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 진짜로 있어?"
"응? 그걸 왜 물어봐?"
"학교에서 애들이 산타 할아버지는 자기 부모님이라는 거야! 애들 말이 맞아?"
올 것이 왔구나! 4학년이 된 첫째가 먼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 여부를 궁금해 했다. 초등 교사로서의 경험상, 교실에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들끼리 논쟁을 벌이는 주제였다.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한다. 우리 엄마 아빠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vs.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 아빠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둘째 두돌 기념 사진 중 루돌프로 변신한 자매의 모습 :)
"언니! 근데 생각해 봐! 엄마 아빠랑 다같이 있을 때 우리 집에 산타 할아버지가 오셨던 적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 엄마 아빠는 산타가 아니지~"
"아... 그 때 분명히 그랬지! 근데 왜 그 때 이후론 산타 할아버지를 못 봤을까? 자고 일어나면 선물만 있고!"
"그리고 우리 집이 아파트 24층인데 어떻게 창문으로 들어 오셨을까? 날아 다니는 루돌프 썰매가 진짜 있을까? 그리고 이 세상에 어린이가 얼마나 많은데 그 날 밤에 전 세계를 다 돌아? 말이 안 되지 않아?"
"엄마, 아무래도 이상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산타 할아버지 진짜로 있어? 사실대로 말해주면 안돼?"
4학년인 첫째는 물론이고 2학년인 둘째도 산타 할아버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자매의 열띤 토론을 듣고 있던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한담?
"얘들아, 산타 할아버지는 자신을 믿는 어린이에게만 선물을 주시는 거야!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 마음이지~ 그리고 엄마가 말했지? 엄마는 어릴 때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은 적 한 번도 없다고!"
"와하하! 엄마 어릴 때 진짜 말 안 듣고 울보였나 보다~ 어떻게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못 받을 수가 있어?"
"근데 나... 솔직히 해마다 많이 울었는데, 그래도 항상 선물은 받았다? 그 정도 우는 건 괜찮았나봐!"
저기, 얘들아... 진짜로 산타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너희는 매년 생일 선물을 pass 당했을 거야... 왜냐하면 너희는 둘다 어릴 때부터 엄청 울고 싸우고 그랬거든! 하하^^;
"엄마, 근데 말 돌리지 말고... 사실을 말해줘!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
큰 아이는 끝까지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끝까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산타 할아버지의 진실을 알려줄 때가 된 게 아닐까?
얘들아, 정녕 진실을 알고 싶니...?
둘째가 두 돌 때 처음 설치한 벽걸이 트리! 아이들은 여기서 두 손 모아 산타 할아버지께 갖고 싶은 선물을 말했었지...
휴직하기 바로 전 해, 6학년 교실에 수업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반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 아이 한 명이 남자 아이들 여러 명에게 울먹이며 소리지르는 것을 보았다.
"우리 엄마 아빠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야!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하신 말씀이 틀릴 리가 없어! 너희가 다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와! 너 유치원생이냐? 니 엄마 아빠가 무슨 신이야?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니까!"
"선생님, 산타 할아버지 있죠? 저희 엄마 아빠가 있다고 하셨어요!"
"선생님! 우리 반에서 얘만 산타 할아버지 믿는대요~ 선생님이 진실을 알려 주세요!"
반 친구들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손가락질을 하며 비아냥 거리는데도, 여자 아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끝까지 대답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결심이 섰던 것 같다. 만약 나의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지에 관해 진지하게 물어 온다면, 나는 진실을 말해주는 편을 택하겠노라고!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그 똑똑했던 여자 아이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산타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부모님께서 중학생이 된 아이를 위해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진실을 고백하셨을까?
크리스마스 시즌에 쇼핑몰에서 마주치는 산타 할아버지는 '가짜'인 줄 잘만 알던데...
"엄마, 그것부터 먼저 말해줘! 나 일곱살 때 집에 오셨던 산타 할아버지, 진짜야 가짜야?"
"응, 그 분은 동네 과일 가게 사장님이셨어. 그것도 아주 젊고 예쁜 이모!"
"아! 그래서 우리한테는 선물을 주고 엄마한테는 한라봉 한 박스를 주고 가셨던 거구나?"
"응, 그 과일 가게에서 산타 이벤트를 한다길래 엄마가 너희들 선물 사서 미리 맡겨 뒀지! 그랬더니 크리스마스날 산타 분장하고 과일 배달 겸 오셨던 거야!"
"와... 소름! 어쩐지 뭔가 좀 수상하다고 했어!"
"그리고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산타 할아버지를 직접 못 본 것도 이상했어!"
아이들은 우리 집에 '띵동~' 초인종을 누르며 등장했던 산타 할아버지의 진위 여부가 가장 궁금했던 모양! 궁금증을 해결하자마자 사실은 수상했다는 듯 이야기를 나누던 자매들...
그런데 얘들아, 그 때 두 눈이 동그레져서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고 난리였지 않니? ㅋㅋ 한동안 산타 할아버지를 직접 봤다면서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잖아...^^;
그건 그렇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용을 하지 않게 된 과일 가게의 사장님! 그 때 아이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집으로 찾아오신 산타 할아버지를 보고 기뻐서 폴짝폴짝 뛰던 만6세, 만4세 어린이들 :)
"엄마, 그럼 우리가 풍선 갖고 싶다고 했더니 엄청 풍선 많았던 크리스마스 있잖아! 그 때는?"
"그거? 너희들 잠들자마자 엄마랑 아빠가 밤새도록 풍선 다 불어둔 거지!"
"아... 그 때 생각하니까 풍선을 하도 불어서 머리가 다 아팠던 기억이 나네!"
해마다 12월이 되면 아이들에게 카드를 쓰도록 했다. 수신인은 산타 할아버지, 내용에는 받고 싶은 선물이 잘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하면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산타 선물을 준비해야 될 사람은 바로 남편과 나였기에 아이들의 원하는 바를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2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들이 원한 것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만5세, 유치원생 둘째의 카드해석 :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전 풍선을 갖고 싶어요. 지난번에는 터졌잖아요. 이번에는 안 터뜨릴게요.
만7세 초등학교 1학년생 첫째의 카드
아이들은 둘다 풍선을 갖고 싶어 했고,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산타였기에!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열심히 풍선을 불어서 거실 바닥에 가득 깔아둔 뒤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해도 안 떴는데 일어나서는 풍선들을 보고 행복해 하던 아이들 :)
그 풍선들은 5일 뒤였던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일까지 잘 쓰였다고 한다...ㅎㅎ
아이들의 청문회는 계속 되었다.
"아빠, 작년에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 썼더니 영문으로 된 답장도 받았잖아! 그건 또 뭐야?"
"아, 그건 진짜였어! 핀란드에 산타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진짜로 편지 보내주신 거야!"
"아니...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루돌프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며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산타 할아버지란 없다는 거지! 핀란드 산타 마을에 가면 산타클로스로 근무하시는 분들은 진짜 있대!"
"와... 설마 했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없는 게 맞았구나..."
"하... 없다는 걸 알고 나니까 기분이 너무 이상해... 지금까지 믿었던 게 다 거짓말이었다니!"
아이들은 몹시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실망한 아이들을 위해 속으로만 읊조릴 뿐이었다.
'얘들아...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어! 그리고 알면 다친다는 말도 있지. 다음부터 부디 명심하길 바란다!'
작년, 마지막으로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트리를 장식하던 때!
산타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가짜가 아니란다!!
오늘은 202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언제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려나 두근두근하며 잠들기 전까지 신났을 아이들인데... 진실을 알게 해버려 조금 미안해진 날!
아이들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하기로 했다. 여전히 나와 남편은 아이들의 명예 산타이기 때문에^^
원래라면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아이들을 학교까지 찾아가 일찍 데려왔고, 멀리 서귀포 시내까지 나가서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고, 큰 마트에 들러 원하는 사탕을 잔뜩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아! 산타 할아버지가 없는 걸 알게 된 것까진 괜찮은데... 이제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 못 받아서 속상해!"
"그럴 줄 알고, 엄마 아빠가 너희 초등학생 때까지는 쭉 크리스마스 선물 챙겨줄 생각이야~ 속상해 하지마!"
"그래서? 올해 너희가 바라는 선물은 뭔데?"
"나? 나는 사탕... 헤헤헤!"
"나도 사탕! 그것도 아주 많이많이!"
그리하여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각자 원하는 사탕을 잔뜩 샀다고 한다.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여전히 산타 엄마와 산타 아빠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아이들!
"엄마, 아빠! 우리 크리스마스에는 뭐할 거야?"
"우리? 사탕도 잔뜩 샀으니, 올레길 걸으러 가야지!"
"악~ 크리스마스에도 올레길이라니!"
하하하! 우리 가족이 제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내는 크리스마스인 내일, 19번째 올레길을 완주하러 갈 거랍니다! 27개 올레길 중에 벌써 18개나 걸었어요!
아이들과 올레길을 함께 걷는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cherrybbo/51
혹시나 아이들에게 언제쯤 산타 할아버지의 진실을 알려줘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아이들이 계속 진실을 요구할 때! 그리고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조심스레 말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엄청 충격 받아 합니다만^^; 성장통처럼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니까요!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계속 거짓말로 둘러대느니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것도 방법인 듯 합니다.
마무리는... 둘째가 아장아장 막 걸음마를 하던 때, 루돌프 수면 조끼를 입고 있던 사진을 살포시 공개하며 :)
나의 루돌프, 엄마는 너의 영원한 산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