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참으면 엉덩이가 예뻐질 수 있습니다
나는 처음 고소공포증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것은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이전부터 꾹꾹 눌려져 있던 것인지, 내향적이던 감각이 숨기고 있던 예민함을 일제히 발휘한 날이 하필 그날이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꽉 죄고 있던 옷의 실밥이 터지듯 어떤 감각이 투두둑하고 열린 날이었다.
10살 즈음. 여느 날처럼 나는 그네를 타고 있었다. 고지를 정하고 저기에 도달할 것만을 목표로 온 힘을 다해 탔다. 좀처럼 올라올 기세가 없이 잔잔하게 앞뒤로 흔들리던 그네에 추진력이 느껴지던 순간.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리를 뒤로 오므렸다 펴며 격한 반동을 주었다. 비축한 힘을 써야 할 시간만을 노리며 온 마음을 집중했다. 뒤로 밀려났다가 앞으로 나아가기 직전. 방향을 바꾸는 시점. 적진에 진군하기 위해 도열을 정비하고 무기를 장착한 부대인 듯 고요히 숨죽이고 있다가 단숨에 기세를 바꿔 뛰쳐나가곤 했다.
도약의 시간이다. 한 단계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그러기 위해서는 늘 숨죽이며 힘을 모았다가 일제히 터뜨리는 일의 반복이 필요했다. 속도가 나고 재미가 나자 바람을 맞서는 희열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그네 위에 몸을 세웠다. 고요의 시간을 지나 몸이 휘어지는 반동으로 돌진하던 순간.
철-렁.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귀에 들린 듯했다. 내 몸이 먼저 아래로 내려오고 미처 따라오지 못한 심장이 저 뒤편에서 허둥대며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심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따라붙었지만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성이는 느낌이었다. 잘못 느낀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그네를 타보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낯설고도 불편한 감정이었다. 어린 나로서는 성숙의 길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인가 여겨지기도 했다.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았던 미지의 그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렇게 추상적인 감각을 이겨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며 속으로 삼켰다.
무디고 단단하던 감각이 얇게 저며지고 가냘파지는 것이 성숙의 길이라면 분명 이것은 그쪽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나는 그 후로 그네를 타는 일이 두려워졌다. 한번,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맛보았던 그 미묘한 고통의 순간을 다시 감각하기 싫어 그네를 타지 않았다. 도약을 하던 순간의 짜릿함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에 필요한 인내라 여겼다.
내 몸의 감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에도 놀이기구를 타는 일은 왠지 꺼려지는 일이었다. 선뜻 놀이기구에 도전하지 못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너머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 본능적 감각을 외면하고 그 너머를 굳이 몸소 확인한 어느 날이 있었다.
고모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고모집에 놀러 간 날. 고모부는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들에게 도시스러운 하루를 선물하고픈 마음에 우리의 성향이나 취향과는 상관없이 여느 아이들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놀이동산에 데려갔다. 그리고는 역시나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유이용권을 끊고는 이를 아깝지 않게 충분히 활용하기를 바란다는 눈빛을 보냈다.
대범한 성격의 고모부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자이로드롭을 권했다. 놀이기구라고는 회전목마밖에 타보지 못했고 그네를 타며 느꼈던 약간의 공포도 생각이 났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거절을 했다. 하지만 손목에 단단히 둘러진 자유이용권과 우리의 즐거운 모습을 보며 고모부가 느껴야 할 충족감에 대한 부담, 그들이 기대하는 여느 아이들의 모습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으로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언젠가 그네를 타며 느꼈던 감각은 어쩌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고, 알고 보면 내가 이런 스릴을 즐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합리화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자이로드롭에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한의 공포를 경험했다. 하늘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가 추락하기 전 하늘에 멈춰 있는 시간. 눈이 절로 감겼고 감각이 곤두섰다. 스치는 바람이 가닥가닥 느껴졌다. 이 순간이 꿈이기를, 아니 어쩔 수 없다면 제발 지나가기만을, 그 끝이 오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눈물이 또르르 맺혀 바람결에 날렸다. 하강하는 순간 내 육신은 순식간에 추락하였지만 심장은 아직 발을 내딛지 못해 자이로드롭 끝에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이 뒤늦게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내 몸에 심장이 제대로 안착하기까지 온통 이질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온몸이 움츠려 들고, 심장이 하늘에서 던져진 느낌. 더 극한의 공포였던 것은 이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 공포를 다시 겪어야 하는 공포.
나는 그 이후로 절대 절대 놀이기구를 타지 않는다. 나의 담력을 시험하는 일은 절대 죽어도 하지 않는다. 그 이후 나는 케이블카도 무섭고,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 바닥도 무섭고, 출렁다리는 물론이며 외관이 드러난 투명 엘리베이터도 무섭다.
생각해 보니 그때 자이로드롭 위에서 내게 힘이 되었던 것은 어쨌든 결국 끝이 있을 것이라는 미약한 희망뿐이었다. 그 얄팍하고도 미세한 희망. 그것만을 동아줄처럼 부여잡고 그 시간을 견뎠다.
나는 종종 필라테스의 동작을 하며 그 극한의 상황을 생각한다. 다리를 쭉 뻗거나 허리를 굽히거나 팔을 넘기는 행위. 이 일반적인 동작을 뛰어넘어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든 순간을 견뎌야 한다. 살이 부들부들 떨리고 무릎이 자꾸 꺾이려는 것을 내리누르고 있으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편한 상태로 되돌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드디어 위기를 넘겼다 안도하며 맥이 풀리려는 순간 강사가 덧붙인다.
그 자세로 잠시 멈추겠습니다. 하나아아아- 두우우우울- 세에에에엣.
내 인내가 극한에 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찾아오는 극한의 고통. 고지에 도달했다 생각하는 순간 다시 나를 조으며 달려드는 고통. 그 순간을 이겨내야 비로소 근육이 태워지는 것이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느끼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는 순간 강사는 다시 말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엉덩이가 예뻐질 수 있습니다.
너무도 잔인하게 상냥한 말이다. 그 말은 내가 자이로드롭 끝에 매달려 옴싹달싹할 수 없이 모든 게 옥죄어 오던 순간 생각하던 그 끝, 미약한 희망 같았다. 이 시간을 버텨야만 내 뒤태가 봉긋한 엉덩이로 살아날 수 있다니. 그 말에 원망과 고통과 다가올 안도와 희열을 동시에 느끼며 견뎌낸다.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끝이 있다는, 곧이어 평온한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에 있었다. 어김없이 찾아올 그 순간에 충분히 안도하기 위해 우리는 고통을 받아들인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아주 여러 번 자이로드롭의 끝에 매달려 극한의 고통을 견딘다. 때로 다리를 허공에 띄우고, 때로 허리를 곧추 세운 채. 내 옆에 앉은 유연하고 젊은 그녀는 죽을 둥 살 둥 바둥거리는 나를, 굳다 못해 툭하고 끊어질 것 같은 몸통을 구부리느라 애를 쓰는 중년의 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잠깐의 고통을 극한의 고통인 듯 받아들이는 나를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자이로드롭 아래에서 올려다볼 땐 급강하는 순간 부챗살처럼 펼쳐지던 다리들이 극한을 경험한 자의 고통과 그 이후의 체념을 담고 있는 몸부림인 것을 미처 알지 못했으니까.
# 그림 출처 : 리포즈플라테스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