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리투아니아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왔지, 화장실에서 자기도 하면서 말이야.” 히치하이커와의 짧은 대화가 나를 그런 세계로 이끌었다. 히치하이킹만 하게 될 줄 알았는데 화장실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나는 막 혼자서 여행을 하기 시작한 병아리 여행자였다. 3박 4일 여행을 꾸리기 위해 한 달 내내 온갖 블로그를 뒤져 버스정류장의 위치와 타야 하는 버스 번호를 정리하고 ‘꼭 가야 하는 곳’, ‘꼭 먹어야 하는 것’ 등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진 여행을 하고 한동안 우울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건가, 원래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건가, 이런 게 여행인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음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이 여행들에는 인연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 재미없던 여정 중 가슴이 뛰었던 몇 안 되는 순간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와의 대화가 재밌었고, 아침저녁으로 갔던 빵집 알바생과 친구가 되었던 것이 설레었고, 출근하던 아줌마와 길 잃은 내가 함께 기차역까지 걸어가는 길이 즐거웠다. 짜여진 여행 일정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생겼을 때 즐거웠다. 인연과 도전이 있는 그런 여행이 필요했다.
교환학생 일상은 영하의 온도와 창밖으로 휘날리는 눈발, 일찍 저무는 해가 아니라면 한국에서의 방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워킹 홀리데이가 아니라 스터디 홀리데이, 아니 그냥 홀리데이를 하겠다며 이틀에 몇 안 되는 수업을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일상에도 인연과 도전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은 쾌쾌 묵은 페이스북을 열고 온갖 EVENT이벤트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이벤트도 리투아니아어로 된, 구글 번역기를 돌려 찾은 거였다. 대학교 동아리의 평지 스키 이벤트였다. 리투아니아는 언덕만 겨우 있는산이 없는 나라면서, 맑은 날은 거의 없는 눈 쌓인 나라이다. 동양인은 나뿐이고, 외국인조차 몇 안 되는 그 이벤트에서 그 히치하이커를 만났다. 머리 한쪽의 레게머리가 예뻤던 E는 다부졌고, 거침이 없었으며, 중고매장에서 2유로를 주고 산, 오렌지빛이 쑥스러웠던 내 스키복을 좋아했다. 창밖으로 온통 지평선인 기차를 타고 인생 이야기, 사랑 이야기, 여행 이야기가 흘러갔다.
“왜 히치하이킹을 하는 거야?”
“위험하지 않아?”
“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
“정착하지 않는 삶이, 안정적이지 않은 삶이 걱정스럽지 않아?”
E는 리투아니아에 계획 없이 와서 호스텔에서 일하며 틈틈이 아크로 요가를 가르쳤다. 나는 E가 이미 많이 들었을, 몹시 진부한 질문들을 했다. 그녀도 지루하단 얼굴로 하나하나 대답했다.
“히치하이킹은 하나의 교통수단이야.”
“나는 나만의 안전수칙을 지켜. 밤에는 절대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지.”
“그렇다면 너는 왜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아?”
“나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책을 읽지 않아.”
그렇게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해냈듯,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해냈듯 나도 분명히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모험과 어려움, 엉뚱하고 다정한 등장인물들, 그리고 알 수 없는 결말의 이야기를 기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