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려고 한적은 없습니다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호출을 받고 24시간, 우리는 출근 복장 그대로 장례식을 치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엄마 집에 모였다.
이제 무얼 해야 하지?
현관문이 달그락 거릴 때마다 습관처럼 "아빠 왔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 본다
"
자동차.
안을 봐야겠지?
"
아빠가 타고 다녔던 승용차는 아빠의 공간이자 아빠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은 것이라
우리는 그 차가 홀로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몹시 괴로웠다.
" 사위들이 다녀오자 "
듬직한 사위 셋이서 차 안을 살피러 갔다.
그리고 몇 분 후,
낡은 서류 몇 가지를 들고 나타난다.
워낙에 차를 깨끗이 썼던 양반이라 사실 들춰보고 정리할 것도 거의 없었다
"이런 게 있더라고요"
막내 사위가 조심스럽게 건넨 반으로 접힌 꼬깃한 종이엔
아.
아빠
푸하하하하
엄마와 딸 셋, 네 여자가 박장대소를 한다
아빠 글씨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못살아 네 아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정말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심스럽게 건넨 그 손이 무색하도록 엄마는 거의 눈물을 흘리며 웃으셨다.
반으로 접힌 종이 앞장엔 비뚤비뚤한 글씨로
나미다노 박재라고 쓰여있었다
엄마의 부연 설명을 넣자면,
아빠는 일본인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를 듣고 큰 감명을 받으셨단다
어찌 그리 구슬프게 잘 부르는가,
아빠는 홀로 독학을 시작했던 것이다
불러보겠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으면
글씨를 거의 쓰려고 하지 않는 (축의금 봉투에 이름 적는 것도 엄마에게 미뤘던) 사람이
돌려 듣기로 무한 재생해 가면서 한 자 한 자 적어
아빠만의 대 악보를 만든 것이다
이거 쓸 때 그 알 조그만 안경도 썼겠지
의미심장한 '집중입' 표정은 옵션.
그 일련의 과정과 상황이 너무 웃겨서
우리는 정말 웃음소리가 새어나가면 '저 집 여자들이 실성했구나~' 오해를 살 만큼 깔깔 웃어댔다
정말 끝까지 웃긴 사람이야 네 아빠
아빠는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물론 웃기려고 한적은 없다
삶의 태도나 표정 이런 것들이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충청도 특유의 말투나 행동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서투르면서도 참 정겨웠다.
아빠는 그렇게 마지막 웃음을 주고 떠났다.
따뜻한 사람
아빠를 생각하면
아직 많이 아프고 서운하고 아깝고 시리다
언제가 돼야
그 이름 생각하면 재밌고 행복했고 사랑했던 날들만 떠오르려나
그날에 나는, 아빠와 더 가까워져 있을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