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5일 내내 오리온 중독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나도 시달렸다.
주말만큼은 나에게 집중하고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야지.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다짐하는 바이다.
심리 상담사라는 직업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스트레스가 많다.
다른 사람의 괴로움에 공감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오리온에 접속해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이번주에도 최소 스무번은 그 곳에 다녀온 것 같은 피로감이 든다.
망할 오리온.
브런치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다.
주말이라 마음은 화창하지만, 날씨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날씨가 이렇게 된지는 오래되었다.
몇 십년동안 축적된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로
외출 시에는 콧속에 작은 필터를 장착하는 것이 필수인 시대다.
그나마 오리온 덕에 사람들의 외출이 현격하게 줄어들면서
탄소배출량이 감소하고 환경에는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가
얼마전 뉴스에서 발표되었다.
- 그래서, 이번 연휴에는 어디로 갈까?
동생과 만나 연휴 여행계획을 짜기로 했다.
얼마만의 여행인가!
생각같아서는 동남아 바닷가 리조트에서 아무 생각없이 늘어지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제는 그런 자연 친화적인 휴가는 너무나 비싸서 쉽게 갈 수 없게 되었다.
깨끗한 바다와 모래, 자외선 걱정없는 햇살은 사라진지 오래.
현실적인 휴가는 아마 최근 오픈한 호텔의 호캉스일 것이다.
- 언니, 레이나 호텔이라고 들어봤어?
- 아니, 새로 생긴데야?
- 응 리뷰 엄청 좋아. 이거 봐봐.
동생이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에는 칭찬 일색의 리뷰들이 스크롤 다운 되고 있었다.
- 리뷰 수 1,459개에 평점 5점? 야, 이게 말이 돼? 광고 아니야?
- 아니야 언니, 요즘 여기가 진짜 핫하다니까.
여기 한번 가보자~~ 내가 사실 어제 어렵게 광클해서 예약했어~
- 오 그래? 그래! 좋아!
- 근데 언니, 얘기 안한게 있는데, 여기 사실.....
- 응?
- 오리온에 있는 호텔이야.
- 뭐?
- 레이나 호텔이 오리온에 있는 호텔이라고. 오리온에 접속해야 갈 수 있다고.
- ....
동생 희재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나는 선뜻 망설여지는 일도 거침없이 턱턱 시도해보고, 낯선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말을 트곤 했다.
오리온이 첫 개장을 했을 때에도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워했고
파일럿 크루로 지원해서 오리온의 구석구석을 탐방하고 피드백을 제출하는 알바까지 했었다.
하지만,
휴가까지 오리온에서 보내야 하다니.
즉각적인 거부감이 목구멍을 가득 채웠다.
- 난 싫어.
- 언니, 그러지 말고....거기 완전 좋다니까?
지금 버전은 첨에 있었던 멀미감도 없고 어지럽지도 않아. 진짜 여기랑 똑같애~!
- 아니, 그래도... 굳이 쉬는 날까지 거기를 접속하라고?
거기 중독된 환자들한테 하루 종일 오리온 얘기 듣는게 내 일인데?
- 한 번 가보면 언니도 좋아할거야.
언니가 좋아하는 모든 게 가능하고, 진짜를 사는 것보다 훨씬 싸고, 빠르고, 편하다니까?
- 그래도 진짜랑은 다르겠지. 거기는 가짠데.
- 아휴... 마음을 좀 열지 그래?
내가 장담할께, 언니가 좋아할 거라는거.
얘가 이렇게까지 강요하는 성격이 아닌데.
내가 맹신하는 몇몇의 사람 중 하나인 동생은
너는 너, 나는 나.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내가 오리온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이렇게 강하게 푸쉬하는 동생이 도리어 신기했다.
- 정말 그렇게 괜찮아? 나같은 사람한테도?
- 언니같은 사람에게 더 좋은 거야.
초기 버전은 너무 게임같고 영화같았고, 솔직히 좀 어지러웠거든?
근데 지금 버전은 중력까지 구현해서 정말 현실이랑 구분이 안가.
아니지, 현실보다 더 좋지. 내가 원하는 대로 편집이 되니까. ㅋㅋㅋ
그래?
조금 마음이 동하는 것 같다.
- 가면 며칠이나 있는데?
- 2박 3일.
- 2박 3일에 얼마야?
- 15만원! 완전 싸지? 내가 핫딜을 잡았다니까.
아...근데 언니는 참 니보가 없지?
- 니보가 뭐야?
- 오리온 접속할 때 입는 수트. 잠깐만... 이 호텔이 몇세대까지 호환되는지 확인 좀 해보고.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동생을 통해 니보 9세대부터 호환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얼마전 니보 11세대가 출시되어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고 해서
동생과 함께 오리온 니보샵에서 최신 수트를 구입했다.
접속을 끊고 현실로 돌아오니 이미 수트가 집에 도착해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심리스 (seamless) 인가?
수트는 옛날 옛적 다큐에서 본 것 같은 잠수복처럼 생겼다.
하지만 더 가볍고, 입기쉽고, 무엇보다 컬러와 디자인이 세련되었다.
- 이쁜 잠수복이네.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끼워서 입고, 머리에 쓰는 후드까지 달려있다.
초기 세대 수트는 헬멧과 고글, 장갑을 별도로 착용해야 해서
착용감도 불편하고 분실위험도 있었지만
11세대까지 진화하다보니 이제는 올인원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입고 자도 좋을 정도로 촉감도 좋고 편했다.
- 편한건 인정인데, 이쁜 잠수복이 2백만원이라니.
오리온 장사 잘하네.
아직도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것은 아니어서,
삐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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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후.
휴가가 시작되었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던 설레임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니보 11세대를 입고 침대에 누웠다.
왠지 긴장이 되어 물을 한모금 마시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 야, 이거 다 입고 후드에 달린 안대부분만 눈까지 덮어서 쓰면 되는거지?
- 응. 접속하면 내가 바로 찾아 갈테니까 헤매지 말고 가만히 있어.
- 어...그래. 근데 내가 무슨 모습인지 알고 너가 찾아와? 거기서 전화도 안될텐데?
- 언니는 첫 접속이고 셋팅을 안해놔서 디폴트 모드로 접속될 거야.
니보 11은 출시된지 얼마안되서 언니랑 같은 모습 별로 없을테니 걱정말고.
- 알았어. 너만 믿는다... 좀 떨리는데.
- ㅎㅎㅎ 오늘 역사적인 날이네, 축하해 언니! 웰컴 투 파라다이스!
- 이따 만나자.
- 응! 릴랙스~
통화를 끝내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부드러운 촉감의 니보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 썼다.
후드 끝에 달린 안대 형태의 밴드를 눈이 덮이도록 내려서 썼다.
기분좋은 신축성이 눈을 살짝 눌러주는 느낌과 함께
나는
오리온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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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언니 맞지?
희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