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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Apr 01. 2023

남자가 필라테스를 한다구요?


신랑이 재택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덕분에 아들의 등교를 대신 시켜주니 오늘은 훨씬 수월했다. 아들을 태워 학교로 간 사이에 방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쳤다. 평소엔 제법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오늘따라 금방 끝이 났다. 내 시간이 더 많아졌다.


신랑이 아이를 보내고 돌아와 아침을 먹는다. 결혼할 때 우리 아들은 아침밥을 절대 거르지 않는다던 시어머니 말씀이 무색하게 신랑은 나와 살면서 아침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평소엔 토스트나 과일로 간단히 먹는데 오늘은 여유가 있으니 밥을 먹으려는 모양이다. 평소 내가 따로 챙겨주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먹는 편이라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다.


아무것도 안 하기가 뭣해서 괜히 간장게장 통을 꺼내 작은 그릇에 소분해 담고 있었다. 게딱지를 가르고 몸통을 반으로 조각낸 후 다리를 뜯어 먹기 좋게 분해했다. 다정한 마음과 달리 내 손에서 일어나는 일에선 다소 살의가 느껴졌는지 괜히 서있지 말고 들어가란다. 새삼스레 무슨 양처 코스프레냐는 눈빛으로 신경 쓸 것 없다고 한다. 안방으로 걸어가며 괜히 전자레인지 위에 얹힌 덮개를 반듯하게 놓아보고, 선반 위의 약봉지도 툭툭 건드리며 정리를 해본다. 아. 어색하다.


안방에 기대 누워 브런치 글을 읽기 시작한다. 밀린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데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정신없이 읽고 있다가 문득 다시금 마음이 불편해진다. 신랑은 아들 방에서 교육을 듣는 중이다. 다시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며 내가 부산스럽게 집안일을 하고 있음을 굳이 알린다. 집에 있어도 해야 할 일이 늘 있다는 듯이.  


신랑은 내가 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수락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안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음을 알리려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집에서 이렇게 마냥 노는 것이냐 닦달한 일이 없음에도 지레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자 있을 때는 의미 있는 행위로 여겨지던 일들이 신랑 앞에 노출되니 그저 단순하고 편한 일로 전락해 버리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점심엔 근처에 나가 국수를 먹었다. 돌아와 빈백에 기대앉으니 노곤하니 잠이 몰려온다. 오늘은 동생도 다른 볼일이 있어 외출을 한 터라 산책을 쉬어도 될 것 같다. 잠이 스르르 몰려오는데 깊이 잠들지 못한다. 다시 일어나 빨랫감을 물에 담가 조물조물 손빨래를 했다. 소리도 없는 이것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알리바이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빨래를 마무리하는 일을 신랑 몫으로 남겼다.


눈 끝에 매달리는 잠을 몰아내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나 운동 갔다 올게. 빨래 좀 널어줘. 대답이 없어 방문을 열었더니 침대에서 졸다 깬 신랑이 수업시간에 졸다 깬 학생처럼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기지개를 켜며 졸지 않은 척을 한다. 속으로 웃는다. 신랑은 이토록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 스스로 괜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걷다가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시답잖은 영상을 보다 둘러보니 주위엔 전부 노인들이다. 나는 왜 신랑의 평일 낮 점거가 불편한 것일까. 늘 반복적으로 해오던 집안일을 나 스스로도 평가절하했었나 보다. 그런 집안일은 오늘따라 금세 마무리가 되었고, 오늘따라 더 하찮고 미미한 일로 여겨졌다.


우리는 일하는 동지로 지내온 시간이 길었다. 삶의 무게를 나눠지고 서로의 고단함을 읽으며 함께 일해왔다. 그 힘듦을 알기에 나는 홀로 휴식을 취하는 듯한 미안함이 늘 있었다. 그래서 집안일을 요란하게 하며 나도 무언가 거들고 있음을 생색내 보지만 신랑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집에서 조금이라도 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일상의 편안함을 조금 미안하게 누리는 것이 그나마 내 마음의 표현이었다. 다소 불편하고 다소 어색할지라도.


마지막까지 바쁘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저녁엔 필라테스를 갔다. 이제 제법 노련한 척을 할 수 있다.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스캔할 여유가 생겼다. 타이트한 레깅스는 살집을 구겨 넣어 오히려 단정한 몸을 만들어주는 마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번에는 연세가 제법 많으신 여성분이 오신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남성분이 새로 오셨다. 옆에 나란히 앉은 여성분과는 데면데면하고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부부사이인 것 같다. 남성분은 쭈뼛쭈뼛하며 한껏 어색함을 표했다. 아무렴 여자만 가득한 곳에 중년 남성이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모두가 나 같이 의아하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을 테니까.


그간 미디어에서 늘 젊고 늘씬한 여성분들만 보여준 탓에 필라테스가 여성의 전유물인 것으로 오해한 면이 있었다. 알고 보니 필라테스는 원래 20세기 초에 조셉 필라테스라는 독일 남자에 의해 개발되었고 1차 세계대전 동안은 군인을 재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임에도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진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필라테스는 잘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여 속근육을 발달시키는 운동이다 보니 편하게 쓰던 근육의 반대방향으로 이뤄지는 운동이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하던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을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특히 동작의 끝마다 찾아오는 절정의 고통을 참아내는 노력이 필요했다.


편하게 하던 것들이 깨어지는 과정에는 늘 어색함과 불편함이 자리한다. 평소에 쓰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꺾고 틀어야 속의 것이 새롭게 정렬이 될 것이다. 오늘 이곳엔 필라테스를 하러 오는 길부터 필라테스의 몸짓까지 모든 것이 어색함을 떨쳐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한 남성이 있었다.


돌아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오셨던 여성분과 남성분은 아무 말이 없이 앞 뒤로 서있었다. 둘은 부부가 확실하다. 나는 그 어색함과 불편함을 충분히 안다.




# 그림 출처 : 리포즈플라테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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