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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운 Mar 16. 2022

#6. 사실은 재밌는 사람이었다

웃기려고 한적은 없습니다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호출을 받고 24시간, 우리는 출근 복장 그대로 장례식을 치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엄마 집에 모였다.


이제 무얼 해야 하지?


현관문이 달그락 거릴 때마다 습관처럼 "아빠 왔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 본다


"

자동차.

안을 봐야겠지?

"


아빠가 타고 다녔던 승용차는 아빠의 공간이자 아빠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은 것이라

우리는 그 차가 홀로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몹시 괴로웠다.


" 사위들이 다녀오자 "


듬직한 사위 셋이서 차 안을 살피러 갔다.

그리고 몇 분 후,

낡은 서류 몇 가지를 들고 나타난다.

워낙에 차를 깨끗이 썼던 양반이라 사실 들춰보고 정리할 것도 거의 없었다


"이런 게 있더라고요"

막내 사위가 조심스럽게 건넨 반으로 접힌 꼬깃한 종이엔



아.


아빠


푸하하하하


엄마와 딸 셋, 네 여자가 박장대소를 한다


아빠 글씨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못살아 네 아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정말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심스럽게 건넨 그 손이 무색하도록 엄마는 거의 눈물을 흘리며 웃으셨다.


반으로 접힌 종이 앞장엔 비뚤비뚤한 글씨로

나미다노 박재라고 쓰여있었다



엄마의 부연 설명을 넣자면, 

아빠는 일본인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를 듣고 큰 감명을 받으셨단다

어찌 그리 구슬프게 잘 부르는가,

아빠는 홀로 독학을 시작했던 것이다


불러보겠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으면

글씨를 거의 쓰려고 하지 않는 (축의금 봉투에 이름 적는 것도 엄마에게 미뤘던) 사람이

돌려 듣기로 무한  재생해 가면서 한 자 한 자 적어

아빠만의 대 악보를 만든 것이다


이거 쓸 때 그 알 조그만 안경도 썼겠지

의미심장한 '집중입' 표정은 옵션.  


그 일련의 과정과 상황이 너무 웃겨서

우리는 정말 웃음소리가 새어나가면 '저 집 여자들이 실성했구나~' 오해를 살 만큼 깔깔 웃어댔다


정말 끝까지 웃긴 사람이야 네 아빠


아빠는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물론 웃기려고 한적은 없다

삶의 태도나 표정 이런 것들이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충청도 특유의 말투나 행동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서투르면서도 참 정겨웠다.


아빠는 그렇게 마지막 웃음을 주고 떠났다.

따뜻한 사람




아빠를 생각하면 

아직 많이 아프고 서운하고 아깝고 시리다

언제가 돼야

 이름 생각하면 재밌고 행복했고 사랑했던 날들만 떠오르려나

그날에 나는, 아빠와 더 가까워져 있을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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