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시계에 나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사표를 던지고 프리랜서 전업 작가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스마트폰 알람 앱을 열어 '오전 6시 30분(지옥)'이라는 항목을 미련 없이 삭제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알람을 밀어 끌 때의 그 짜릿함이란. 이제 내 인생에 지옥철은 없다, 상사의 모닝콜도 없다, 나는 오직 영감이 찾아올 때만 눈을 뜨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유의 단맛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알고리즘이 내 스마트폰에 이상한 영상들을 융단폭격하기 시작했거든요.
썸네일만 봐도 눈이 부신 이른바 '갓생' 브이로그들. 화면 속 사람들은 세상이 채 깨기도 전인 새벽 5시에 눈을 뜹니다. 심지어 알람 소리에 찌푸리지도 않고 미소를 지으며 일어납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판타지죠.) 그들은 주방으로 가 따뜻한 레몬수를 마십니다. 도대체 새벽 5시에 신선한 레몬은 어디서 구하는 걸까요?
이어 요가 매트를 깔고 우아하게 명상을 한 뒤, 잔잔한 재즈를 틀어놓고 다이어리에 오늘의 확언을 적어 내려갑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타자를 치는 그들의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영상을 홀린 듯 쳐다보던 저는 슬그머니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오전 9시 15분. 늘어난 목티를 입고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소파에 반쯤 널브러져 있는 한 마리의 오징어가 거기 있었습니다. 어제 먹다 남겨 식어빠진 아메리카노를 생명수처럼 들이켜며 배를 긁적이는 나의 아침. 방금 전까지 완벽했던 프리랜서의 아침이, 브이로그 한 편에 나태한 백수의 아침이 되었습니다. 출근을 안 했을 뿐인데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한참 뒤처진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이 명치를 때렸습니다.
안 되겠다. 나도 갓생을 살아보자. 명색이 작가인데 미라클 모닝 정도는 해줘야 일류가 아니겠는가.
그날 밤, 저는 비장하게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잠에서 깼습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비틀비틀 걸어 나갔죠. 따뜻한 레몬수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 정수기에서 미지근한 맹물을 한 컵 받아 마셨습니다. 그리고 명상을 한답시고 거실 한가운데에 요가 매트를 깔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자, 들이마시고... 내쉬고... 내면의 평화를...'
스르륵.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거실엔 이미 정오의 태양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저는 요가 매트 위에서 목이 반쯤 꺾인 채 세 시간 반을 기절해 있었습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척추관절이 비명을 질렀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기는커녕 온종일 두통과 담 결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저에게 미라클 모닝은 기적이 아니라 의료 사고였습니다.
파스 냄새를 풍기며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새벽 5시에 일어나지 못하는가. 한참을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엔지니어 시절부터 밤 10시가 넘어야 머리가 맑아지고 타자 속도가 빨라지는 완벽한 올빼미족입니다. 고요한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의 끈적하고 밀도 높은 시간이 제게는 가장 생산적인 시간입니다. 그런데 남들이 다 하니까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올빼미를 여명도 오기 전에 깨워 닭처럼 울게 만들려 했으니 부작용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본성을 거스르는 건 자기 관리가 아니라 자기 학대입니다.
저는 세상이 정해놓은 갓생의 기준표를 찢어버리기로 했습니다. 루틴의 본질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껍데기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능률을 끌어올리는 나만의 작동 방식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새벽 5시의 레몬수겠지만, 저에게는 아침 9시의 눈곱과 식은 커피인 것처럼요.
오늘도 저는 아침 9시가 훌쩍 넘어서야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며 일어났습니다.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세수도 안 한 부스스한 몰골로 모니터 앞에 주저앉아 기어코 오늘 치의 원고 마감을 끝내고야 맙니다.
남들의 시계에 나를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이 지독한 게으름과 헐렁한 일상 속에서도 굶어 죽지 않고 매일 글을 써내며 밥벌이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침 9시에 일어나는 올빼미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남은 현실이야말로, 제 인생의 진짜 미라클 아닙니까.
기존에 다른 매거진으로 발행된 에피소드입니다. <오늘도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연재 결정을 하면서 통합되었습니다. 이미 답글을 남겨주신 분들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