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의 휴대폰이 사라졌다.
” 잠깐만 전화기 좀 빌려 줄랍니까? “
김여사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무턱대고 휴대폰을 빌려달라며 매달리는 중이다. 늦은 오후 부슬거리는 봄비가 내리고 있고 미처 우산도 못 챙겨 나와서 머리 위 앉은 비가 꼭 흰머리 마냥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에서 차림새도 의심스러운 노인이 무턱대고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다가오면 뒷걸음은 자연스러운 반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와중에 몇몇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본다.
김여사는 받아 든 전화기로 어딘가 전화를 걸고서는 주변을 살핀다. 풀숲도 뒤져보고 걸어온 길도 살펴보며 남의 전화기를 들고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많이 불안해 보이는데 전화를 빌려준 사람도 다른 마음으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몇 번의 연결을 시도하다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전화기를 건넨다.
" 감사합니데이. 휴대폰이 없어지가 찾으러 다닌다아입니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예. 아이고 우짜노."
그렇게 말을 남기고 잰 걸음으로 또 왔던 길을 따라서 돌아간다.
" 당신 전화기 계속 울리는데?"
식탁 위에서 진동을 울리는 내 전화를 보고는 남편이 말을 건넨다.
" 누군데?"
" 모르는 번호야!"
주말에 모르는 번호면 굳이 받을 필요가 없다 싶어서 그냥 두라곤 하고서 밀린 집안일에 정신 없다.
남편은 다시 내 휴대폰을 가지고 오면서
" 급한 일인가 봐, 전화가 계속 울려. 받아봐!"
모르는 번호 받는 일이 내키지는 않지만,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목소리에 잔뜩 날을 세워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아이고. 와이리 전화를 안받노! 내다. 클났다. 내 전화를 이라뿠다. 일단은 내가 찾아 댕기고 있는데, 연락 안 되면 걱정할까 봐 경비 아저씨 전화 빌려서 전화 한기데이. 그리 알고 있어라!"
늘 그렇듯, 상대방 말할 틈도 없이 하실 말만 쏟아내고 끊으시려는 참이다.
" 엄마!! 잠시만!! 조금만 진정해 보고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해보세요."
" 내사마 정신이 있겠나. 아이고, 우짜노. 임서방이 사준 지 얼마 안 되는 휴대폰인데. 우짜노. 이게 어디로 갔을라나!"
" 우리가 여기서 휴대폰 위치 추적 되는지 좀 알아볼게요."
" 뭐라고? 서울서 내가 있는 여기 휴대폰 위치도 추적 된다고!!! 진짜가! 아이고 용하네!"
방법이 뭐라도 생겼다는 말에 김여사의 목소리가 조금은 안심 모드로 돌아섰다.
" 확신할 수는 없고, 우리가 엄마 휴대폰 사드리면서 필요한 가입 해드렸잖아요. 그리고 그때 아이디랑 비밀번호 만들어둔 거 그게 필요한데. "
" 알았다. 그거 내가 집에 어떠가 적어놨다. 내가 집에 가서 찍어가 보내주끄마."
사진 한 장이 왔다. 그리고 연달아 전화가 울렸다.
" 이거 경비 아저씨 폰인데, 일단 급한 일 처리할 때까지 쓰란다. 아이고 고마워라. 사진 봤재. 그럼 내 폰은 어딨다노! "
" 그게 뭐 바로 확인이 되는 게 아니고, 임서방이 알려준 정보로 확인해 본데. 그러고 돌아다니지 말고 우선 집에 가서 계세요. "
" 아이다. 내사 마 이래 가지고 집에 가도 있을 수가 없다. 내 다닌 길들 좀 댕겨보고 있을란다."
" 전화할게요!"
남편은 그 사이 노트북을 가져와서는 여기저기 사이트를 열고 있다.
" 어떻게 해! 위치 찾아져?"
" 일단 어머니폰 분실 신고를 해야겠다. 다른 사람이 습득해서 사용할 수 없게 발신은 정지시키고, 수신만 살려 놓을게. 있어봐.!"
해당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분실 신고는 바로 할 수 있어서 우선 1단계로 발신 차단만 시켜놨다. 휴대폰을 정말 잃어버렸다고 해도 2차 피해는 막아야 하니까. 그리고 2단계로는 분실폰 위치 찾기 서비스 통해 엄마의 폰위치를 추적해 본다.
다행히 폰의 전원은 꺼져있지 않은데 폰의 위치가 좀 이상하다.
경비 아저씨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저씨께서 받으신다. 죄송한 마음을 여러 번 전하며 어머니와 연락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곧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식보다 경비 아저씨가 제일 도움이 되는구나. )
" 찾았나!!! 못 찾았나!!"
목소리에서도 여전히 긴장감이 묻어난다. 이대로면 어르신 한분 몸져누울 상황이다.
" 엄마! 위치 추적이 되었는데, 좀 이상해. 엄마 오늘 텃밭에 다녀오셨어요? 그리고 다른 분 집에 가셨어요?"
" 오전에 내가 밭에 갔다 왔고, 그리고는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내가 밥 묵을라고 찌개를 올리고, 전화 할 때가 생각나서 폰을 찾아보니까 없는기라. 아이고 클났다 싶었지. 그때부터 내가 이리 정신없이 찾고 있는 거 아이가!"
" 그럼 잃어버린 게 오늘은 맞아요?
" 맞다!. 내가 일할 때 떨어질까 봐 웃옷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항상 잠근다. 오늘도 내가 기억이 난다카이."
" 그럼 여기 최근 휴대폰 이동경로가 나오는데, 집이랑 밭 이외에 경로가 있어. 그리고 최종 위치 잡힌 곳도 엄마집 202동이 아니고 210동 앞으로 나오는데. 엄마그쪽으로 가셨어요?“
" 210동이라고? 잠깐 있어봐라. 그쪽으로는 안 갔는데…… "
" 210동 앞이 도서관이고, 탁구장 있고 그러네. "
" 도서관?!! 아이고 그럼 맞네. 맞네. 그 할매네!!!"
김여사는 종전과 다른 목소리톤으로 비장하게 말한다.
" 누구? 무슨 할매!!"
" 엄마 밭 옆에서 또 농사 짓는다는 할매 이야기 안 하더나. 치매인지, 머리가 좀 이상하다는 할매."
" 응. 기억나. 그 할매가 왜!"
" 내가 아까 휴대폰 없어진 거 알고 온 동네를 돌다가 우리 집 앞에서 그 할매를 만났다 아이가. 우짠 일로 우리 동 앞까지 와서 앉아 있길래 뭔 일인가 하고 생각은 했는데 나를 보고 아무 말은 안 하더라고. 내가 찾다 찾다가 밭에 그 할매가 있었던게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그 할매 집에 가가 물어봤지!. 할매가 들어오란 말도 않고는 문만 빼꼼 열고는 뭔 일이고 하더라. 그래서 내 휴대폰 밭에서 못 봤냐고 하니까, 미친년 니 휴대폰을 왜 요 와서 찾냐고 화를 내더라. 못 봤다카더라. 그래서 그런가 하고 나왔는데, 그게 거기 있다고?"
" 거긴 줄 모르겠는데, 그 할머니 집이 210동이야? "
" 210동 옆에 213동!"
" 잠깐 지도 볼게, 아. 이게 정확한 위치라기보다는 그 건물 근방이 될 것 같다고 하네. 그럼 213동 일수도 있겠다. "
" 아이고 이 할매! 우짜뿔꼬! 내 당장 찾아가서 따져야겠다!"
" 엄마!! 엄마!! 흥분하지 말고. 아직은 짐작이니까, 가서 따진다고 모른다고 하면 찾을 길이 없어. 그러니까 진정 좀 해. "
" 그럼 우짜노!"
" 다행히 폰이 안 꺼졌다고 하는데 엄마 전화기 벨소리 뭘로 해두셨어요? 진동이야?"
" 아니! 소리로 되어 있지! 그 뭐냐 임영웅이 노래 (이 와중에 그 노래 흥얼거림은 뭡니까!) 있잖아!"
" 제가 어찌 압니까. 뭐, 노랫소리로 되어 있다는 거죠? 그럼 경비 아저씨에게 부탁 한번 더해서 전화기 빌려가세요. 그리고 할머니집 가서 경비 아저씨폰으로 엄마 번호 눌러봐. 혹시 전화가 울리나."
" 그래. 알았다. 내 갔다 오끄마."
여사님은 전화를 끊고 비장하게 213동으로 나섰다.
'띵똥. 띵똥'
할매가 문을 열고 나와서 김여사랑 눈이 마주친다.
" 할매요. 내가 아직 폰을 못 찾았으예. 내 폰 못 봤습니까!"
" 아이고. 니가 미친나! 내가 못 봤다 안카드나. "
" 할매. 그 폰이 우리 사위가 비싸게 주고 사준기라예. 나 그거 이자뿌면 안됩니다. 내가 경찰에도 신고 했으예. 이리 안 찾아지는 거면 누가 훔쳐간 거라고 예."
" 경찰? "
" 할매. 나 물 한잔만 주이소. 온종일 찾으러 다닌다고 힘이 하나도 없네예. "
" 그래. 있어봐라."
" 잠깐 들어갑니다예."
김여사는 집에 들어서자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건다.
바로 그때,
익숙한 벨소리가 울린다. 벨소리는 어딘가에 쌓여있는지 소리가 둔탁했지만 벨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김여사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고, 그곳은 할매의 베란다 세탁기 위였다. 물건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하나씩 들어내니, 그 아래 작은 상자가 있었고 그곳에서 벨소리는 계속 울렸다. 김여사는 심장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박스를 여니,
' 찾았다!'
" 할매요!! 이거 내 전화기 아닙니까!! 내 전화기가 왜 여기 있으예!!"
" 니 전화기 아이다!!!"
" 아이고 할매. 거짓말 할 걸 하이소. 지금 내가 전화 걸고 있는데 무슨 소리 합니까. 열어 보까예. 안에 우리 애들 사진도 있는데"
" 아이고. 그기 와 거기 있노. 난 모른다."
" 할매가 아니면 누가 압니까. 내가 전화기 봤냐고 물어봤을 때 못 봤담서예. 근데 왜 여기 와 있냐고예!"
" 나는 모른다. 니끼면 가가던지 맘대로 해라!"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매를 붙잡고 실랑이해 봤자 더 나올 게 없다 싶어 전화기만 챙겨 들고 나오는 김여사!
" 엄마 번호네!! 여보세요! 엄마 ! 찾았어?"
" 그 할매가 가지고 있더라. 아이고 세상에. 그걸 숨겨놓고서 아이고 세상에"
" 그래서 그냥 전화기만 가져 나오고 끝이야? 그 할머니 도둑질이야!! 그리고 1,2만 원 하는 물건도 아니고, 요즘 휴대폰 가격이면 웬만한 가전제품 가격인데, 엄마 그거 도둑맞고 찾은 거야. 근데 그게 끝이야? 그러고 그냥 나왔어? "
" 나도 속상하지. 근데 정신 온전치 못한 할매한테 뭐라 그라노. 내가 물 하나 사려고 마트에 가서 휘청하니까 마트 아줌마가 뭔 일이냐 해서 이래저래 그렇다 설명하니, 아줌마도 그 할매 이상하다는 거 온 동네가 다 안단다. 그런 할매를 신고를 해가 뭐 하겠노."
" 그건 그 할머니 사정이지. 잘못하신 거잖아. 나는 이 일도 문제지만 그 할머니가 정신 이상하시다면 그게 더 걱정인데. 혹여나 밭에서나 밖에서 엄마에게 해코지하면 어떻게 해!. 엄마와 할머니 간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아야 나중 빨리 해결도 되지 않겠어?"
" 아이고. 십년감수했네. 내가 경찰에 신고도 했다고 했으니까, 그 할매 아무리 정신없어도 좀 놀랬을끼다. 전화기는 찾았으니까. 그냥 이래 넘기자. 너네가 고생이 많았다. "
" 나는 엄마랑 생각이 다르지만 우선 알겠어요. 하루종이 마음 졸이고 돌아다니느라 힘드셨겠네.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아! 그리고 경비 아저씨께는 음료 박스라도 사서 꼭 전해 드리세요. 제일 고맙네"
" 그래, 그래야겠다. 너네도 쉬어라"
집에 돌아온 김여사는 생각이 많다.
그 할매는 나이도 많이 잡수시고, 자식도 왕래가 없고, 정신도 오락가락해서 밭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밭에 물 주는 일도 도와주고, 아플 때 병원도 모시고 가주고, 기운 없다 할 때 콩죽도 쑤어 줬더랬다. 철철 밭에 나는 것들도 나눠주고, 노인네 혼자 계시다 뭔 일 있을까 싶어 연락이 한참 안 닿으면 가끔 일부러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랬던 할매가 아무리 정신이 없고,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 해도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좋은 마음의 배려가 이렇게 되돌아오니, 애들에게도 면이 안 선다. 요즘 세상 무섭다고 무작정 두루 잘해주는 게 좋은 일 하는 게 아니라고 딸내미는 매일 잔소리다. 아무리 착한 사위라고 하더라도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정신없이 잃어버리고 다닌다 하면 기분이 안 좋을 텐데. 애들 쉬는데 괜한 신경 쓰게 한건 아닌지.
나이 들고, 혼자 사는 부모는 자식에게 늘 짐이 아닌가 하고 슬퍼지는 밤이다.
딸은 엄마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도 왜 그렇게 살갑게 말을 전하지 못하는지. 떨어져 있으면 못 봐서 다 걱정이고, 한동안 같이 지내면 또 눈에 보이는 것들로 티격태격. 물론 하하 호호 수다 떨며 언제 그랬냐는 듯 모녀 모드로 전환하지만, 서로의 마음에 새긴 생채기는 없어지는 게 아니고 덮어 놓고만 살아가는 것 같다.
상황 말고 엄마 마음만 다독여주면 될 일이었을걸. 알지만 항상 이렇게 잘못했다고 다그치게 된다. 전화 끊고 나면 늘 그렇게 후회하면서도 매번 관계적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는 오늘 휴대폰 하나 잃어버렸다가 찾았을 뿐인데, 가해자는 한 명인데 피해자가 여럿이다. 사고당한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지 말자고 뉴스를 보면 외치던 나인데. 내가 많이 모자라고 별로라고 생각이 든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