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5년차 초등교사입니다

다른 에세이들을 따라 써보는 이야기

by 대치동 비둘기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가 요즘 흥미롭게 보고있던 작가의 책을 찾기 위해 에세이 코너에 우뚝 멈춰서서 하이에나처럼 책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책들이 하나같이 자기를 소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다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매일 갑니다, 편의점
어쩌다, 문구점 아저씨
청년 도배사 이야기


문득 누군가는 나의 직업 이야기를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사뭇 궁금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나의 푸념을 쏟아놓을 비밀 대나무숲이 필요해 나 역시도 글을 쓰고 있다.




선배님
이 직업은 전문가가 되는게 아니라
자꾸만 초보가 되는 느낌이에요




1년에 한 번씩 주어진 업무가 바뀌고

1년에 한 번씩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가르쳐야하는 학생도, 나에게 학생을 맡긴 학부모도 바뀐다. 단 하나도 머무름없이 공간마저 완전히 바뀌어서 1년에 한 번 대청소를 하고 새로운 사무 공간을 받고 나에게 맞춰 세팅해내야하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선생님들 대다수는 사주를 보면 너도나도 가지고 있는 '살'이 있는데, 바로 '역마살'이다.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내 주위에는 대부분 재미로 본 사주에서 역마살이 하나가 아니고 심지어 여러 개라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다. 나를 포함해서.



저도
당신의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처음입니다만


선생님으로서 프로페셔널해보이고 싶고, 아는 것이 많아보이고 싶지만, 마음 한 켠에는 생소한 심리적, 물리적 상황에 처했다는 불안함을 늘 안고 살아간다.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실은 당신의 자녀를 만난지 한 달도 안되었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안은 없지만 고쳤으면 하는 것이 있다고 풀어말하기는 어려우므로 목을 가다듬고서 '어머님도 잘 아시겠지만, 어머님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이라고 화두를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연차가 쌓이며 A 그룹, B 그룹 등으로 선생님마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아이들을 마음 속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저 아이가 저렇게 역정을 내고 난 다음에 보일 기이한 행동을 어렴풋이 짐작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좀더 눈치가 생긴다면 곧 나에게 걸려올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짐작해내는 능력이 생기곤 하지만, 예상은 예상일 뿐 인생은 늘 예상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련을 건넨다.




일등 신부감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여자로서 직업 중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크게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결혼해서 육아를 병행할 수 있으면서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선배 교사님들의 사부님들이 믿는 구석이 있어 크게 사업을 벌이다 망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영끌 대출을 일으켜 주식에 투자했다가 말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심심치 않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보면 종종 그런 일들이 일어나곤 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워낙 맞벌이 가정이 많아졌고 직업도 다양해지다보니 같이 버는 것이 보편적일지라도 어쨌든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해가 뜰 때 퇴근할 수 있고, 사무적으로 집과 연계해서 일할 필요는 없는 교사직은 남편이나 대신 아이를 봐주지 않아도 되는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에게는 일등 신부감인 것은 분명하다.



선생님은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아봐서 모르잖아요


선생님들이 듣는 많은 학부모의 푸념 중 하나는 경험도 없는 주제에 가르치려든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문장들이다. 아까도 밝혔듯 귀댁의 자녀를 맡은 것은 나의 인생에도 처음 겪는 일이니 모르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감히 나의 인생의 맞고 틀림을 가치판단하듯 쏘아붙여대는 것은 정말이지 곤란하고 기분이 상한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차라리 모르기 때문에 더 잘 지도할 수 있고 밀어붙여 고쳐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보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당연히 내 인생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저 정도는 누구나 하는 것이니 그냥 두자는 현실 안주의 마인드가 생겨났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몰랐던 새내기 때는 기를 써서 가르치고 고쳐주던 많은 것들을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놓아주고 노력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사실 아이를 키우며 내 아이가 1학년은 처음이고 6학년도 처음인 그런 상황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아이의 교사를 너무 믿고 의지했는데 실망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참견하지 말라는 어투는 너무나 무례하고 상대방을 언짢게 하니 삼가해주시길 당부드린다.



어찌됐든 곧 있으면 인생의 반 이상을 교직에 몸 담은 사람이 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1월이 되면 이별이 아쉽고 또다른 만남은 기대되며 설렌다. 때로는 그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가고 싶고 그만 일하고 싶지만, 나의 동료가 그러하듯 나 역시도 푸념을 하며 3월이면 또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교문으로 들어가 새 출근길에 익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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