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점
성악을 배울 때였다. 복식 호흡과 두성을 처음 시작할 때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가빠지는 때가 있었다. 온 정신을 집중하고 애를 써도 잘 되지 않았고, 하다 보면 성과는 안 나고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 중간중간 선생님의 소리를 들을 때 감동이 가슴 안에서 일렁였다. 두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아~에~이~오~우~
이런 가사가 없는 발성을 하다가 두성의 소리를 만나면 이게 맞다는 이성적 판단은 안 드는데 마음의 감동이 일어나고 눈물이 흘렀다. 나는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 반응했다. 노래도 아니고 발성 연습을 하다가 나의 소리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흐른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다가 두성이 나면 종종 눈물이 흘렸다. 이때 나의 감정은 '황홀하다'였다.
내가 남편과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가는 공항 안 통창으로 노을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
편안하고 안락했던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들을 낳자마자 내 품에 안았을 때의 그 감정!
나의 행복이 극에 달했을 때 느꼈던 황홀함을 두성으로 자주 불러오게 되었다.
내가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것은
신승훈의 이별 노래를 들으며 밤새 울었던 중학생 때도 아니었고,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밤새 고군분투하던 고3 때도 아니었고,
아름답다는 말로는 한없이 부족한 노을 지는 영국 하늘을 보며 휘몰아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길거리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울었을 때였다.
이때가 20대 후반이었다. 이게 이토록 모든 것 내려놓고 차도 한복판에서(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차도였다)
'울 상황이 맞을까? 지나가는 사람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만큼 울 일인가?'
뭔가 의구심이 들었다.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데?'
나는 슬퍼서 운 게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다. 마음에 아름다움의 파도가 슬픔의 파도보다 더 강렬하게 일렁였던 첫 순간이었다.
물론 나의 감성에 이성 몇 스푼 넣어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지만 나는 나의 민감하고 풍부한 감성이 노래할 때 나의 강점임을 알아챘다.
이하이의 한숨을 연습하면서 선생님은 나에게 감정 이입을 위해 위로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노래해 보라고 했다.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편이 떠올랐고 그 후 몰입은커녕 눈물이 펑펑 쏟아져서 노래를 이어갈 수 없었다.
"선생님 저는 노래하다 자주 울어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눈물이 나면 그냥 우세요. 우는 것도 노래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어요."
노래를 하다가 나는 자주 운다. 계속 울어서 안 울기를 포기했다. 울면 안 된다고 다그치는 것이 나의 긴장을 더 활활 타오르게 했다. 그래서 보컬샘 말대로 노래하다 눈물이 나면 그냥 울지 뭐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우는 것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으려 애썼다. 그리고 혼자 노래할 때, 작은 무대에 오를 때 그냥 오지게 울었다. 울고 싶은 만큼 우니 눈물이 덜났다.
'눈물이 나면 그냥 흘려보내자'
이렇게 마음먹으니 긴장감이 확 내려갔다.
노래할 때 너무 울어서 고민인 나는, 눈물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연스럽게 천천히 그 시간들을 지나자 나의 감정과 눈물이 조금씩 컨트롤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발성이 많이 체화되지 않았고 기본기가 많이 부족해서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기 어렵지만 나는 나의 감정을 노래하며 마음껏 그리고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틈틈이 발성을 공부하고 훈련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간 무대에서 자유롭게 날 것이다. 황홀함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