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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21. 2024

나의 구원자는 오직 나뿐인가?

나에게만 좋은 사람

주제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현재 진행중인 과업이기에 쉽사리 써지지 않았다. 난 여전히 스스로를 완전히 구원하지 못했고,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글쓰기를 시도하기를 반복하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어제가 마침 2주에 한번 돌아오는 상담일이라 글쓰기를 멈추고 이것에 대해 상담 선생님께 묻고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나의 구원자는 오직 나뿐인가?'하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하는데, 글이 도통 안써져요"


이야기를 거의 한시간 가까이 나누고 선생님은 상담 말미에 내게 물었다.


"아직도 다른 구원자를 찾고 있나요?"


그 질문에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아마도 그런것 같네요. 이 주제로 글을 쓰기로 한건 나의 구원자는 나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아니면 나는 나의 구원자를 찾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는 둘다 아닌 것 같아요.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어쩌면 평생 이 트라우마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빠졌어요. 그렇다고 또 구원자를 찾거나 누군가의 구원자 노릇을 하자니 이젠 그럴 생각은 단연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이제 알겠네요. 내가 왜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쓰기 힘들었는지..."




이럴때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 어떤 고난도 하느님이 주신 이유있는 고통이라 받아들이는 그들이, 그 어떤 행운도 하느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하는 그들의 수용적인 태도가 부럽다. 쉽사리 결론나지 않는 문제에 부딪힐때 나도 누군가를 향해 간절히 기도를 하고 싶다. 이럴 때는 얍삽하게 신자인척 교회나 성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싶어지고,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상상에만 그친다. 실은 나는 다른 것을 믿고 있다.


나의 구원자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이고, 신은 있고 없고를 논쟁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구원자는 자신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좋은 부모를 만났건, 그렇지 않건간에 성인기 이후의 삶은 주체적인 존재로서 자율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신에 의해서든, 부모의 의해서든 내 의지로 내가 만들어진 것도, 내 선택으로 태어난 게 아니기에 난감하다.


전혀 주제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이 아닌 나의 상태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러니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욱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로 살아가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면밀히 똑바로 인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냥 되는대로 즉흥적으로 사는 대부분이다. 자신은 계획형 인간이고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파워J라고 소리쳐봤자, 자신이 그런 파워J인지 설명하지는 못할테니까.


사실 신의 뜻이든, 부모의 사정이든  우리는  어찌저찌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다.


그렇게 누군가에 의해 무책임하게 세상에 던져지고 우리는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운명이 어디있냐, 인간의 삶은 모두가 선택이고 나의 의지로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만큼 무지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지구 생명체로, 대한민국의 나라에서, 지금의 나의 부모로, 여성으로, 이 외모와 이 재능을 갖고 태어나길 난 선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선택들로 인해 내 삶의 대부분은 이미 결정되고 시작한다. 더구나 나라고 인식하는 의식의 세계는 무의식 세계에 비해서는 보잘것 없이 적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대부분은 인식조차할 없는 무의식의 세계의 영향을 받는다.  


이미 내게 주어진 절대적 옵션들을 어찌하지 못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감사해 하는 일뿐인지도 모른다.  외계 생명체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지금도 전쟁이 나는 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나를 밥먹여주고 학교를 보내준 것에, 군대를 가지 않는 것에, 내 외모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에, 나쁘지 않은 머리를 갖고 있는 것에 절절히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써 긍정해보려면 그럴 것이다. 애써 감사해보려면 그럴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호락호락하게 퉁치는 인간이 아니다. 진심이 아닌 마음은 일단 미뤄두고 대신 나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리고 있다면 나의 저 깊은 무의식의 우물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그리고 그 우물에 뛰어들어 자맥질을 하는 중이다. 내가 찾는건 '진짜 나'다. 하지만 여전히 '본래의 나'는 보이지 않는다. 성마르게 해짚고 다녀봤자 일렁이는 흙탕물에 시야가 가려지기만 한다. 매번 건져 올리는 건 온통 손상되고, 훼손되고, 상처입은 과거의 파편들뿐이다. 저것들이 본래의 나가 아니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상처입은 과거의 파편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끈질지게 진짜 나인것처럼 홀린다.


' 난 버림 받았어'

' 난 손상되고 훼손되었어'

' 난 가치없어'

' 난 사랑받지 못해'

' 난 저주받았어'

' 난 결국 이번 생은 망한 거야'


순간 순간 절망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깊은 저 무의식에서 그 무엇으로부터도 훼손되지 않은 진정한 나, 본래의 나를 찾길 원한다. 어제도 그렇게 깊은 무의식의 우물 속을 자맥질 하던 중  하나를 건져 올렸다. 이건가? 이번에도 아니다. 어딘가 있을 나의 엄마, 나의 키다리 아저씨를 기다리던 갓난아기와 아홉살 소녀의 조각이다. 끝없이 건져올려도 여전히 구원자를 찾는 파편들뿐이다. 그 파편들을 보고 있자니 또 눈물이 흐른다.


"선생님 난 여전히 괜찮지 않군요

그리고 어쩌면요.... 평생 괜찮지 않을 수도 있구요.

난 평생 나와 이 싸움을 해야하는 군요."


"그래요...

슬픈 얘기지만..

정말 평생 괜찮지 않을 수 있어요.

어떻게 그 모든 게 괜찮을 수 있겠어요."


"아....그게 나군요. 받아들이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괜찮을 걸 기대했어요.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수용하면 괜찮아진다고. 그런데 받아들여도 괜찮지않군요. 전혀 괜찮지 않아요. 그게 나라고 받아들여도 여전히 슬프고 아픈게 나예요."


상담을 마친 후 선생님은 다음 상담 일정을 잡으시면서 다음 상담까지 내가 수행할 과제를 내주셨다.


"2주 동안은 자신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어보세요"


2주 동안 나에게만 좋은 내 자신이 되어보면 이번에는 명확하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구원자는 오직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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