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질하지만 꽤나 치열한 일상으로의 초대

프롤로그

by COSMO

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제 인생의 다음 장은 우아한 독립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13년간 엔지니어로 치열하게 굴렀으니, 이제는 알람 없이 일어나 아침 햇살을 맞으며 영감을 길어 올리는 고상한 전업 작가가 되겠노라 다짐했죠. 내 인생에 더 이상 지옥철은 없을 것이라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독립영화는커녕 매일이 우당탕탕 시트콤에 가깝더군요. 완벽한 백수를 선언한 지 단 이틀 만에 넷플릭스를 보며 글감을 찾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남들 다 하는 미라클 모닝을 따라 하려다 요가 매트 위에서 세 시간 반을 기절해 있기도 했죠. 아, 내 인생에 갓생은 글렀구나. 늘어난 목티를 입고 식은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며 쓰라린 패배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 지질하고 헐렁한 일상을 두서없이 끄적여 올렸더니, 세상에 저 같은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쉬면서도 쉬지 못하는 활자 강박증 환자들, 남의 시계에 억지로 나를 맞추려다 가랑이가 찢어진 랜선 동지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처음엔 그저 일기장처럼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불현듯 제 안의 엔지니어 짬바가 발동했습니다. 어라? 이거 시리즈로 각 잡고 연재하면 꽤 훌륭한 방구석 생존기가 되겠는데?


그래서 정식으로 판을 벌립니다. <오늘도 출근하지 않았습니다>는 거창한 삶의 철학이나 성공 비법, 퇴사 후 월천만 원 벌기 같은 판타지를 논하는 에세이가 아닙니다. 출근 지옥에서는 벗어났지만 방구석에서 마감 요정과 멱살잡이를 하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프리랜서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글이 안 써진다며 30만 원짜리 기계식 키보드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합리화하는 얄팍한 물욕, 조회수 1에 울고 웃으며 알고리즘의 간택을 바라는 초조함까지 모두 털어놓으려고 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침 9시에 눈곱을 달고 일어나도 하루치 글을 써내며 살아가는 저만의 작동 방식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싶거든요.


앞으로의 거창한 포부나 계획을 물으신다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이 지독한 게으름과 헐렁함 속에서도 굶어 죽지 않고 매일 타자를 치며 살아남기. 그리고 기왕 살아남는 거, 저와 비슷한 궤도를 돌고 있는 여러분과 랜선으로 커피 한잔 하며 실컷 웃고 떠드는 겁니다. 그게 제 유일한 야심이죠.


회사라는 튼튼한 울타리를 제 발로 걷어차고 나온 13년 차 엑스 엔지니어가, 과연 이 야생의 방구석에서 어떻게 안 굶고 버티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출근 카드는 진작에 반납했지만, 저의 진짜 출근 로그는 이제 막 켜졌습니다.


조금 지질하지만 꽤나 치열한 저의 일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