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 트라왕안을 아세요? #10
마냥 쉬겠다고 온 여행에서 숙소를 옮기고, 더군다나 배까지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럼에도 찾고 싶은 게 있다'
지금 이대로 머무르면 편하겠지만, 예상하지 못한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면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다 꺼내어 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풍경이든, 냄새든, 소리든 나를 툭 치고 가줄 뭔가를 만나야 내 안에 남아있는 감정들을 다 토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극의 목마름이 스며들었다.
이런 나를 사실 여행 시작 전 예상은 했다. 가만히 늘어뜨리고 있을 성격이 못된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여행일정 가운데 모험을 삽입시켜 두었다. 사실 이 일정에 대해서는 엄청난 고민이 필요했다.
그 고민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 나는 물이 무섭다.
- 나는 높은 곳이 무섭다.
- 나는 자전거를 잘 못 탄다.
- 나는 멀미란 멀미는 다한다(비행기, 차, 배)
- 나는 바다에서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른다
- 나는 예측불가한 상황에 놓이는 게 너무나 싫다(특히 아이와 관련된)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상기의 모든 걱정을 다 안고 가야 한다. 그럼에도 갈 거냐고?
'진짜 이번에 아니면 나는 이런 무모한 결정을 해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
나의 여행 자체도 평소의 나라면 엄두를 못 내었을 행동 아닌가. 무엇인가 나를 달래고, 어루만지고, 보살펴서 살아갈 힘들을 다시 찾고 싶어 온 여행인 만큼 여러 방법으로 노력해보고 싶었다. 결정을 하고서도 이곳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했었다. 그래도 도통 와닿는 게 없다. 나에게 너무 생경했던 이야기들뿐이라 머릿속에 그려지지가 않던 그곳.
Gili Trawangan!
인도네시아 발리 롬복에 속한 작은 섬으로 많은 유러피안 관광객들이 휴가지로 사랑하는 섬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섬 속에 또 섬이란 이야기.
우붓에서 빠당바이라는 항구까지 1시간 넘게 달려서 배를 타고 2시간여 시간 동안 바다를 날아다녀야 한다.
(배가 날은 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부연 설명은 생략)
미리 멀미약을 먹었음에도 아이는 처음 겪은 조난 같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별로 먹은 것도 없음에도 토하더니 축 늘어져 도착 시간만 5분 단위로 묻는다. 미안함과 걱정으로 내 멀미는 달래볼 여력도 없다. 엄마는 그냥 애가 아프면 버티는 거다. 여행에서 아이가 아플까 봐 1순위로 걱정하고선 이렇게 배를 태워 먼 곳까지 온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간절히 바란 것 같다. 제발 나의 이 여행의 끝이 원망과 미움이 아니기를.
유난히 높았던 파도를 뚫고 배는 섬에 도착했다. 짐들이 하나둘 내려지는 동안 내리쬐는 볕에 아이도 나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이는 멀미 뒤 끝으로 어딘가 계속 앉을 곳을 찾았지만 여기서는 답이 없다. 어서 항구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길을 내어가며 앞만 보고 가는데 갑자기 아이가 내 손을 끌어당기며 바다를 가리킨다.
" 엄마! 바닷물이 포카리스웨이트 같아! 맛있겠다!"
아이 말대로 바다색이 너무 생경하다. 세상에, 신혼여행으로 갔던 몰디브보다 더 이쁜데!
둘이 넋을 놓고 바다를 보고 있으니 큰 남자가 짐을 찾아와서 우리를 재촉한다.
"여기서 빨리 떠야 해!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게 항구 밖으로 나오자마자 Cimodo라고 불리는 마차가 택시 승강장 마냥 줄지어 차례대로 대기 중이다.
이곳은 차가 없는 섬이다. 교통수단은 마차, 전기자전거, 자전거가 유일하다.(가끔 휘발유 오토바이가 보이긴 했지만 주 수단은 아닌 듯하다.) 관광객들이 짐을 가지고 호텔을 가려면 마차는 유일한 수단이다. 해안도로들은 그나마 보도블록으로 포장은 되어있지만 골목 하나만 들어가도 모두 흙, 돌 밭이다. 우리는 어서 마차 하나를 잡아 탔다. 그리고 아주 스무스하게 목적지를 설명하고 출발했다. 항구에서 조금 벗어나자 포장도로를 뒤로하고 마차는 좁은 골목으로 고삐를 틀어 들어간다.
" 아~ 재밌어. 너무 시원해! 오오~~ 오!"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 멀미로 어서 호텔에 가서 쉬게 해 줘야지라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아이는 마차를 타면서 생생하게 에너지 충전되어 있었다. 너무 다행이다고 안심하던 찰나 마차는 돌을 넘고, 구덩이로 빠졌다가 다시 달리며 미로 같은 골목을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야 주변이 조금 눈에 들어온다. 골목 안쪽에는 길리 T섬의 주민들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골목이 넓지 않고 마차 자체가 높다 보니 의도치 않게 다 들여다 보였다. 두리번거리다가 주민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괜히 남의 집 훔쳐보다 걸린 것 마냥 얼굴이 붉혀지고 시선을 급하게 돌리곤 했는데, 며칠 지난 후에는 이 상황들도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그들도 별로 우리에게 관심이 없더라는.
그렇게 10여분 달려서 우리가 처음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의 캐리어와 우리 가족을 안전하게 데려다준 말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마차비는 크게 흥정하지 않고 지불했다. 바다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리조트 2층. 코너층 방이라 두면 창문으로 다른 모습의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섬의 공기가 너무나 불편한가보다. 바다 냄새가 싫고, 짠 바닷물에는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섬에서 바다와 놀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나름의 기대는 아이가 바닷물과 친해지는 것이다. 그냥 물은 너무 좋아하면서 바닷물은 짜고 맵다며 도통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이곳에 온 여러 이유 중 이것도 내가 해결하고픈 일중 하나다. 일단 천천히 해보자.
점심이 훌쩍 넘은 시간이라 밥 먹을 곳을 찾으러 밖에 나왔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모자와 선글라스로 중무장해도 눈부시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바닷가로 내려가 발을 담근다. 좋은 시작이다. 저렇게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닷물이 유혹하는데 안 갈 수 있겠냐고!
카메라로 찍는 장면들이 모두 그림같이 아름답다. 어지간한 국가 간 이동거리의 시간이 걸려서 험난하게 도착한 곳이지만 그래서인지 뭔가 더 꿈같고 비현실적이고 아름답다. 이제 정말 나의 현실들과 차단되어 이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내 안에서 꾹꾹 눌러둔 나의 엉뚱함이 튀어나오려고 애를 쓴다. 여기서는 무엇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길리트라왕안은 내가 나이지 않아도 괜찮다 말해주는 섬이다. 그 다정한 격려로 나는 나답지 않게 이곳을 종횡무진해 볼 생각이다. 나 말리지 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