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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2. 허공을 떠도는 마음들
상담실에서
by
나로살다
Oct 17. 2022
- 한쪽 눈이 더 작아졌어요...
얼굴을 내 눈 앞에 가까이 들이대며 그 여자 환자가 말했다.
자세히 봐달라는 제스츄어였기에, 몸을 앞으로 굽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그런가요? 지난번 때와 비슷한 것 같은데요.
- 아니에요. 검은 동자가 더 많이 가려졌어요. 이러다 완전 짝짝이가 될 것 같아요.
- 흠... 눈 크기가 달라지는게 많이 걱정되시나요?
- 네...이제 화장으로도 안가려지구요, 회의할 때나 누구를 만날 때 계속 신경이 쓰여요.
아무래도 성형외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야겠어요.
- 아, 시술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네. 한 번 알아보려구요.
멀쩡한 얼굴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사람의 몸과 얼굴은 모두 비대칭이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 저, 지난번 상담 후에 오리온은 얼마나 방문하셨나요?
- 얼마나..라고 말씀하시면?
- 한 달 전에 방문 주셨는데요, 그 후에 며칠이나 오리온에 다녀오셨는지요?
- 매일 갔어요.
- 매일이요? 조금 줄여본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 그래도, 이전보다는 짧게 있었어요. 3시간 정도?
- 네, 노력하셨네요...
요즘 이런 환자가 늘었다.
오리온, 또 하나의 라이프.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현실이 되는 세상.
가상 현실? 아니다. 가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현실이다.
다중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여기 이 곳과 다른 점은
그 곳은 완벽하고, 내 모습 또한 완벽하다는 것이다.
완벽이라는게 무엇을 의미하든.
그 아름다운 세상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지내다가
현실로 돌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흠 투성이의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양쪽 눈의 크기가 조금 다르다는 것,
피부의 주름, 짧아 보이는 다리, 심지어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것 까지도.
자존감이 사라진 사람들은
우울감과 콤플렉스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이런 시대에 호황을 맞은 직업들이 있었으니
성형외과 의사, 피부과 의사, 화장품 등의 뷰티 업계 종사자들과
그리고,
나와 같은 심리 상담사였다.
짝짝이눈을 걱정하는 여자 환자는
상담 후 또 다른 상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상담실 문을 나갔다.
휴.
오리온이 그렇게 좋은가.
나는 한 번도 오리온에 접속해본 적이 없다.
얼리 어댑터보다는 팔로워 측에 속하는 나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 때마다 거부감부터 일었다.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볼 때마다
- 굳이 이렇게까지 편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빨라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기존 서비스를 단종한다는 통보가 올 때까지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아주 엉덩이가 무거운 고객 중에 하나였다.
아직도 펜으로 일기를 쓰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고대 유물급 아날로그 사람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리온 서버가 오픈된 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변화는 좋은 것이라지만, 정말 그럴까?
다음 상담 세션을 예약한 남자 고객 또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몸이 없는
영혼인데 말이다.
그렇다.
오리온 개장 후 인간은 불멸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오리온에 접속하는 뇌신경만 살아있다면
그 또 하나의 세상에서 가상의 신체를 가지고 영원히 살 수 있었기에
현실에서 늙고 병든 몸뚱이가 작동을 멈추는 것이
더 이상 죽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산소, 묘지, 납골당은 모두 사라지고
뇌를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소울 빌리지'가 생겼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뇌가 보관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고
고단한 몸과 팍팍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최대한 오랫동안 그들의 영혼이 오리온에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띵동.
귀에 장착한 이어폰에서 고객이 접속해왔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린다.
- 안녕하세요 지훈님.
-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신체가 사망한지 10년이 지난 신지훈님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신체 사망 당시 신체의 나이는 85세였지만
뇌신경 세포가 전달해주는 그의 목소리는 25세의 그것이었다.
- 네, 저는 잘 지냈어요. 지훈님은요? 오리온에서 행복하세요?
- 너무 좋습니다. 지난 달에는 드디어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어요.
- 와, 축하드려요. 어떻던가요?
- 영화나 다큐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어요!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그 환상적인 바다와 공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하하. 곧 가능하겠죠.
안타깝게도 불사의 인간은 신체가 없었기에
시각, 청각 외의 촉각, 후각, 미각까지는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오리온의 최근 기업정보 고시에 따르면 최정예 개발팀이
신체가 없이도 오감을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 지훈님, 지난 번에 고민 중이시던 부분은요?
조금 더 생각해보셨나요?
- 선생님, 어제 소울 빌리지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번 월말까지 재등록하면 VIP라 30% 할인을 해준다고 하네요.
재등록이라.
삶을 재등록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 지훈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 물론 저는 재등록 하고 싶은데요...이게 벌써 세번째 재등록이라, 예금이 많이 부족해요.
원래는 이렇게 오래 오리온에서 지낼 생각이 아니었는데...
선생님, 전 이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요?
더 이상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싫습니다.
지훈님의 자식들, 그러니까 두 딸과 한 명의 아들, 또 그들의 손주들은
두번째 재등록에 부족한 금액을 부담해주었었다.
그들도 오리온에서 언제든 자신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동의하였고, 돈을 송금해주었다.
그런데 또 다시 재등록을 한다면. 그들은 이전만큼 기뻐할까.
소울 빌리지의 등록비용은 1년에 3000만원이었다. 5년 단위로 갱신이 되니 1억 5천만원.
여기에 30% 할인을 해준다 하더라도 1억 넘는 비용이다.
경쾌했던 첫 인사와는 달리, 지금 지훈님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이 삶을 (그것이 어떤 삶이든) 멈춰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그의 뇌속에 단단히 침투하여 심난하고 우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리고 나의 죽음이 돈이 바닥나는 시점과 일치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인가 아니면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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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Brunch Book
당신이 가지않은 길을 팝니다.
01
1.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
02
2. 허공을 떠도는 마음들
03
3. 시도
04
4. 오리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05
5. 프로그램
당신이 가지않은 길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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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워킹맘. 작은 아들 뇌종양 진단 후 수술과 치료를 받는 동안, 또 그 후에도 느낀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공유하고 돕기위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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