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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알 Nov 26. 2021

2. 책임 전가에 관하여

너무 무거웠던 짐

결혼 후 아들 조이가 18개월 때 작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는 아들과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있었다.


둘은  잘 놀기도 했지만 자주 싸우기도 했다.

작은 공동체다 보니 둘의 갈등은 자주 목격되었고 더 두르러 지게 이슈화 되곤 했다.  


둘의 갈등에는  둘 다의 미숙함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오랜 시둘의 관계를 지켜보니 누구 한 사람에게 잘못의 무게를  더 지우기가 어려웠다.

 각자에게 부모의 내면 아이가 고스란히  대물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나를 거슬리게 했던 것은 아들 친구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아들 조이와 싸워서 속상할 때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조이 때문에'라고 말하며  울어버렸다.

매번 소리 지르며 우는 아이의 부모도 난감했고, 우리 부부도 난감했다.


아들 친구도 억울함이 많았지만,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아들을 심하게 혼내곤 했기에  아들의 억울함도 쌓여갔다.


그리고 내 안에도 억울함이 쌓여갔다.

아들 친구의 과한 반응에 나의 아들을  과도하게 윽박지르는 것으로 인해,

과한 반응을 통제 못하는 아들 친구의 부모로 인해,

때문에 라는 그 단어로 인해!


그리고 어느 날 그 억울함은  분노로 폭발하게 되었다.

아들 조이와 아들 친구에게 격한 감정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아들 친구의 부모와도 서먹하게 되었고, 우리 아이도 될 수 있으면 그 아이와 안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어린 시절,

"너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 너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가 자주 건넸던 말이다.


자주 하지도  않았던 말인 거 같은데,

 어느 부모나 많이 하는 말인 거 같은데

그 말은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말이 되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때문에'라는 말을 들으면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키우면서 '때문에'라는 말을 직접하지 않더라고 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표현을 자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이가 좀 빨리 치우고 나왔으면 버스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

"조이가 엄마가 들어오자고 할 때 들어왔으면 엄마가 좀 덜 지쳤을 텐데"

심지어 부부 싸움을 하는 중간에 떼를 쓰는 아이에게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라고 말하고 말았다.


내가 아들에게 전가한 책임은 아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조이는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갈 때

"엄마 미안 나 때문에 그렇지?"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아니야, 조이야 너 때문이 아니야. 누구 때문도 아니야. 지금 어떻게 상황을 해결할지 같이 생각해보자."

아들이 7살이  되어서야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과도하게 내 탓으로 돌리는 내면 아이가 내 안에 수십 년째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의 책임 전가에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어린 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아들 친구의 반복적인 '조이 때문에'라는 외침이 나의 내면 아이의 분노의 버튼을 누르게 되었던 것을 그 상황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우는 내면 아이를 만나고 그 내면 아이를 위로한 후

나는 아들 조이와 조이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과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비로소

부모의 내면 아이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들의 연약함을 좀 더 여유 있게 바라보고,

내면  아이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어른들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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