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다

전원하는 날

by 나로살다


순식간에 마음이 무너지고 공황상태가 왔다.

당장 오후에 병실을 암병원으로 옮기란다.

짐을 싸고 이동하는 일들, 맞아야 하는 주사, 떼어야 하는 서류 등등

분주한 가운데 갑자기 너무나 자신이 없어졌다.

나를 볼 때마다 마음의 준비는 했냐고 물을 것 같은 교수와 지낼 자신이.


집에서 첫째 아이 돌보고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 우리 이 병원에서 항암치료 하는게 맞을까?

이게 정말 최선인지 한번 다른 병원도 가보는게 어때?

일단 시작하면 옮기기 어려울테니까...내가 혹시 오늘 진료되는지 알아볼께"


신랑이 네이버 뇌종양 투병하는 사람들이라는 까페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삼성서울병원의 성기웅 교수님이 유명하고 잘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뇌종양에 필수적인 방사선 치료 중 부작용이 적은 양성자 치료도 삼성서울병원에서 가능했다.

나중에 은우가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면 양성자 치료가 가능한 곳에서 시작하는게 맞을 것 같았다.


이 모든 내용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평가를 내려놓은 교과서 같은 곳은 없었다.

그저 자발적으로 생겨난 네이버 까페에서의 경험자들의 댓글과 리뷰가 우리의 동앗줄이었다.

그런데 성기웅 교수님쪽은 꼭 아이가 와야 진료가 된다고 되어있어서,

일단 어떤 수술을 했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전반적으로 알 것 같은 신경외과 신형진 교수님 일정을 보니

다행히도 그날 진료가 있으셨고 전화해보니 그날 오후에 slot 이 있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이 많아서 남편을 통해 준비하고

엄마에게 은우를 좀 봐달라고 부탁한 후에 남편과 신촌에서 강남으로 출발했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해주고 있던 후배의 조언은 이랬다.

"언니, 아마 다른 병원에서 수술하고 온 환자라 안 받아줄 수도 있어요.

책임소재도 있고 치료하다가 수술내역에 대해서 확인해야 할수도 있는데

다른 병원이면 어렵잖아요. 그냥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는건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가봐요 나중에 후회없도록. 세브란스도 항암 잘 한다고 하니까 안받아준다고 해도 너무 걱정말구요."


수술기록지를 한장 한장 넘기며 신경외과 교수님은 천천히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수모세포종이네요? 13개월......김동석 선생이 수술했어요?....네.....

음.....우리 병원에서 치료 하세요. 우리 병원이 한국에서 치료 성적이 제일 좋아요.

항암치료는 주치의의 철학이 중요한데, 그 방면에서 우리 병원에 아주 철학을 가지고 하는 분이 계시니까

우리 병원으로 오세요."


!!!!!


그 때.

바로 그 때.

어둠 속을 처절하게 방황하던 우리 부부의 영혼에 빛이 비쳤다.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할렐루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무교인데도)

신랑과 나는 신경외과 진료실 밖에서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드디어 정답을 찾은 것이었다.

이제 이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신경외과에서 소아암센터로 협진요청을 바로 해주신 덕에

그 날 우리는 그 후 10개월 동안 눈감고도 다닐수 있게 된 소아청소년 암센터 진료실에서

성기웅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빡빡한 외래 스케줄 틈에서도 교수님은 메모지에 간략히 수모세포종이란 어떤 병이며

어떤 치료를 하게될 것인지 설명을 해주시고,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알려주셨다.

세브란스에서 입원하고 검사하고 수술하고 암병동으로 옮기는 와중에 한번도 듣지 못한 자세한 설명.


우리의 마음속에 확신이 들었다.

치료성적이나 양성자 여부를 떠나 환자를 살리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여기구나. 정답이.


"오늘 세브란스 퇴원하고 내일 입원하겠습니다."

"네. 병실을 마련해줄테니까 조직검사 결과 가지고 입원하세요."


2020년 7월 18일

해변에서 바늘을 찾았는데

그 바늘이 다이아몬드 바늘이었던 날.

갑자기 닥쳐온 이 일을 어떻게 정리하고 진행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너무 막막하고 답답하고 불안한 하루하루였다.

모든 것이 아이의 보호자인 우리가 얼마나 알아보느냐에 달렸다는 것.

그 사실이 참 버겁고 무겁고 내려놓고 싶고, 그냥 수술한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하고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남편과 서로 의견을 내고 각자 다른 방면으로 알아보면서

결국은 우리 아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14일에 수술했으니 겨우 4일 남짓 지났을 뿐인데, 그 며칠간의 시간동안 우리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세상의 모든 병원과 의사가 같은 교육과 기술과 철학을 가진게 아니고,

더더욱이 보호자를 대하는 마음은 또 더 다양해서 내가 알아보고 만나보고 판단해야 하는것이

너무너무 힘든 과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우리에게 제일 도움이 되었던 것이 실제로 뇌.투.사 까페에서 본

경험했던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라는게 생각나서였다.


지금도 갑작스러운 사고나 진단에 마음이 무너지고 있을 분들에게

지치지 말고 힘을 내서 바늘을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에게 맞는 바늘이 꼭 있다고.

밥 잘먹고 잠 잘 자고 찾기만 하면 된다고.

걱정하고 슬퍼하고 화내지 말고 잘 찾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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