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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un 10. 2022

공감의 시간


『공부머리 독서법』(책그루, 2018) 저자 최승필 작가는 현재의 입시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지식' 아니라 '정보 전달' 강조하는  있으며, 이를 위해 스스로 정보를 습득할 역량을 키울  있는 진정한 의미의 지식으로 교육의 목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지식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읽기 능력'이며 이를 심화할  있는 방법이 책에서 소개하는 공부머리 독서법이라고 주장한다.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독서교육의 모든 '이라는 책의 부제처럼 본래의 책의 목적은 독자들의 자녀를 위한 독서 교육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효과적인 독서법을 고민하면서 읽게 되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성과를 얻을  있었으며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질 정도로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속독과 관련된 저자의 결론이기도  위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한때 '속독' 들불처럼 번지고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속독을 마치 개인의 천재성을 인증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기사도 많이 접할  있었다. 당시 속독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소년 급제(少年及第) 신화에 열광하는 대중들에게 숨도 쉬지 않고 책장을 휙휙 넘기며 집중하는 어린 학생의 모습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읽는 능력은 한국인 특유의 성향에도 부합하며 훌륭하고 놀라운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거부감 없이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행동도 능력(?) 모두 느린 필자에게도 속독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속독의 방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생겼는가 하면 실제로 주변 사람 중에 그러한 학원에 다닌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행이 그러하듯 속독에 대한 찬양은 '그땐 그랬지' 추억처럼 저물었다. 오히려 속독의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면서 많은 독서 전문가들의 비판 대상으로 떠올랐다. 책을 하루에   이상 읽는 능력자와 하루에 100페이지 정도밖에  읽는 평범한 사람의 차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한다는 것을 전제로 많이 읽는 사람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인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최승필 작가의 주장처럼 우리는 '정보 전달' 최우선인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정보 전달에서 멈추는 독서는 깊이 있는 독서에 비해  한계가 얕을 수밖에 없다.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독서를 통한 공감, 사유, 통찰이다.


조지 오웰의 1984』를 통해 전체주의를 견디는 개인의 비참함을 공감하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통해 시대의 압박을 이겨내려는 저자의 처절한 고뇌를 같이 사유하며,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보며 현실보다 소중한 우리의 미래에 대해 통찰하는 것이 표면적인 인식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는 등산과 비슷한 점이 많다. 어느 산을 오를지 고민하는 즐거운 순간을 여행에 포함하는 것처럼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순간 이미 독서는 시작된다. 산에서 내려가며 정상의 경이로움을 음미하는 것처럼 어제 읽었던 문장의 수려함을 떠올리며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는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산을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니다. 여러  같은 산을 걸으며  안에 있던 나무, , 계곡, 바람을 느껴야 제대로  등산인 것처럼 책도 이리저리 다르게 읽어야만 저자 저술의 의도에 가깝게 다가갈  있다.


독서를 하는  있어서 정보를 아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속독은 분명히 유용한 방법이자 훌륭한 도구이다. 하지만 독서의 목적은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함이지 많이 알기 위함이 아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공감, 가치판단을 위한 사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통찰이다.


이러한 것들은 빠르게 읽는 능력만으로 절대로   없다.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유배지에서 『맹자』를 읽을  하루에 한쪽 이상을 절대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빠른 것을 숭배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혹시 필자처럼 많이 읽고 빨리 읽는 것을 자랑처럼 여기는 편견에 휩싸여있었다면 천천히 읽는 것의 즐거움, 느리지만 제대로 읽는 것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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