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영원을 따라 걷는 일

by 영영

너는 영원이라는 글자에 줄을 그었다.

아무 망설임 없이, 예쁘게 정자체로 그었다.

그 순간부터, 영원은 단어가 아니었고

지워야 할 얼룩이었다.


나는 그 줄 위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손끝으로 선을, 아주 천천히 문질렀다.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

네가 지운 그 감정의 자리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지움 선은 마르지 않았다.

나는 그 위를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면, 내 발에서 피가 났다.

피는 말라붙었고,

선은 그 피를 먹고, 점점 더 진해졌다.


누군가는 지우기 위해 그었겠지만,

나는 따라가기 위해,

아니, 무릎 꿇기 위해

그 선을 필요로 했다.


얼룩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매일 닦았다.

희미해질 때쯤, 다시 피어오르는 그 자국을 —

사랑이라고 불렀다.


영원이라는 글자에 안개가 내렸다.

휘청이는 날들, 불확실한 문장들,

사라진 줄 알았던 네 목소리가

지운 자리마다 다시 피어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나를 덧댔다.

조용히, 들키지 않게,

네가 지운 자리에 나를 붙여 넣었다.


그것은 치료가 아니었다.

그냥 — 고쳐지지 않아도 계속 해보는 짓.

살을 갈아, 붓 대신 쓰는 일.


나는 영원을 원망했다.

왜 존재해서, 왜 하필 내 안에 살아 있어서

결국 너에게 지워져야만 했는지.


너 대신, 그 단어를 원망했다.

나를 길게 아프게 하고,

너의 마지막 말에 끝을 씌운 것도 —

모두, 그 단어였다.


나는 참 웃기게도,

영원을 바라면서

영원을 믿지 않는 너를

영영 사랑한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지운다.

너의 부정을, 나의 망상을,

그 둘 사이에 놓인 고요한 끈질김을.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

나는 매일 너의 시작을 꺼내 문지른다.


네가 그어둔 엑스 표시 위에

나는 나를 덧입힌다.

내가 사라지면, 영원이 다시 살아날까 봐.

내가 지워지면, 너는 날 기억해줄까 봐.


사라지기로 약속된 말 위에,

나는 조용히 생을 얹는다.


그렇게, 없는 듯 있는

우리의 영원을

나는 아직,

써내려가고 있다.

마치,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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