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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채원 Oct 07. 2021

세상에 이런 대회가 있다고?

히치하이킹 대회로 히치하이킹 연습하기

페이스북 이벤트가 떴다. 히치하이킹 대회.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출발한다.

정해진 장소들에 도착해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면 된다.

장소들은 리투아니아의 역사적, 문화적, 자연적 가치를 지닌 곳들로 전 지역에 흩어져 있다.

가기 어려운 곳일수록 점수가 더 높고, 처음으로 그 장소에 도착한 팀은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대회는 1박 2일로 진행되며 첫날 숙소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탈락이다.

2인 1조로 참여한다.


내 파트너는 한국인 룸메이트 언니였다. 히치하이킹이 대회로도 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도 있는 유럽에서조차 많은 사람들이 히치하이킹을 어렵게 생각한다. 언니도 위험하다고, 못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며 흔쾌히 오케이 했다. 되려 내가 “진짜? 진짜 신청한다?” 되물어야 했다. 그렇게 히치하이킹 초짜와 히치하이킹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출전하게 되었다.


30팀 남짓이 참여했다. 상상해보라, 60명의 사람들이 도로 옆 공터에서 바글거리고 있는 모습을. 운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리투아니아 전통복을 입은 사람, 커다란 엄지척 좋아요 모양을 만들어온 사람, 걷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숏보드를 들고 나온 사람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수두룩했다. 우리는 이국적인 얼굴과 행복한 스마일을 챙겼다.


히치하이킹은 큰 도시 내에서 시작하기 어렵다. 도시 안에서 안으로 마실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이 분명한 차들이 있는 외곽의 도로로 나가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히치하이킹 대회도 외곽에서 시작되었다.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은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뛰어갔다. 환한 얼굴로 엄지를 들고 있는 다른 참여자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생각보다 히치하이커가 많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구나 싶었다.


공식적인 첫 히치하이킹.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이루어가는 여행.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격하게 엄지를 흔들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조수석에 앉아 운전자와 이야기를 했다. 엉성했지만 순조로웠다. 완전히 엉뚱한 도로에서 기다리다가 마음에 걸린 운전자가 되돌아와 히치하이킹이 잘 되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학생 때 돈을 아끼려고 히치하이킹을 했었다는 운전자도 만났다. 히치하이킹 대회를 재밌어하며 일부러 먼 도착 장소까지 태워다 주고 함께 인증샷을 찍은 운전자도 있었다. 1박 2일 동안 수많은 운전자들을 만나며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방인을 위해 선뜻 차를 멈추고 자리를 내어주었다.


하룻밤을 지내는 숙소는 깊은 숲 속, 강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성의 부속건물이었다. 한마디로 가기가 힘들었다. 그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도 안 갈 것 같았다. 남자 친구 있냐고 한참을 껄떡거리던 운전자의 차로 그곳에 도착했다. 하도 힘들게 차를 잡아서 다들 못 올 줄 알았는데 이미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많은 수의 참가자가 외딴 숲에 하나둘씩 도착했다. 차가 없어도, 버스가 없어도, 히치하이킹으로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이렇게 많은 호의를 받다니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30팀 중에 17등을 했다. 순위권도 아닌데 마치 1등인 것처럼 다른 참가자들의 박수를 즐겼다. 꼴찌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행복했다. 중도에 포기를 한 팀이 여럿 있어 수월하기는 했다. 운전자와 친구가 되어 함께 휴가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좋은 인연을 만들고, 좋은 곳으로 떠나고 싶다면 히치하이킹을 하면 된다. 우리조차 운전자에게 대회는 미뤄두고 함께 캠핑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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