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히치하이킹에서도 그런가 보다. 그날은 장소도 괜찮고, 차를 세울 공간도 넉넉하고, 도로에 차도 많고,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날씨도 좋은 날이었다. 날씨가 구리면 히치하이커는 안쓰러워 보이고 친절한 운전자는 더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여분동안 차가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까지만 있어보고 다른 곳에서 다시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을 때 차가 섰다. 아주 아주 커다란 트럭이. 이런 차를 보기도 쉽지 않은데 타게 되다니! 보통 창문만 열고 운전자가 어디까지 가는지 묻곤 하는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사다리를 타듯 기어 올라가 낑낑거리며 문을 열었다. 유쾌해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반겼다. 오랜 시간 먼 길을 운전하는 트럭의 특성상 음식이 나뒹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단정하고 쾌적했다.
운전자 아저씨 T는 30대로, 젊어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50대의 우리 아빠가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히치하이킹에 기함을 해서 더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말이다. 쾌활한 T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래서 이런저런 인생 얘기를 하기에도 좋은 말동무였다. 한참을 갔는데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나는 교환학생이나 여행, 고향에 있는 이혼한 부모님이 그리운 이방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T는 트럭 운전사, 직장인, 이혼으로 자주 보지 못하는 어린 아들이 걱정인 정착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히치하이킹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유럽인, 아시아인, 다른 문화의 정말 다른 사람들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엇비슷한 친절함, 행복과 슬픔이 있다. 유럽에서든 아시아에서든 따스했던 운전자가 그토록 많았던 것처럼, 부모님이 이혼을 하며 미안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연결되다 보면 세상은 결국 다 이어져있구나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T는 어디에서 내리고 싶냐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어디로 가?" "To Paris! 파리!"
그때 우리는 독일에 있었다. 파리는 이미 오후가 되어버린 그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서 잘 거냐고 물었다. 나는 손으로 삼각형을 만들며 말했다.
"I will make tent! You know tent? 전 텐트를 칠 거예요! 텐트 뭔지 아시죠?"
T는 처음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놀라며 위험하다고, 여자애 혼자 "DANGEROUS! DANGEROUS!" 하다며 걱정했다.
T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내가 이혼하고 남은 방들을 세줘서 다른 학생들이랑 같이 살고 있어. 거기서 지낼래? 마침 오늘 고향집에 간 여학생이 있어. 그 학생 방에서 지내면 될 거야. 물론 물어봐야 하겠지만 말이야."
"REALLY? Thank you so much!"
처음으로 탄 트럭, 처음으로 초대받은 운전자의 집. 우리 동네에 온다며 이건 꼭 먹어야 한다며 손에 쥐어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에 갔다.
좋은 인연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별로인 상황에서 다가온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인연은 다가오고 있을 테니까.
벤츠도 타봤다. 내가 평생 타본 차 중에 가장 좋은 차였다. 전기차에 무소음이라서 차에 앉아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안전벨트가 자동으로 조절된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운전자도 다정했다. 주유소 입구에서 내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와 곧 충전이 될 텐데 함께 가겠냐고 물어봐줬다.
하지만 히치하이킹하기에 가장 좋은 차는 아니었다. 히치하이킹의 매력은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운전자와 여행자 간의 대화에 있다. 그리고 이 운전자는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마침 공통점도 있었다. 그러나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편안한 승차감에 졸음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차가 조금만 덜컹거렸어도, 조금만 시끄러웠다면, 어떻게 벤츠를 살만큼 부자가 되었나 꿀팁들을 전수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것들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