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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운 Feb 21. 2022

#4. 운명(運命)

예행연습

지독히도 오래 악몽을 꾸었다

항상 분주했고 그러다 깨어나면 말끔하지 못한 정신에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꿈속에서 아빠의 사고 장면을 목격하고는 황급히 깨어났다. 

꿈속에서도 그 장면은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거다.


그리고 보름?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또다시 아빠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는 아빠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었다.

몹시도 냉정하게 '이제 고향집에 가면 우리 아빠가 없다' 고 나는 내게 말했었다.


꿈에서 깨어났고, 서늘한 가슴이 이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아빠와 약속한, 만남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모님과는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살면서 자주 보지 못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손주 손녀 보는걸 워낙 좋아하시고 딸 집을 편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덕에

그래도 한번 오실 적마다 편히 주무셨고, 가까운 여행지도 구경하고 

사위의 실력 발휘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참 소소하게 행복한 날들이었다.


9월의 첫 번째 주말. 손주 생일이라고 올라오셔서는

함께 풍선도 불어 장식하고, 케이크도 같이 사러 가고, 하나밖에 없는 손녀의 재롱에 크게 행복해하셨다.

일요일 점심엔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잔뜩 넣어 짜장면을 만들어주셨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해준 요리. 아빠와 함께 한 시간. 아빠의 웃는 얼굴.


왜 맨날 조심히 가시라고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배웅하면, 

꼭 5분도 안되어 두고 가신 게 생각나 지하주차장에서 다시금 올라오셨는데

그날도 떠나시고 몇 분 안돼, 현관문 띠띠띠 누르시며 아빠가 멋쩍게 들어오셔서는


"이걸 두고 갔네"

"그래 꼭 뭐 하나씩 두고 간당께~ 아빠 도착하면 전화해"

"그려"


나는 매번 이 이별 장면이 묘하게 불안하게 느껴졌었다

그저 많이 사랑하면 늘 걱정이 앞서듯 그날도 그렇게 아빠와 인사를 했었다




아빠의 꿈을 꾸고 며칠 후  전화가 걸려왔다.

평범한 어느 화요일이었다.


"퇴근하냐?"

"응 지하철, 아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아니, 우리 보기로 한 거. 이번 주 아니고 다음 주지?"

"응. 다음 주 왜여?"

"아니 이~~ 이번 주는 뭐하나 해서 이번 주도 연휴 아녀?"

"그렇긴 한데 나 백신 맞고 어떨지 몰라서 쉴라고~ "

"그렇구먼. 뭐 우리는 언제고 상관없어!"


그날따라 그리움이 묻어나는 아빠의 전화가 왜 이리 다정하고 가슴에 사무쳤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지막 통화였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빠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둘째 아이가 어려 유일하게 추석에 만나지 못 한

못 본 지 한 달이 되어가는 둘째 딸네 가족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그립고 보고파, 평소 잘하지 않는 요일과 시간에 수화기를 들었던 거다


그래서 그랬어.... 전화를 끊고 가슴이 아팠어.


그때는 

그 전날 아빠가 돌아가신 꿈을 꾸어 괜히 그런 거라고 나를 달래며

다짐했었다.


정말 한 달에 한 번씩은 무조건 뵙도록 하자.



나의 아버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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