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제주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12월 초, 남편과 이승이 오름에 가보기로 했다. 한라산에 첫눈이 내린 직후라 하얀 모자를 쓴 백록담이 잘 보일 것 같아 찾아간 오름이었다.
그런데 맙소사! 이승이 오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생각지도 못한 동백꽃을 만나게 되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을 배경으로 새빨갛게 피어난 동백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던 것!
마침 내가 입고 간 점퍼도 동백꽃과 같은 빨간색이었다. 동백꽃과 우연히 깔맞춤을 하게 된 나, 매우 칭찬해^^
이 날부터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동백꽃을 찾아 다녔다. 물론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동백꽃이 더 많았지만... 일부러든 우연히든, 나는 제주의 수많은 동백이를 만나는 족족 마음을 홀랑 다 뺏기고 말았다.
이제 슬슬 서귀포 여기저기에 동백꽃이 피어나겠구나! 짐작하며 지내던 어느 날, 켄싱턴 리조트에 있는 부페에 갔다가 또 동백꽃을 보게 되었다.
열대 기후를 상징하는 야자수와 겨울을 상징하는 동백꽃이 함께 있으니 뭔가 아이러니한 조합이었다. 동백꽃은 강한 햇살에 더욱 빛을 발하며 생기있게 피어 있었다.
둘째 딸 생일이었던 12월 어느 날에는 장을 보러 가다가 남편의 권유로 위미에 들르게 되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동백꽃을 보게 된 날이었다.
'동박낭'이라는 정원 카페 앞에 차를 세운 남편, 내려보니 사방 천지가 동백꽃이었다. 이 곳은 마을에서 운영 중인 카페였고, 커피 값을 지불하면 정원 구경도 가능한 동백 명소였다.
어느 날엔 집과 가까운 남원의 동백꽃밭 한 군데가 무료로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곳은 '훈식이네 동백꽃밭'이라는 가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기대없이 갔는데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제대로 잘 가꿔진 동백 정원에서 눈으로는 그림 같은 풍경을 담고, 코로는 진동하는 꽃향기를 맡으며 마음껏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뻤던 곳이라 아이들 방학 때 꼭 같이 오리라 다짐했던 곳 :)
집에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소노캄 리조트! 정원에 있는 하트 나무 포토존이 유명하기도 하고,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하늘이 예뻐서 갈 때마다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그런데 일년 내내 봤던 그 하트 모양 나무가 사실 동백 나무였다는 걸, 겨울이 된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몰라봐서 미안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루브린 라운지'는 숨겨진 동백 정원이 있는 카페이다. 뒤로는 한라산, 앞으로는 서귀포 바다, 멀리 지귀도와 섶섬까지 볼 수 있는 뷰 맛집이기도 하다.
남원에 있는 '아주르 블루'라는 카페도 동백꽃이 필 무렵에 가보면 좋은 카페이다. 카페 앞쪽 창으로 바다와 함께 동백꽃이 보이고, 옆쪽 창가 포토존에도 동백꽃이 있어 기분까지 좋아지는 곳.
12월에 가보고 너무 좋았던 훈식이네 동백꽃밭을 1월에 방학한 아이들과 재방문하게 되었다. 저번에는 귤을 무료로 먹을 수 있게 놔두셨는데 이번에는 한라봉을 놔두셨더라!
덕분에 비타민 C를 가득 충전한 채로 12월보다 더 동백꽃이 만개한 화사한 정원을 아이들과 신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동백꽃 보러 가쟸더니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아이들이 정작 도착해서는 제일 신나게 뛰어 다니고, 여기저기서 사진 찍어 달라며 먼저 포즈를 잡은 건 비밀!^^
한라산은 눈이 와도 제주 해안가 쪽은 눈이 거의 오지 않는데, 1월 어느 날엔가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아이들 학교 운동장에서 눈 놀이를 하려고 걸어 가던 중, 눈 쌓인 동백꽃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우리 집에 놀러와 있던 친구가 같이 산책하고 있어서 가족 사진을 남겨 주었다. 빨간 동백꽃과 하얀 눈의 조합은 그야말로 사랑입니다...♡
2월로 넘어가기 직전인 지금도 여전히 동백꽃은 제주 곳곳에 피어 있다.
동백꽃 덕분에 제주 겨울은 스산한 느낌이 덜해서 참 좋다. 오히려 붉디 붉은 동백꽃 색깔 덕분에 화사하고 따사로운 느낌이 가득한 제주의 겨울!
제주 일년살이가 약 3주 정도 남은 지금, 동백꽃을 볼 수 있는 제주 겨울을 더욱 열심히 눈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춥디 추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뒤에 문득 제주의 따사로운 겨울이 그리워지면, 붉은 동백 책갈피로 끼워 둔 소중한 이 장면들을 떠올리고 싶다.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제주에서의 겨울이여, 동백꽃잎이 다 떨어질 쯤에 우리 이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