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핸디캡(handicap)과의 동행
삶의 안전장치가 생긴 그 날,
아들이 4살이 되던 해인 2017년, 찬바람이 부는 10월의 끝자락,
아들의 오른쪽 4번째 손가락이 자동문에 끼여 거의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바로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후 의사 선생님은 성장판이 거의 깨져서 손가락이 완전히 자라지 않을 것이고, 손가락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4살 아들은 전신마취 후 수술대에 올랐다. 아들이 수술이 끝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1시간 30분이 그토록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수술 후 아들은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1년 동안 거의 매일 재활 치료를 이어갔다.
눈이 오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4살 아들과 버스를 타고 왕복 1시간을 오갔다.(난 안타깝게도 면허가 없다.)
하지만 아이의 손가락이 회복만 된다면 더 오랜 시간 더 힘든 치료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1년간의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긴 회복 시간을 인내하며, 생각은 점점 바뀌어 갔다.
'손가락 하나 불편한 것이 뭐 대수야?'
'그리고 손가락 한 개만 다친 게 얼마나 다행이야!'
게다가 제일 적게 사용하는 네 번째 손가락을 다쳤고, 다치자마자 구급차가 바로 왔고, 손가락이 끼어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은 꺼내느라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셨고, 수술 잘하는 의사 선생님께 수술받았고 생각할수록 감사할 것이 많았다. 생각할수록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하루였다.
아들은 다행히 경과가 좋았다. 자라는 것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손가락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꿰맨 자국은 여전히 남아있고, 다른 손가락보다 좀 더 구부정하다. 자세히 보면 다른 손가락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 손가락을 보는 것이 좋다.
그 손가락을 볼 때 감사한 것들이 더 많다.
그 연약함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참 감사하다.
흠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시작이 되며
자신이 교만하지 않는 안전장치가 된다.
이 사건은 나와 아들의 안전장치가 되었음이 감사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손가락이 문에 끼었을 때 아들이 질렀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들린다.
가끔 구급차를 보면 심장이 빠르게 뛰기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순차적으로 그날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다.
사고 후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트라우마가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을 믿는다.
나의 내면 아이도 회복되어서 굿바이 하는 날이 오겠지만, 굿바이 하기 전까지 나의 내면 아이를 좀 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측은하게
좀 더 여유롭게
허락된 시간 안에서 나의 내면 아이와 나의 관계를 편안하게 만들고 싶어 진다.
아들의 사고로 핸디캡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고,
결국 그 핸디캡이 내 삶의 선물이 되었듯이,
나의 내면 아이도 나의 삶의 선물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