출하지 못하고 이내 주눅이 들고 만다.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한 걸까?라는 생각으로 내 행동을 되새김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손을 잡을 때면 온전히 포개어 잡지 못하고 상대방의 새끼손가락이나 4,5번째 손가락을 움켜쥐는 버릇도 생긴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거절당하는 것에 두려워하고, 상대방에게 과하게 배려하고, 자꾸만 나라는 사람을 숨기려 했던 이유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혔다. 조금 더 완벽하게 조금 더 빠르게 뭐든 해 내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나를 너무나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세상에게 두드려 맞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방어기작처럼 나 자신을 뾰족뾰족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긴장한 채로 날이 서서 세상의 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적 필터링해 왔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남들도 나 스스로도.


그런 나에게 누군가는 자기애가 너무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직접 들은 자리에서 나는 합죽이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나를 지켜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런 답도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렸을 테니까. 아무도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더 날을 세워야 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자기애에 빠져 곁에 있는 사람을 보듬어 안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것 같다.


아무도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고, 나 자신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믿을 때니까. 그리고 내가 안으면 상대방이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많을 때였으니까. 그렇다고 그때의 나를 탓하거나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그때는 그게 삶을 이어가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믿는다. 나를 제대로 부여잡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있었던 거니까.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많은 상황들이 바뀔 때쯤 한 남자가 참 부지런히 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무관심은 관심으로 바뀌고 관심은 유통기한이 언제일지 지켜봄으로 바뀌었다. 나의 잦은 변덕스러움과 날 선 공격에도 사랑하기에 부지런함을 보여주던 그 남자는 어느 따스한 봄 나와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 동안 너무나 충만한 사랑을 변함없이 쏟아부어 주던 남편 덕분에 나는 꽤 말랑말랑 해 진 것 같다. 이제는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는 말들이 바뀌었다.


" 다른 사람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 본 적 있어요?".

 

그제야 느꼈다. 내가 정말 변했구나!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하고자 하는 것에 늘 오케이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 몸이 학습된 탓인지, 남편에게는 그렇게 고집을 피운다. 해줄 줄 아는 거지. 심보가 못됐다. 그래도 무한한 믿음 때문에 나의 응어리는 점점 작게 구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그렇게 무작정 고집 피우는 엄마가 되는 건 나도 싫은 일이다. 오늘 아이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는 것을 안다. 그 고맙고 예쁜 마음을 칭찬하고 표현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자신만의 응어리를 안 만든다.


" 아가! 오늘 엄마 따라서 여기 와줘서 너무 고마워! 덕분에 엄마는 엄청 힐링이 되었어! 이제는 네가 좋아하는 거 해보자! 우리 뭐 할까?"


아이는 금세 밝아져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 엄마! 나 낚시하고 싶어요!"


리조트 내 낚시 체험 못으로 향한다.  막힌 연못에 물고기를 풀어 두고 낚시 체험하는 곳으로 이미 여러 나라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미 낚임을 여러 번 경험했을 물고기들은 여간해서는 잡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도록 어느 곳에서도 입질조차 소식이 없었던 분위기다. 아이들도 지쳐서 턱을 괴고 있고, 슬슬 흥미를 잃어가는 눈빛이 보인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기서 한 마리도 못 잡으면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해야 할 텐데......)

[요즘 아이들의 사진 포즈_설명 ver.]

작은 남자는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는 이내 낚싯대를 드리운다. 입질이 보여서 아빠 엄마는 "기다려"를 외치는 사이 아이는 낚싯대를 냅다 들어 올린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꽤 커다란 물고기가 달려 올라온다. 거기 있던 모두가 놀라서 감탄사를 외치다가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는 처음에는 부끄러운 듯 뒤에 숨더니 이내 또 미끼를 달아달라고 낚싯대를 내민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게 넣자마자 고기를 또 잡아 올린다. 그렇게 연속으로 잡아 올린 물고기가 5마리가 되었다.


그곳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몰려 옮겨왔다. 아이는 모든 게 충분해졌기에(물고기, 만족감, 성취감, 자존감) 쿨하게 이만 가자고 한다. 큰 물고기들은 다시 놓아주고 작은 물고기는 옆에서 키우고 있는 수달의 먹이로 던져 줬다. 수달이 먹이 먹는 모습이 귀여운지 한참을 살펴보더니 돌아온다. 자기가 잡은 물고기가 누군가의 식사가 되는 것을 보고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행히 연계 체험은 우리 모두에게 여러 이유로 너무 만족스러웠다.


저만치 통통 튀며 튀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는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한 하루가 아니라 엄마가 좋아하는 거, 자기가 좋아하는 거 모두를 다 해본 날로 기억하게 되었다. 큰 남자의 손을 바닥 깊숙이 마주 잡고 아이에게로 빠른 걸음을 옮긴다.


오늘 경험한  Agroforesty(혼농임업)처럼  우리의 하루는 생태적 다양성(아빠, 엄마, 아이), 시너지 효과(우리가 행복하면 아빠도 행복 곧 가족 모두가 행복), 지속가능성(행복한 경험 축적에 따른 바른 성장 도모), 외부 영향 탄력성(자아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면서 외부 충격에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확보한 아주 적절한 혼합 체험이었다.


아빠는 뭐가 즐겁냐고? 엄마와 아이가 즐거우면 맥주 한 병 더! 를 외쳐 줄 것이기에!





 

이전 10화 내가 그린 그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