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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pr 19.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0

D-1  짜장면의 역습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단식에 앞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점심 메뉴 고민이 많았는데, 직장동료들이 중국집에 가자길래 잘됐다 싶었다. 

왜냐하면 군 훈련소 시절이나, 해외에서 일할 때 그리웠던 음식 1순위는 항상 짜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 위치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블록에는 이름난 중국집들이 많다. 

X용문, X홍, X성각, X동, X천홍 같은 전통의 강호, 그리고 이곳에 겁도 없이 도전장을 내민 X니웨니, X이707, X유안, X일향 같은 신흥강자까지..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세종문화회관 뒤쪽은 소고기구이 집이 약한 편이다. 

거래처 손님을 모시고 가려면 주로 방이 있고 적당히 높은 가격대의 소고기구이 집이 제격인데, 그래서 세종문화회관 뒤쪽에서는 선택지가 많이 없어서 고민이다. 그래서 손님을 모실때는 대체로 방도 있고 그럴싸한 분위기의 중화요리가 낙점되는 편이다.  


오늘은 양념맛이 진하고 특히 짜샤이가 맛있는 X천홍을 선택했다. 

역류성 식도염이 악화된 뒤로 밀가루 음식, 맵고 자극적이거나 기름진 음식은 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짜장면은 블랙리스트 1순위였다. 그러나 오늘은 메뉴판도 보지 않고 삼선 간짜장을 주문했다. 사실 쟁반짜장을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쟁반짜장은 2인분 이상만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누가 같이 먹자고 하지 않는 이상 먼저 나서서 말하지는 못하는 성격이라 참았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들어왔다. 

작은 그릇에 따로 담겨온 기름진 짜장의 자태는 매혹적이었다. 

불향 가득한 양파 특유의 풍미에 코가 아찔했고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바람에 젓가락질이 서툴러질 지경이었다. 몇 달 만에 먹는 삼선 간짜장은 여전히 훌륭했다. 적당한 단맛과 풍부한 지방의 맛, 고기와 어우러진 춘장의 고소함과 화룡점정 MSG의 감칠맛까지.. 


과연 한 달간의 고행에 앞서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을 선택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식당을 나서자마자 식도에서부터 익숙한 쓰라림이 올라왔다. 

몇 개월 만에 짜장면이라고 신고식을 제대로 할 모양인지 불편함이 점점 강해지고 식도가 타들어가듯 아려왔다. 아랫배도 부글부글한 것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해서 화장실로 직행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도 돌부리가 걸린 듯 답답한 것이 전혀 소화가 되지 않았다.  


아.. 이젠 짜장면 한 그릇 제대로 소화 못 시키는 몸이 되었구나.. 


서글퍼졌다. 

단식을 한다고 해서 고장 난 위가 회복될까 싶은 약한 마음도 들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야 겨우 더부룩한 위가 가라앉았고, 더불어 우울했던 마음도 진정시켰다.


우리집은 타고난 대식가이신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위가 약한 편이다.

아버지는 벌써 여든이 다되어 가시는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에 나보다 더 많은 식사를 하신다. 그러나 어머니 집안 분들이 위가 약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닮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위장에 탈이 많았다. 그러나 그 탈 나는 성질이 대개는 과민성 증상이거나 단순 소화가 안 되는 정도였지 이런 염증반응까지는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과식, 과음을 했고, 커피 담배에 의지하며 버텨왔던 일상이 10년쯤 누적되었는데 염증이 안 생기고 배길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저녁에 먹자마자 눕는 버릇까지.. 40년간 꾸준히 위장을 못살게 굴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그 기나긴 세월, 폭력에 시달렸던 위장에게 용서를 구하며 내일부터는 휴가를 준다. 


병가를 준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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