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의 속도는 남들보다 빠르다
지금이 너무 좋을 때라서
보통 아이들이 고학년이 올라가면서 목동, 중계동, 대치동 이사를 고민하게 된다. 실력이 좋아서일수도 있고, 부모의 큰 꿈이 있어서일수도 있고, 남들의 추천일 수도 있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중학교에 가기 전 좋은 학교,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새로운 둥지를 찾아나선다.
학창 시절을 이 곳, 대치동에서 보낸 아이 친구 엄마나 아빠들도 있지만 1년 전, 2년 전 쯤 이사왔다고 소개하는 가족들도 많다. 우리 역시도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이사온 케이스인데 초등학교에 입학 바로 직전에 이사해서 온 친구들도 많이 있다.
오히려 아이가 어릴 때 오는 것이 도움이 되는 추세인지, 대치동으로 넘어오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7세 고시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이가 커서 자기가 제일 잘하는 줄 알다가 학령기에 대치동에 오면 자신감을 잃거나 성적 때문에 충격을 받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나보다 잘난, 나보다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일찍 깨우치다보니 어릴 때부터 있는게 더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선행의 속도가 너무도 빨라져서 오히려 '현행(현재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엄청나게 느린 아이가 되는 동네. 그래서인지 오히려 내 아이의 속도를 찾는 것은 안개 속을 헤매며 벽을 더듬는 느낌이 든다. 주변이 너무도 빠르게 달려가기 때문에 그 속도를 따라가기엔 어짜피 느리니 나는 나만의 속도를 찾겠다고 마음먹고 나면 오히려 주변에 보이는 게 없어 평안해진다. 마치 태풍의 눈 속에 있는 느낌이랄까.
다들 바쁘다
대치동은 엄마들도, 아빠들도, 아이들도 몹시 바쁘다. 원래 인생은 바쁜 거라지만 정말이지 다들 바쁘게 스쳐지나가서 누군가 빨리감기 버튼을 눌러준 것만 같다. 놀이터에서도 길지 않은 시간 그 짧은 찰나동안만 친구들과 놀 수 있고 예정된 레테, 수업 시간에 맞춰 가야하다보니 가던 길을 멈춰서서 하늘을 볼 시간도 별로 없다.
그리고 그런 속도가 너무나 당연한 동네이다보니 발걸음을 멈춰서는 것도, 가만히 생각하기 위해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는 것도 사치스럽다. 학생들이 학원에서 쏟아져나오는 시간들의 모습은 흡사 테헤란로 직장인들의 퇴근시간과도 닮아있다. 누군가는 너무나 지치고, 누군가는 또다른 약속을 찾아가고, 누군가는 맛집을 찾아간다. 시험기간이 가까워지면 무언가 엄청나게 큰 시험지 보따리를 끌어안고서.
그래서 사실 나는 학교의 시험기간이 따로 없고, 평가가 무언가를 좌지우지하지 않는 지금 이 시절이 너무나 좋다.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이 바쁘게 스쳐지나가며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때로는 대견하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이 솔직히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꿈을 이룬다'는 것이 명문대 입학이나 메디컬 입학을 의미한다면 대치동은 그 꿈을 향해 꼭 필요한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뒤쳐지고, 시간낭비를 한다면 바쁜 행렬에 뒤로 더 뒤로 밀려나 꿈에 도달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게 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그래서 내 아이는 어떤 길을 가게 하고 싶은가
솔직히 대치동에 살고 있다고 하면, 이미 아이가 갈 길을 정하고 혹독히 밀어붙이는 엄마라고 단정짓고 나를 바라보겠지만 실은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는 대치동에 살기만 하잖아'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네는 나의 남편의 말이 정말이지 사실이다. 나는 아직 혹독히 밀어붙여야할 나이가 도래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많은 아이들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 가운데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생각할 시간을 허락받은 것에 감사한다.
지금 부는 찬바람처럼 현실에 제대로 눈을 뜨게 되면 나도 아이도 엄청나게 바빠지게 되겠지만.
나는 솔직히 저 정도는 바쁘고 싶지 않은 청개구리 심정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