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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운 Feb 22. 2022

#5. 분신(分身)

아빠의 낡은 중고차

"아빠 차를 보내는 건 역시 쉽지 않네.  아빠가 차를 엄청 아꼈잖아"


"그래. 아빠 그렇게 가고, 차는 차마 못 들여다보겠더라, 오늘 처음 봤어"


"그 차 몇 년 탔더라? 아빠 차 산다고 같이 대전 갔을 때가 생생한데 벌써 7년째인가 봐"


"어휴, 말도 마! 그 차 사면서 네 아빠가 엄마 속을 얼마나 긁었는지 알아? "


그렇게 한참 아빠의 험담이 이어졌다.

기분파 아빠의 중고차 지름 사건에는 일정 부분 나에게도 책임이 있기에

가볍게 동의만 하는 정도로 엄마의 한풀이를 들어주고,

폐차장으로 떠난 아빠의 차에게도 명복을 비는 조금 쓸쓸한 날이다.






아빠에게, 아니 우리에게

아빠의 자동차는 '이동수단'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젊을 시절부터 남들보다 좋은 걸 하나 내밀 어보라 한다면 그건 항시 '차'였다.

반지르르하게 닦고 깨끗하게 관리된 차는 아빠의 모습을 참 많이 닮아있다.

그렇게 멀끔하고 연비 좋게 달리던 승용차가

가계가 기울고부터는 작고 낡아졌고 잠시 트럭으로 바뀌기도 했었다.

그래도 아빠에게 차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었고 우리 가족의 일부 이기도 했다.


뒷좌석에 딸 셋을 태우고, 산이고 들이고 좋은 풍경 많이 보여주셨던 아버지.
귀찮을 법 한 엄마와 자식들 출퇴근시켜주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람.
자식이 자식을 낳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출동 대기조가 되어 한걸음에 달려와줬던 당신.

그런 아빠의 마음의 씀씀이가 차라는 함축적인 의미로 담겨있다.




갑자기 떠난 사람이기에

쓰던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오로지 남은 자의 몫이 되어버린다.


아빠가 사라진 아빠의 공간에서

 숨 쉬지 않는 모든 것이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이다.

몸만 빠져나간 것 같은, 형태가 그대로 남겨진 침대의 이불과 머리맡의 낡은 메리야스.

날이 춥거든 신겠다고 사두었던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그렇지만 포근해 보이는 실내화


좋아하던 옷가지들도 옷걸이에 참 가지런하다.

이렇게 단정한 사람이었다고?

모든 잠바의 지퍼는 올려져 있고 단추는 채워진 모습이 참 새삼스럽기도 하다


내가 드린 이 카라티, 참 좋아하셨었는데

"그거 그만 좀 입으래도 매일 그 거였다니까. 하다 하다 칠순잔치도 그거 입고했지~

이번에 남수 결혼식 갈 때도 입겠다는 걸 내가 뜯어말렸어."


추억이 묻어있다.


아빠는 뭐가 급한지 하루아침에 그렇게 떠나 버렸지만
우리는 몹시도 게으른 사람이 되어 묵은 기억 한가닥을 때어내는 일로도 온 하루를 쓴다





이제 차를 보내야지


아빠는 집 앞에 낡은 승용차를 주차해 두고

길을 나섰다.


나는 보지도 못한 그날이 자꾸 떠오른다

익숙하고 서투른 동작으로 한걸음 두 걸음 그렇게 멀어져 갔겠지


"

서운해 할거 없어.

우리에게도 작별인사는 없었는 걸.

그렇지만 편안해 보였단다.

"


조용히- 당연히- 홀로- 덩그러니- 남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를 깨워 본다.


"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러 왔어.

아빠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에 가셨거든.

그러니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 돼.

"


삐그덕 거리는 낡은 문짝, 아무렇게나 덧칠해진 페인트가 참 투박하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힘을 내준 너는,


"

참 고마웠다.

편하게 가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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